"여기 골드클래스에서 살아요!"
2024년 4월 10일
2018년 장마철, 딸이 돌쟁이가 되니 애 둘을 키우기에는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좁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들과 딸이 더 크기 전에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가고 싶었다. 그래서 '아직은 때가 아니다. 이사를 가지 않겠다.'는 단호한 남편과 날마다 싸우기 시작했다. 끈적하고 습한 날씨가 더해져 우리의 싸움은 극에 달했다. 퇴근한 남편을 마주할 때마다 '이 어둡고 칙칙한 좁은 집에서 애 둘을 못 키운다. 집이 좁다! 좁다!' 소리쳤다. 부엌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녹물을 보여주며 '이 봐라! 이것이 쓰겠냐!' 악다구니 쳤고, 산을 끼고 있는 맨션의 전유물 대왕 모기를 손바닥으로 쳐대며 '이 봐라! 모기 큰 거 봐라! 이 산 모기에 애들 피 빨려야 쓰겠냐!' 두 번, 세 번, 여러 번 실컷 외쳤다.
국민학교 4학년 때 광주로 이사 온 후부터 신혼살림에 애 둘까지 낳아 20년을 이상을 살게 된 이 8층짜리 맨션을 떠나고 싶은 내 간절한 마음이 하늘에 닿은 건지, 남편이 외출하기 위해 연 현관문을 통해 새까만 쥐가 집안으로 들어왔다. 쥐가 나를 보고 놀라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며 이때다 싶어 남편에게 더 강하게 밀어붙였다. 그래도 요지부동 남편. 쥐는 잡으면 된다고 말하는 남편.
'에라, 모르겠다. 내 마음대로 할 거야.' 혼자 돌쟁이 딸을 유모차에 태우고 땀 뻘뻘 흘리면서 이 집 저 집 보러 다녔다. 남편 상의 없이 살고 있는 집을 부동산에 내놓고 '나 이 집 부동산에 내놨다.'통보하기도 했다. 그 시기에 막 지어져 입주하는 아파트를 지나며 '저 집 위치 좋다. 소아과 바로 앞이네. 어차피 오래된 아파트와 새 아파트 전세 가격이 큰 차이가 없으니 저 아파트에서 살고 싶다.'라고 간절히 말할 때 입 꾹 다 물고 새 아파트 쪽으로는 절대 고개를 돌리지 않던 남편에 대한 서운함을 견디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내가 승리했다. 2018년 10월 26일. 새 아파트 25평으로 이사하게 된 것이다. 이사한 날, 내가 제일 먼저 한 행동은 막 지어낸 따끈따끈한 새 아파트임에도 불구하고 부엌 수도꼭지를 틀어 녹물이 나오는지 안 나오는지 확인한 것이었다. 그리고 외풍이 들어오는지 안 들어오는지 손바닥을 새시틈 사이에 대보기도 했고 장판이 아닌 나무로 된 바닥이 신기해 쭈그리고 앉아 손으로 바닥을 훑으며 몇 초간 응시하기도 했다. 전셋집이었지만 완전한 새 집에서 사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좋다! 좋다! 너무 좋아! 를 남편과 애들 앞에서 남발했다.
이삿짐 정리가 얼추 끝날 때쯤 아들이 감기기운이 있어 소아과를 들르게 됐다. 진료 후 소아과에서 나와 횡단보도 앞에 선 그때, 옆에 서 계시던 어르신 두 분이 우리 아들을 보고 말했다.
"워매~~ 애기 귀여운 그~~"
"그러게잉~ 아기가 귀엽네~"
아들은 한껏 웃으며 답했다.
"여기, 골드클래스에서 살아요~~"
아들의 대답에 나의 입은 벌어졌고 어르신 두 분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멈췄다. 그들은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자마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횡단보도를 급히 건넜다. 나는 어르신 두 분 옷자락을 붙잡고 저기.. 내가 그렇게 교육시킨게 아니고요. 나는 단지 좁은 집에서 살기 싫었는데... 남편과 이사문제로 싸울 뿐이었... 애들 앞에서 역시 새집 좋...라고 말했을 뿐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시간이 흐르고 아들과 함께 우리가 오래 살았던 맨션을 방문하는 추억놀이에 나섰다. 오래 산 집을 벗어나고 싶어 아등바등했어도 철없던 내 어린 시절의 추억이 깊이 자리 잡아 있고 내 아들을 낳고 키워 낸 그 집, 그 맨션을 어찌 쉽게 잊을쏘냐.
언덕 위에 위치한 맨션의 입구를 바라보며 힘겹게 오르는데 우리 앞에 어르신 한분이 뒷짐 지고 앞서가고 계셨다. 나는 들뜬 마음을 숨기지 않고 아들에게 재잘거렸다.
"아들~여기 오랜만에 오니깐 어때? 여기서 산 거 기억나지? 엄마는 여기서 진짜 오래 살았는데~~"
아들은 갑자기 손바닥을 펼친 작은 팔을 맨션 입구로 뻗으며 말했다.
"엄마! 이 아파트는 오래됐고 낡았지. 물은 녹물이고 큰 모기가 많..."
"헙! 아들 그만!"
흡사 눈에 보이지 않는 지휘봉을 들고 안경을 추켜올리며, 이 맨션에 대해 브리핑하는 느낌을 주며 말하는 아들을 급하게 안았다. 그리고 "내가 다 잘못했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밝게 웃는 아들 얼굴을 본 순간, 입을 다물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