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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보니 그녀는 꽃이었다

by 라이프 위버

한 여자 후배가 있다. 동문 탁구 동호회에서 알게 되었는데, 탁구를 칠 때는 게임에 집중하느라 사실 그녀와 밀도 있는 교류를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지난 10월 초 그녀가 교수산우회 모임에 처음으로 참석하게 되었다. 그녀의 집이 번개 장소에서 멀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 내가 권유를 해서였다. 그날 우리는 꽃무릇을 보러 배봉산 근린공원을 갔었고 점심식사 후 하늘공원까지 가는 만행을 벌였다. 배봉산 꽃무릇이 아쉬웠던 것도 있었고 식사자리에서 한 선생님이 하늘공원의 꽃무릇 군락 사진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었다. 교수산우회에서 가끔 뒤풀이 이차를 간 적은 있지만 걷기나 산행 이차를 간 것은 처음이었다.


하늘공원의 꽃무릇은 피크를 살짝 지나고 있었지만 그 풍성함이(이차를 성공했다는 점도 함께) 나를 들뜨게 하기에 충분했는데 그녀가 이러한 감정을 더 업시켜주었다. 오늘 대박이라며 이번 번개가 특별하다는 것을 내게 확인하는 그녀의 즐거운 표정과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냐는 하늘공원에 대한 그녀의 계속된 감탄 덕분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느낌을 바로바로 전달하는 나와 비슷한 부류였다.

지난 토요일 교수산우회 정기산행에서 또 한번 그녀와 동행했다. 도봉산 우이암코스를 갔는데 가랑비가 오락가락했고 전날 내린 비로 계곡 옆 등산로는 젖어있었다. 길도 그렇고 등산초보라서 신발도 운동화를 신었는데도 그녀는 부지런히 앞장서며 뒤따라오는 우리를 찍어주고, 경치 좋은 곳에서는 우리를 세워놓고 찍어주었다.

간식시간이었다. 지난 번개에서 내 말만 듣고 물만 가져온 것을 아쉬워했던 그녀는 이번에 샤인머스캣을 작은 지퍼백에 소분해서 들고 왔다. 그런데 배낭에서 나온 다양한 먹거리에 자극을 받은 그녀는 산행에 무엇을 가져오면 좋은지 묻더니 다음에 야채쌈을 만들어오겠다고 했다. 박사학위를 받은 공부하는 여자라 더 기특하게 생각됐다. (박사학위를 끝낼 때까지 그녀가 손보다는 머리를 더 많이 썼다는 것을 고려하면 그렇다.) 기특하다는 생각은 식사자리에서도 이어졌다. 우리가 먹은 메뉴 중에 두부전골이 있었는데 남은 전골을 싹싹 긁어먹는 모습에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는 나와 띠동갑이니 나의 제스처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산행 중에 그녀의 언행 또한 언니 미소를 짓게 했다. 전날 내린 비로 계곡물은 불어있었다. 세차게 쏟아지는 계곡물은 바위들과 상호작용하며 장관을 만들어냈지만 우리의 산행을 곤란하게도 했다. 산행 중 신발이 젖지 않고는 건너기 어려운 곳이 두 군데가 있었다. 망설이는 여성들을 보더니 회장 선생님이 기사도 정신을 발휘했다. 본인의 신발은 젖든 말든 물속에 서서 여선생님들의 손을 잡아서 발뒤축이든 뭐든 돌을 살짝살짝 딛고 발이 젖지 않고 건너게 해 줬다. 그러자 그녀는 말했다. 또 건널 개울 없나라고. 외간 남성의 친절을 받은 기분 좋음을 그렇게 자연스럽게 풀어놓았다.


또 있다. 계곡을 다 지나 능선으로 올라섰을 때 한 선생님이 집에서 만들어온 커피를 꺼냈다. 커피를 마시며 맛있다고 행복하다고 감정을 표현한 사람은 6인 중 유일했다. (7번째 참석자인 나는 커피를 안 마셨다.) 그녀가 행복해하는 모습에 나도 덩달아 행복해졌다. 내가 데려와서인가? 아니다. 그녀는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었고 그것이 내게 전달된 것이다.


이렇게 함께 걷고 산행하면서 나는 그녀에게 돋보기를 갖다 댈 수 있었고 제대로 발견한 그녀의 매력은 나를 즐겁게 했다. 예쁜 꽃을 보고 기쁘지 않은 사람이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하늘공원 시인의 거리에서. 2025.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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