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꽃을 건넨다. 할아버지는 아이에게 꽃을 건넨다. 아이는 꽃을 받는다. 꽃을 받은 아이는 그 아이가 처음이다. 꽃을 좋아하는 이는 없다. 꽃이 필요한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는 꽃을 받는다. 무표정하게. 그 표정의 의미를 알 수 없지만, 할아버지는 웃는다. 꽃을 받은 아이는, 그 아이가 처음이기 때문이다.
무너진 빌딩 사이를 걷는다. 꽃이 든 수레를 끈다. 천천히. 할아버지는 꽃을 건넨다. 아이는 도망간다. 겁에 질린 듯 도망간다. 꽃을 좋아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꽃이 필요한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할아버지는 걷는다. 꽃이 든 수레를 끈다. 천천히. 다음 아이에게 꽃을 건넨다. 아이는 도망간다. 꽃을 좋아하는 이는 없다. 꽃에게 의미는 없는 것이다. 꽃이란, 쓸모 없는 것이다. 남아 있는 건, 아이의 의심과 할아버지의 쓰라림. 그는 조용히. 다시 걷는다. 수레를 끈다. 바퀴 소리가 난다. 꽃을 건넨다.
꽃을 든 아이는 할아버지를 따라간다. 그의 흉내를 내며. 천천히. 조용히. 발걸음은 수레바퀴와도 같고, 손에는 꽃을 들고 있다. 그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것은, 수줍음 때문인가. 따라가는 것은, 고마움 때문인가. 아이의 표정은 한결같다. 그저 눈을 똑바로 뜨고. 할아버지를 쫓는다. 수레를 따라. 꽃을 따라. 소리를 따라. 손에는, 꽃을 들고.
꽃의 아이는 본다. 할아버지는 꽃을 건넨다. 한 어른이 할아버지를 밀어 넘긴다. “당장 꺼져!” 어른은 자신의 아이를 데리고 어딘가로 가버린다. 할아버지는 넘어져 있는 채. 꽃의 아이는 넘어진 할아버지 곁으로 다가간다. 할아버지는 아무런 표정을 짓지 않는다. 먼지투성이가 된 몸을 가누지 않는다. 그저 꽃의 아이를 바라본다. 자신이 건네준 꽃을 들고 있는 아이를 바라본다. 할아버지는 일어선다. 수레에 손을 얹는다. 꽃이 든 수레를 끈다. 천천히. 꽃의 아이는 따라간다. 손에 꽃을 든 채. 천천히.
꽃의 아이는 죽은 아이를 바라본다.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시체. 죽은 아이는, 죽어가는 어른의 품에서 죽었는가. 그 둘의 시체는 포개져 있다. 할아버지는 걷는다. 멈추지 않고 걷는다. 꽃의 아이는 멈춘다. 죽은 아이를 바라본다. 굴러가는 수레바퀴. 꽃의 아이는 할아버지의 다리를 잡는다. 그 작은 손으로, 굳은 의지를 잡는다. 할아버지는 바라본다. 죽은 아이를 바라본다. 죽은 어른을 바라본다. 꽃의 아이의 눈에서 보이는 것은 무엇인가. 할아버지는, 그 눈에서 무엇을 본 것일까. 꽃을 건넨다. 죽은 어른과 아이에게 꽃을 건넨다. 그들의 머리맡에 꽃을 건넨다. 꽃의 아이는 웃는다. 티 없이 웃는다.
꽃이 핀 허름한 교회. 모든 것이 없는 곳에. 꽃들 만이 덩그러니. 시들어버린 수레 속 꽃들. 할아버지는 돌아온다. 꽃의 아이는 따라간다. 빛이 들어오는 꽃들의 세계를 바라본다. 할아버지를 바라본다. 수레 속의 시든 꽃들을 하나씩 꺼내든다. 손이 떨린다. 시든 꽃이 아이의 눈 앞에 쌓여져 간다. 빈 수레.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 아무 소리 나지 않는다. 할아버지가 수레에 기대어. 숨은 짧고, 눈은 흐릿한. 말을 건넨다. 나지막하니. 들리는 듯. 그렇지 아니한 듯. 꽃의 아이에게 말을 건넨다.
“마중 나오셨습니까.
감사합니다.”
시든 꽃을 쥐어, 건넨다. 꽃을, 건넨다. 아이는 꽃을 받는다. 시든 꽃을 받는다. 할아버지는 웃는다. 부드럽고 찬란한. 강인한 표정. 그 웃음 속에는 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그 웃음 속엔 꽃이 담겨져 있다. 그 웃음은, 꽃이다. 꽃의 아이를 바라본다. 눈에 비친 아이의 모습이, 신을 닮아간다. 할아버지는 웃는다. 소리 나지 않는다.
시든 꽃을 바라본다. 할아버지를 바라본다. 빈 수레를 바라본다. 빛에 놓인 꽃들을 바라본다. 소리없음을 바라본다. 꽃의 아이는 시든 꽃을 할아버지에게 건넨다. 소리없음은 도망간다. 빛에 놓인 꽃을 꺾어 할아버지에게 건넨다. 소리없음은, 도망간다. 교회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꽃도, 빈 수레도, 아이도, 할아버지도.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소리없음이 울린다. 종이 울리듯이. 소리없음이 운다.
무너진 빌딩 사이를 걷는다. 천천히. 한 걸음씩. 손에는 거절당한 꽃 한 송이. 눈에는 꽃이 태어난 빛을 담은 채. 한 걸음씩. 아이를 바라본다. 아이를 처음으로 바라본다. 아이의 손에는 꽃이 없다. 아이의 눈에는 빛이 없다. 손에 담긴 꽃을 바라본다. 꽃에 담긴 빛을 바라본다. 아이를 바라본다.
수줍음. 혹은, 두려움. 표정에 담긴 것은 무엇인가. 꽃을 잡은 손이 흔들린다. 빛을 담은 눈이 멀어진다. 처음. 처음이다. 아이의 눈을 바라본다. 아이의 어둠을 바라본다. 떨림. 심장의 떨림. 빛을 밝히는 작은 하나의 떨림. 할아버지를 떠올린다. 할아버지의 꽃을 떠올린다. 아이를 바라본다. 수줍게, 두렵게. 찬란하게, 꽃을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