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한 노후. 노후 대책이라는 말은 써보았고, 편안한 분위기와 같은 말에서 편안한 이라는 말을 써보았지만 편안한 이라는 말과 노후라는 말을 결합해서 써본 적은 없다. 그런데 편안한 노후라는 말을 보면서 나는 이 평범한 문구에 꽂히게 되었다.
자주 들리는 한 인문학 밴드에 어떤 분이 “그림 읽기”라는 주제로 민화에 대한 글을 올리고 있다. 그의 글을 통해 전통 민화에 나오는 까치와 호랑이, 모란, 죽순과 대나무, 난초와 귀뚜라미, 향나무, 박쥐 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되었다. 가장 최근에 그가 소개한 것이 갈대와 기러기가 나오는 민화들이었다. 갈대의 한자는 노이고 기러기의 한자는 안이라고 한다. 그런데 편안한 노후라는 의미의 노안도 발음이 같아서 갈대와 기러기가 나오는 그림을 노안도라고 부르면서 노안도는 편안한 노후를 비는 그림이 되었다고 한다.
어제는 연구동의 같은 층에 있는 여자 선생님들과 점심을 먹었다. 선생님들은 내년 2월이면 은퇴를 하는 나의 노후 대책에 대해서 궁금해했다. 그들의 관심사는 당연히 경제적인 노후대책이었다. 그러나 오늘 아침에 “편안한 노후”라는 표현에 꽂히면서 노후대책은 경제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애벌레와 나비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애벌레는 작은 돌멩이도 장애물이다. 그러나 나비는? 나비에게 돌멩이는 더 이상 문제가 아니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노후에 우리는 나비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즉 많은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 내면이 편안하지 않겠는가?
우리나라 같은 곳에 살면 편안한 노후를 달성하기가 상대적으로 어려울 것이다. 문화적으로 사람들에게 많은 족쇄를 채워놓았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바로 그런 족쇄를 하나씩 끊고 영혼이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그러나 나이를 먹는다고 족쇄가 자동적으로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몸을 위해 매일 밥을 먹고 운동을 하듯 영혼도 밥을 먹고 운동을 해야 할 것이다.
당신의 영혼에 무엇을 먹이고 무슨 훈련이 필요한지 당신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나도 알고 있다. 내 경우는 독서와 글을 쓰는 것, 그리고 나와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다. 그리고 편안한 노후에 대한 자신만의 비전을 확고히 하는 것이다. 나는 윤기가 흐르고 배부른 애벌레보다는 수척하지만 자유로운 나비라는 비전을 세웠다.
기러기가 봄이 되어 다시 북쪽으로 날아갈 때 사람들이 쳐놓은 그물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 입에 갈대를 물고 비행을 했다고 한다. 그렇다. 경제적으로나 다른 여건들이 남들보다 못하더라도 기러기처럼 자신만의 갈대를 찾아 입에 물고 살 수 있다. 갈대를 찾으려고 노력한다면. 그러면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의 문화가 쳐놓은 그물에 걸리지 않고 노후에 일생 중 가장 편안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