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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진 Aug 28. 2023

다리

엽편소설

  퇴근 시간이 지났음에도 지하철엔 앉을자리 하나 없었다. 이번 주만 추가 근무 16시간째였다. 프로젝트 론칭 기간이라 당분간은 줄줄이 야근일 터였다.

  지영은 출입구를 향해 서 유튜브 쇼츠 영상을 맥없이 넘겼다. 갓난아이 분장을 한 개그맨이 아기의 첫걸음마를 연기하고 있었다. 기저귀를 찬 개그맨이 다리를 후들거리자 객석에 앉은 동료 개그맨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지영은 웃지 않고 영상을 넘겼다. 그때, 지영의 왼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지영은 화들짝 놀라 왼 다리에 힘을 주었지만 떨림은 멈추지 않았다. 

  지영은 유튜브를 끄고 검색창을 열어 '다리가 떨려요'를 검색했다. 그러자 '하지 불안증' 증상이 나왔다. 난생처음 듣는 병명이었다. 지영은 연관 증상의 '다리가 무거워요'도 눌러보았다. 이번에는 '하지  부종', '하지 정맥류' 등 그나마 익숙한 병명이 나왔다. 검색 결과를 훑던 지영은 다리 붓기와 신장병의 연관에 대한 블로그 글을 보고 지난 건강검진에서 단백뇨가 나온 것을 떠올렸다. 신장 문제일 수 있으니 재검을 위해 다시 오라는 안내를 들었으나 좀처럼 시간이 나지 않아 미루던 차였다. 오른 다리에 힘을 실어 겨우 귀가한 지영은 다음 날인 토요일, 오픈 시간에 맞춰 내원했다. 

     

  "신지영 씨 사무일 하시죠?"


  "네, 그런데요."


  "요즘 다리 질환으로 병원 찾는 분들 많아요."


  "네에."     


  다리 질환으로 내원하는 환자가 많은 게 사무 업무랑 무슨 상관이 있는 건지, 블로그 글보다 모호한 설명에 지영은 대답을 흐렸다. 의사는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다리 근육 퇴화가 진행되고 계세요."


  "다리 근육. 퇴화요?"     


  지영은 너무 뜻밖의 이야기에 버벅거렸다.      


  "사용하지 않는 다리 근육이 약해지고 있다는 거죠. 재활 운동이 필요합니다."


  "아니요, 제가 묻고 싶은 건…. 제가 출퇴근 동안 역에서 집까지 20분은 꼬박 걷거든요. 가끔 외근 나가는 동안 걷기도 하고…. 그런데 왜 쓰임이 없다는 거예요?"


  "그건 그냥 걷는 거잖아요, 운동이 아니라."     


  지영은 할 말을 잃었다. 의사의 말인즉슨, 그냥 걷는 건 운동이 아니라 반복적인 움직임에 불과하단다. 걷기 운동이랑 그냥 걷는 건 다른 거라고….     


  "단백질 챙겨 드시고 정맥순환 약도 챙겨 드시고, 운동 꼭 하세요."     


  지영은 집에 돌아와 사이클과 다리 마사지기를 구매했다. 순식간에 30만 원이 빠져나갔다. 출퇴근 왕복 3시간인 지영에게는 헬스장에 다닐 시간도 돈도 기력도 없었다.     


-


  월요일 퇴근도 늦었다. 나인 투 에잇. 총 8시간, 누워 자는 시간의 두 배를 앉아 일했다. 내일도 마주할 밀린 업무, 밀려들 업무를 생각하면 현기증이 났다. 그때, 왼 다리의 힘이 완전히 풀린 지영이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어맛!"     


  사람들이 지영을 쳐다보았고 지영은 일어나 옷매무새를 고친 뒤 서둘러 옆 칸으로 이동했다. 집에 도착하니 주말에 주문한 사이클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사이클에 오른 지영은 고작 10분을 타고 내려왔다. 운동은커녕 수면시간만 2시간 앞당겨졌다.     


  머지않아 지영과 비슷한 사례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사회학자들은 '현대인의 고질병, 다리 질환'이라는 타이틀로 인터뷰를 진행하면서도 '자본주의 삶의 가속화'나 '챗 GPT vs. 인간 노동' 등 다리와 크게 관련 없는 것들에 대해 논쟁을 벌였다. 다리 운동 기구, 압박 밴드나 관련 의약품의 가격은 치사하게도 차츰 씩 올랐다. 

  노동단체에서는 기업이 근로자의 운동 시간 및 시설을 지원해 줘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고 곧 국가에서 기업을 상대로 관련 복지 '권고' 조치를 내렸다. 소액이지만 기업 대상 지원금도 나왔다. 소기업인 지영의 사무실에서도 운동 복지 지원을 약속했고 지영은 사내 대상자 모집 공고를 보고 곧장 신청했다.      


