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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May 05. 2024

여든다섯 할머니, 배드민턴장 간다.

<카운트>

배드민턴을 시작한 지 21일째.

다행히 이제는 새벽 다섯 시 반 알람을 끄는 것이 그다지 어렵지 않다.

올빼미족인 중학생 아들이 행여나 깰까 봐 소리가 들리면 바로 팔을 들어 빠르게 꺼버린다.

알람을 끄는 솜씨는 로봇에 버금가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데, 배드민턴 실력은 아무 변화가 없다. 그래도 어디선가 주워들은 이야기로 스스로를 위안한다.

"괜찮아! 어느 분야든 전문가가 되려면 만 시간을 투자하면 된다고 했어."


옆에서 누군가가 듣는다면 실소를 금치 못할 중얼거림일지도 모른다.

내게 부여된 아침 운동시간은 겨우 딱 1시간이기 때문이다. 신데렐라처럼 7시가 되면 아들을 깨우고 아침을 먹여 학교에 보내기 위해 부리나케 돌아와야 하는 운명.

계산기를 두드리면, 무려 30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하다.


6시, 배드민턴장에 도착해 몸을 풀고 있으면 사람들이 속속 도착한다.

그리고 내게 30년이라는 낙관적인 사고방식을 선물한 주인공도 유유히 걸어 들어온다.

붉은색 옷을 입은 85세의 할머니.

여기저기 배드민턴을 치기 시작한 사람들을 둘러보면서 들어오는 그녀의 눈가는 미소가 그득하다.

그리고 그 미소는 점수판을 꺼내 와 심판을 보면서도 계속 이어진다. 

처음 배드민턴을 시작했을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정말 진귀하게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궁금한 건 잘 못 참는 성격인지라, 하루는 옆에 서 있던 회원분께 물었다.

"저 할머니, 언제부터 저렇게 심판을 보신거래요?"

"우리 최고령 회원이에요. 85세.

 다니신 지 꽤 되셨지. 제가 처음 여기 초보로 시작했을 때 할머니가 70대셨나?

 저분이 이리저리 던지는 콕, 제대로 받아치지도 못했어요."

"네?"

놀란 내 얼굴에 더 믿기 힘든 이야기를 하신다.

"코로나 전에는 배드민턴 치셨어요. 그런데 그 기간에 쉬고 나서는 이제 못 치니까 심판만 보세요."

코로나 전이라면 80세 전후였을텐데 그때도 배드민턴을 치셨다니, 벌린 입을 다물기 힘들었다.


배드민턴장에서 할머니를 뵐 때마다 마음이 편안해진다.

할머니는 조용히 미소 지으며 점수판을 넘기다가, 누가 옆에 앉아있으면 등을 쓰다듬어 주신다.

나도 한 번은 할머니 옆에 앉아 같이 시합을 보는데 손길이 느껴졌다.

그 어떤 따듯한 격려의 말 한마디 들은 것보다 위로가 되는 느낌.

'그래. 지금 당장 못하면 어때? 천천히 하는 거야.

 오래오래 즐기면서 끝까지 해보는 거야.'


할머니께서 계속 건강하시기를!

<카운트>


0부터 시작해서

다시 0으로 돌아간데도

마음 다해 끝으로 헤아린다.


밀려드는

숫자 속으로

인상 쓰지 않을 테야

한숨짓지 않을 테야.


조용히

미소만 지어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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