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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프 위버 Feb 02. 2024

옷이 날개라고요? 아니요, 몸매가 날개죠!

누구나 한 가지 정도 흑역사가 있게 마련이다. 내겐 옷에 대한 흑역사가 있다.


교복만 입으면 되는 편한 고등학교 시절을 지나 대학에 가니 옷이 문제였다. 대학교 1학년 1학기. 외사촌오빠 친구분이 L 대학의 축제 파트너로 가보라고 미팅을 시켜주었다. 사촌 올케언니와 함께 부랴부랴 동대문 시장에 가서 옷을 샀다. 지나간 것들은 많이 잊혀졌지만 그 옷은 선명하게 기억난다. 연두색 점퍼 원피스에 미색 저지 셔츠였다. 나는 3일 내내 그 축제에 갔고, 3일 내내 같은 옷을 입고 갔다.


그다음 해 대학 2학년 봄이었다. 나는 여학생 기숙사에 살고 있었고 기숙사 축제에 참가하게 되었다. 아는 사람이 없던 나는 L 대학의 그 남학생에게 파트너가 돼 달라고 전화를 했다. 동향이고 초등학교 동창이라 1년만이라도 편하게 연락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축제에 나는 그전 해 봄과 똑같은 옷을 입었었다. 청바지에 티셔츠 밖에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 전해에 3일 내내 입었던 옷이니 그 남학생이 그것을 알아볼 만도 했다. 내가 옷을 사입지 않는다고 했다는 말이 돌고돌아 내 귀에까지 들어왔다. 옷 때문이었을까? 아무튼 우리는 그 축제를 끝으로 서로 연락하는 일이 없었다.


내가 대학생 때는 고향에 가는 기차를 타면 기차에서 낯익은 얼굴들을 만나고는 했다. 한 번은 친구 오빠를 통해 알게 된 한 고향 선배를 기차에서 만났다. 그때가 대학 3학년 정도였던 것 같다. 나는 대학교 1학년 때 산 겨울 점퍼를 입고 있었다. 그 선배는 기차에서 내려 역으로 나가는 길에 그랬다. "엄마에게 옷 좀 사달라고 해라."라고. 머리 좋은 그 선배가 대학 1학년 때 우리 대학에 놀러와 나를 보았던 것이 기억이 났었던 모양이다.


그런 말을 나는 한 번 더 들었다. 대학교 3학년 겨울에 겨울 코트를 하나 사기는 했지만 나는 위에서 말한 점퍼를 대학 4학년까지 입었다. 대학 4학년 때 친하게 지내던 한 동기가 같은 말을 했다. "옷 좀 사 입어라."라고.


그런데 그런 나도 옷을 사는 것에 푹 빠진 적이 있었다. 한 10년 전부터였을 것 같다. 우연히 옷들을 재고처리하는 사이트를 알게 되었다. 잠이 안 오는 날 시간 때우기 아주 좋았다. 나름 브랜드가 알려진 옷들이 최초 판매가의 80% 이상 할인해서 판매를 하니 횡재를 하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평소에 남을 격려하는 일에 인색한 남편이 반품비 내는 것은 시간을 아낀 대가라는 명언을 했다. 그 말에 힘을 받아 자주 사고 자주 반품했다. 그러다 내게 맞는 브랜드, 사이즈들을 익혀나갔고 저렴하다는 명분을 코에 걸고 이것저것 자꾸 사게 되었다.


그러다가 이제는 가능한한 옷을 더 이상 사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지구환경에 대한 의류의 악영향을 알게 된 이유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멋은 기본적으로 옷이 아니라 몸매에서 온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옷을 사기위해 인터넷 서핑하고 반품 포장하는 시간에 코어 운동을 한 번 더하는게 낫다는 기특한 생각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옷보다는 몸매인 것 같다. 타고난 체형이 불리하고 나이는 60이 넘었지만 건강도 잡고 돈도 아끼고 스타일도 살려보고 싶다. 어떤 이는 60대부터 노력해서 70대에 대회에서 우승을 하는 보디빌더가 됐다는데 그저 통통한 날씬이가 되겠다는 목표는 실현가능해 보인다.


하나의 점퍼를 4년내내 입고 다녔던 무대뽀의 정신으로 남은 평생 적정 몸무게를 유지하는 명예를 달성해보려 한다. 왜냐하면 옷이 날개가 아니라 몸매가 날개니까. 이제 나도 보이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보이는 것도 중시하는 실용주의를 수용했으니까.


아, 그런데 이러한 목표를 실현하는데 장애물이 하나 있다. 바로 야식에 대한 욕구이다. 그러니까 이 글은 야식에서 해방되기 위한 셀프 굿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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