  일주일 뒤, 지영은 의자 대신 놓인 러닝머신을 발견했다. 키높이 책상과 러닝머신을 결합한 모양새였다. 출근 시간이 지나 업무 준비를 마친 직원들이 하나 둘 지영의 자리에 눈길을 모았다. 뒤이어 나타난 부장이 그 괴상한 기구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오래 앉지도 오래 서 있지도 못하는 직원을 위해 특별 제작된 사무용 운동 기구로, 부장은 지영을 위해 회사에서 큰돈을 썼다며 생색을 냈다. 그리곤 조작법을 알려주겠다며 지영을 러닝머신 위에 오르도록 했다. 부장이 전원 버튼을 누르자 삑- 소리와 함께 러닝머신이 작동됐고 갑작스러운 작동에 놀란 지영이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흡-."     


  누군가 웃음을 참는 소리가 들렸다. 지영은 출근 직후부터 파리해진 몰골로 메일함을 열었다. 9시 정각에 예약 발송된 메일이 새로고침과 함께 우수수 쏟아졌다.     


  종일 앉아 있는 것만큼이나 9시간 내내 걷는 것도 고역이었다. 아무리 최소 속도로 맞춰 놓아도 조금만 걸으면 다리가 저리고 땀이 났다. 지영이 잠깐씩 기구를 멈출 때의 삑- 소리와 숨을 몰아쉬는 소리에 누군가 키득거리는 소리도 창피스러웠다. 하필 지원자가 지영뿐이라 모두가 아닌 척 지영을 힐끔거렸고 지영이 자리를 비운 사이 러닝머신의 사진을 찍거나 심한 경우 러닝머신 위에서 업무 보는 모습을 찍어 인터넷에 올린 이도 있었다. 

  지영의 인내가 한계점에 다다랐을 무렵, 부장이 지영을 다시 찾아왔다. 낡아빠진 발전기를 들고서.      


  "이게 뭐예요?"


  "어어. 지영 씨 어차피 걷는 거, 발전기 연결해서 전기 만들어 쓰자고."


  "제가 쳇바퀴 돌리는 다람쥐도 아니고, 해도 해도 너무하신 거 아니에요?"

     

  지영이 언성을 높이자 방금까지 능청스레 웃던 부장도 얼굴을 굳혔다.      


  "이 사람이! 너무하긴 뭘 너무해? 지영 씨 때문에 회사에서 들인 돈이 얼만데. 이왕 들인 돈 회사에 득이 되게 쓰자는데 그게 그렇게 불편해? 이제 와 말하는 거지만 우리도 이런 말도 안 되는 복지 실천하는 게 달갑지 않아요-. 다들 뉴스에서 하는 말 들었지. 운동 부족 때문이라고. 그러게 진작 운동 좀 하지. 사람이 게을러서 말이야. 자기 관리도 일이야, 일!" 


  "아악! 일 절만 하세요!" 


  참다못한 지영이 소리를 지르자 사무실이 조용해졌다. 부장의 얼굴이 목에서부터 빨갛게 달아오르는 게 보이자 지영은 서둘러 사무실을 나왔다. 5년 만에 처음 저지른 무단 퇴근이었다.     


  한낮의 지하철은 한산해 앉을자리가 많았다. 지영은 여느 퇴근길과 같이 핸드폰을 향해 고개를 내리깔았다. 엉망이 된 회사 일에 블라인드에 접속하자 다리 질환 때문에 권고사직 당한 이야기, 지영처럼 말도 안 되는 운동기구를 지급받아 동물원 원숭이 취급을 당한 이야기가 잔뜩 쌓여 있었다. 지영은 온통 암울한 제목의 게시글 중 '미래의 우리 ㅋㅋ'라는 제목을 발견하고 그것을 클릭했다. 

  본문에는 다른 설명 없이 이미지 몇 장이 첨부돼 있었다. 영국 연구팀이 만들었다는 '사무직 노동자 인형 엠마'의 사진이었다. 실물 크기라는 인형의 외관은 개조된 러닝머신만큼이나 기괴했다. 충혈되어 새빨간 눈에 거북목, 튜브라도 두른 듯 빵빵한 복부, 그리고 터질 거 같이 부어오른 일자형 다리를 달고 있었다. 

  이게 우리의 미래구나. 지영은 생각했다.     


  지영은 의식적으로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고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햇빛을 받은 한강이 눈부시게 반짝였다. 지영은 오전 중에 일어난 모든 일이 꿈이기를, 그저 오랜만에 반차를 쓰고 일찍 집에 가는 길이기를 바랐다. 눈시울이 시큰거려 눈을 위로 치켜올리자 출입구 위의 전광판이 눈에 들어왔다. 여느 때와 같이 소리 없는 광고가 재생되고 있었다. 

  화면 속에서 멋들어진 커리어 우먼이 제 다리를 가볍게 들어 보이며 지영을 쳐다보았다. 모델이 입을 뻐끔거리자 큼직한 광고 문구가 나타났다.   

  

  '일잘러의 퍼펙트한 다리 관리'     


  "풉."


  지영은 허탈감에 웃음을 터트렸다. 같은 칸의 몇 없는 사람들이 지영을 쳐다보았다. 퇴근길에 봤던 개그맨의 걸음마 흉내보다 저 광고가 백배 천배 우스웠다.  

  지하철이 다시 터널로 들어섰다. 예쁘게 반짝이던 한강의 풍경이 덜컹, 어둠에 치여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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