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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장춘몽(콩트)

by 라이프 위버


수업이 끝났다.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쉰다. 수업이 끝나기 얼마 전부터 마구 졸렸기 때문이다. 사십 초반에 학원에서 새벽강의를 할 때 졸려서 무릎이 한 번 꺾인 적이 있었는데 그 이후로 강의하면서 졸려보기가 처음이다. 오늘 아침에 평소보다 일찍 일어난 탓일 것이다.
다행히 오늘은 강의실에 남은 학생이 없다. 강의실의 스위치를 한 개만 남기고 모두 반대로 누른후 그녀는 책상에 엎드렸다. 조금 후 강의실 문소리가 나서 뒤돌아보니 한 학생이 들어왔다가 그녀를 보더니 다시 나간다.
얼마나 잠들었을까. 어깨에 누군가의 손길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Y 선생님이 서있었다. 불을 다 껐더라면 그녀가 더 놀랐을 것 같다.
"어, 여긴 웬일이에요?"
"선생님 수업 끝나는 것 맞춰 왔는데 선생님이 엎드려 계셔서 어디 아프신가 해서 깜짝 놀랐어요."
"무슨 일이세요?"
"선생님께 벚꽃 구경시켜 드리려고요."
"오며 가며 많이 보긴 했는데. 하하."
"선생님이 못 본 곳에 갈 거예요."
두 사람은 강의실을 나선다. 그가 그녀의 가방을 가져가 한 쪽 어깨에 걸친다.
"학생들이 보면 웃겠어요."
"에이, 제 가방인줄 알겠죠."
"내가 여기 있는 것은 어떻게 알았어요?"
"강의시간표 검색했어요."
"오늘 수업이 평소보다 일찍 끝났는데 강의실에서 졸지 않았으면 길이 엇갈릴 뻔했네요."
"꽃잎이 조금씩 떨어지는 것을 보고 오늘이 마지막 기회다 싶었어요. 선생님 은퇴하면 내년 봄에는 여기 안 계시잖아요."
두 사람은 지형상 학교의 위쪽으로 갔다. 그쪽은 그녀의 평소의 동선에 들어가지 않는 곳이기도 하거니와 학교 중심부와 정문 근처에도 벚꽃이 많아 굳이 벚꽃을 보러 갈 생각을 하지 않던 곳이다.
" 연구실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벚꽃이 피면 눈길을 끌어서 해마다 이곳에 들리고 있어요. 이쪽으로 안 와보셨죠?"
"네."
"그럴 것 같았어요. 같은 과 선생님들과 산책할 때 들리면 모두들 처음이라고 했어요."
"정말 예쁘네요. 저 나무는 오늘이 최고 전성기네요. 생기가 꽉 차있어요."
두 사람은 벚꽃을 한참 올려다 보고 학교 담장 옆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걷는다. 담장 옆에서 학교의 개발을 이겨낸 벚나무들이 마음껏 가지들을 펼치고 있었다. 오솔길은 막다른 길이다. 두 사람은 돌아 나온다.
"오늘 정말 고마웠어요. 이곳을 못 보고 은퇴할 뻔했네요."
"꽃을 좋아하셔서 은퇴 선물로 깜짝 이벤트를 한 건데 좋아하시니 다행입니다. 저는 연구실로 다시 가려고 하는데 선생님은요?"
"아, 나는 바로 퇴근하려고요."
두 사람은 한 건물 앞에서 헤어진다.

그녀는 눈을 뜬다. 강의실이다. 잠기운이 채가시지 않은 채 가방을 챙기고 코트를 입는다. 불을 마저 끄고 강의실을 나온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일층에서 내린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정문으로 향한다. 분홍 벚꽃이 한잎 두잎 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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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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