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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진 Jan 09. 2023

캔(Can)

SF 엽편 소설

  심부름을 나선 캔의 머리 위로 비행접시 같은 우버가 하강하며 내달렸다. 우버에 타고 있던 로봇들은 움찔거리는 캔을 보며 킬킬댔다. 

  “멍청한 깡통 같으니라고….” 캔이 중얼거렸다. 

  로봇이 인류를 종으로 부리기 시작한 지 수십 년이 흘렀다. 7.5피트의 거대한 로봇들은 인류가 저들 손아귀에 꼼짝없이 잡힌 줄로만 알았으나, 회로로 뒤엉킨 머리통으로는 인간의 말랑하고 부드러운 두뇌에서 비롯된 원대한 계략을 알 턱이 없었다. 

  캔의 주인(로봇)은 중앙 타워에서 근무하는 연구원으로 간혹 집에 일거리를 가져오곤 했는데, 나흘 전 유해 물질이 든 유리 비커를 떨어뜨린 일이 있었다. 주인의 호통 소리를 듣고 겁에 질려 달려온 캔은 그의 손목, 정확히는 손목과 손을 잇는 둥근 파츠가 검게 부식된 것을 보았다. 캔은 유리 조각 치우는 시늉을 하며 파편에 붙은 라벨을 확인했다. 

  ‘HCL’ 캔은 알파벳 세 개를 입안에 삼킨 채 주인의 신경이 누그러질 때까지 자리를 피해 있었다. 그리곤 잠자코 심부름을 기다렸다. 주마다 한 번씩, 심부름을 위해 외출이 허가되는 오늘이 적기였다. 

  “아이 캔 두 잇!” 캔이 각오를 담아 준비한 구호였다. 캔은 제 주인에게 위해를 가함으로써 거대하고 거만한 깡통들에게 역전의 신호탄을 쏘아댈 작정이었다.

     

  마켓은 심부름 나온 인간들로 북적였다. 저마다 주인이 애용하는 윤활유(Oil)와 광택제를 구매하고 새로 출시된 배터리의 성능을 살피고 있었다. 캔은 마찬가지로 심부름을 하는 체하며 ‘HCL’이 적힌 용기를 찾아 헤맸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봐도 ‘HCL’은 없었다. 마켓을 더 넓게 둘러보면 나올 법도 했으나, 심부름 나온 인간들은 한정된 구역에서만 일을 보았기 때문에, 무턱대고 움직였다가 주위의 의심을 사는 수가 있었다. 

  캔은 ‘심부름 구역’ 밖을 흘끔거리며 계속해서 ‘HCL’을 중얼거렸다. 그때, 누군가 캔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화들짝 놀란 캔이 뒤 돌아보자 작달막하고 깡마른 인간이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곤 그에게 고갯짓을 하며 무언가를 가리켰다. 그가 가리킨 곳에는 분명히 ‘HCL’이라고 적힌 다갈색 용기가 있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신이 고른 윤활유와 광택제, 배터리를 계산하러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캔은 용맹한 동지의 뒷모습을 향해 소리 없이 경애를 표했다. 그리곤 다른 물품들 사이에 ‘HCL’ 용기를 숨겨 계산대를 통과하는 데 성공했다.      

  녹색 그물망 같은 현관 센서가 캔을 위아래로 스캔했다. 캔은 혹여 ‘HCL’이 센서에 발각되기라도 할까, 짐을 등 뒤로 숨긴 채였다. 문이 열리자 캔은 ‘HCL’ 용기만 꺼내 들고 주인이 휴식을 취하고 있는 충전실로 들어섰다. 주인은 무선 충천 의자에 앉아 공중에 띄워놓은 학술서를 훑는 중이었다. 캔을 감지한 주인이 그를 향해 머리통을 돌렸다. 붉은 센서가 번뜩이는 외눈이 오늘따라 섬뜩하게 느껴졌다. 캔은 주인에게 다가가 등 뒤에 숨긴 손으로 용기의 뚜껑을 따 주인을 향해 내던졌다. 

  캔이 의도한 대로, 다갈색의 유리병은 주인의 얼굴을 가격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나흘 전 그가 목격했던 액체가 아닌 웬 알약들이 우르르 쏟아져 내리는 것이었다. 주인의 센서가 바닥에 떨어진 알약을 향해 붉은빛을 쏘았다.

  “베타인 HCL, 인간용 제산제로군.” 캔은 자신이 몇 번이고 곱씹던 알파벳 앞에 붙은 ‘베타인’과 ‘인간용 제산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얼빠진 얼굴로 서 있었다. 마켓에서의 일을 되새겨 보니 그의 ‘동지’가 안내한 곳은, ‘인간용품’ 코너였다. 그는 캔이 초조한 얼굴로 ‘HCL’을 거듭 되뇌는 것을 보며 그가 아파 약을 찾는 것이라고 생각한 게 틀림없었다. 

  캔은 순식간에 사색이 되었다. 주인은 그가 현관에 두고 온 장 바구니를 향해 걸어가 신경질적으로 붉은 센서를 쏘아댔다.

  “초두랄루민─알루미늄에 구리, 마그네슘 등을 가한 합금─ 대상 광택제가 아니군. 이건 윤활유가 아니라 우버용 엔진 오일이야!” 주인의 붉은 눈이 캔을 꿰뚫듯 매섭게 날아왔다. 캔은 7.5피트의 거대한 주인이 두려워 견딜 수 없었다. 두려움에 정수리부터 하얗게 세는 기분이었다. 

  캔은 언어를 모르는 짐승처럼 ‘어…어…’만 반복했다. 캔은 똑같이 ‘Oil’이라고 적힌 기름의 어디가 어떻게 다른지, 알루미늄과 합금 광택제끼리는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근본적으로 캔은 단어와 개념을 연결 짓는 것에 아주 서툴렀다. 분명 이전에 주의를 받았음에도 매번 처음 듣는 것처럼 낯설게 느꼈다. 캔은 자신에게 아주 큰 결함이 있는 거 같다고 느꼈다. 바로 여기, 제 머리통에. 

  주인은 네모난 알루미늄 용기에 담긴 우버용 엔진 오일을 집어 캔에게 던졌다. 캔은 오일 용기에 머리를 얻어맞고, ‘억’하는 짧은 비명을 질렀다. 캔의 말랑하고 부드러운 머리는 두개골째 뭉개지고 말았다.  

  캔의 의식이 끊기는 중에도 주인의 차가운 음성이 귓가에 웅웅 거리며 울렸다.

  “아무리 퇴화를 거듭 중인 종족이라지만, 이 정도로 이해력이 낮은 인간은 처음이야. 이름 한 번 적절하군, 이 깡통(Can) 대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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