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작은 낙이 하나 생겼다. 아침에 일어나면 잠도 깰 겸 옥상으로 나가 화분에 핀 꽃들을 바라보는 것이다. 아침뿐만 아니라 집안일을 하다가 꾀가 나도 보러 나간다.
날마다 꽃을 피워내는 일일초와 계속해서 꽃대를 올리는 제라늄이 매일매일 나를 유혹한다. 그들이 쉬지 않고 자신을 갱신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사람들도 일상을 늘 새롭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최근에 무엇이 새로웠을까? 며칠 전 제라늄 꽃대를 바라보고 있다가 발견한 사실이 있다. 꽃대는 줄기의 가장 끝에서 만들어진다는 것. 그걸 보면서 영감을 받았다. 그렇지. 삶의 정점이 꽃이지. 그런데 날마다 나를 갱신한다면? 나의 삶은 시들지 않는 꽃이 되지 않을까?
지난 주말에 모처럼 오프라인으로 장을 보다가 소포장 디카페인 커피를 발견했다. 커피를 잘 마시지 못하는 내게 딱 맞는 용량이라서 한 팩 집어 왔다. 오늘 아침에 시음을 하려고 보니 우유가 없었다. 그래서 볶은 콩가루와 마스코바도 설탕을 넣어서 커피를 만들어 먹었다. 물론 엉뚱한 맛이었지만 이러한 새로운 시도 자체가 재미있었다.
얼마 전에는 의자의 위치를 바꿨다. 친구가 이제는 본인에게 불필요하다면서 S 브랜드 책상의자를 쓸 마음이 있냐고 물었다. 나는 그동안 남아도는 딱딱한 식탁의자를 책상의자로 쓰고 있었기 때문에 얼른 받아왔다. 그런데 부피가 있는 의자가 침대와 책상 사이의 공간을 모두 차지하여 침대접근이 불편해졌다. 그런 상태로 며칠 지난 후 의자의 위치를 90도 변경했다. 의자의 위치를 바꾸고 책상에 앉으니 세상에나, 창문 너머로 직박구리가 보였다. 창문 너머에는 일층 화단에 심어진 오래된 감나무가 보이는데 그 감나무의 감을 먹으로 직박구리가 들랑거리고 있었다. 작년 가을에는 보지 못하던 것을 이번 가을에 보게 된 것이다. 뒷산도 아닌 집 안방에서 직박구리를 보는 호사는 새로고침한 의자위치 덕분이었다.
나이 들면서 알게 된 사소한 것들도 있다. 예전에 나는 산책로나 동네 길가에 놓인 벤치들을 바라보면서 예산 낭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는 길을 가다가 벤치를 잘 이용한다. 물을 마시기 위해서 앉고, 카톡 소리를 듣고 답장하려고 앉고, 피로감이 몰려온 나의 다리를 보호하기 위해 앉으면서 벤치의 고마움을 알게 되었다. 또 알게 된 것은 점퍼나 코트에 달린 후드의 용도이다. 후드 역시 나는 쓸모를 알지 못했고 백팩을 멜 때 번거롭게 하는 군더더기쯤으로 여겼다. 그런데 이제는 후드 달린 옷을 선호한다. 바람이 차가운 날 후드를 뒤집어쓰면 그렇게 포근할 수가 없다.
최근에 알게 된 사소한 것 하나는 백팩에 달린 스트랩의 존재이유다.(이름도 이제 알았다.) 어느 날 길을 가다가 한 아주머니가 캐리어에 메단 검정색 가방에 물건을 넣는 모습을 보고 말을 걸었다. 남대문에서 샀다면서 장 볼 때도 쓰고 파크골프 갈 때도 쓴다고 했다. 양해를 구하고 사진을 찍어왔다. 구글렌즈를 이용해서 온라인 판매처를 찾아보았으나 그 아주머니 것과 비슷한 것은 없었고 스트랩을 이용해서 백팩을 캐리어에 메단 것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마음에 든 것(아주머니 것과 비슷한 것)이 없어 포기하고 있었는데 문득 우리 집에 있는 구식 장바구니에서 떼어낸 바퀴 두 개 달린 캐리어와 나의 백팩의 스트랩이 떠올랐다. 당장 베란다로 가서 캐리어를 가져와서 백팩을 끼우니 딱 맞았다. 유레카를 외치며 좋아했다. 백팩에 왜 스트랩이 달렸는지 알게 된 것이 일상의 바다에서 신대륙을 발견한 것 같았다.
고교과정에 한문 수업이 있었던 세대들은 잘 아는 고사성어 중에 일신우일신이 있다. 그런데 그 새로움이 사소한 것이면 어떠랴? 작은 것에 감탄하는 것도 능력이라 생각되고 작은 기쁨에 감사하는 것도 지혜라고 생각한다. 더 좋은 것은 감탄과 기쁨은 또 다른 “일신”을 불러오는 선순환을 만들어 준다는 점이다. 행복감이 사람을 더 창의적으로 만들어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