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여성 풍경
시대를 제일 앞서 간다는 의미에서 첨단 직업은 항상 관심거리가 된다. 요즈음은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한 각종 개발자들과 이 기술을 활용하는 크리에이터들이 첨단 직업의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첨단 직업은 흥미롭지만 낯선 새로운 직업이라는 점에서 도전하기 위해 특별한 용기와 노력이 필요하기도 하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100여 년 전 1920, 1930년대 여성들의 첨단 일자리는 어떤 것이 있었을까? 시대의 변화에 따라 일자리는 계속 변하기 마련이다. 전통사회에서 이제 막 산업화가 시작된 식민지 공간에서 여성들은 두렵지만 낯선 직업군으로 서서히 진출하기 시작하였다.
1920, 30년대 사회에서 여성의 직업으로 승인되고 존중받는 직업군은 지금과 비슷하게 여교사와 간호사 그리고 보모, 여기자와 같은 전문직 직업이었다. 이러한 직업에 대한 당시의 사회적 이미지는 ‘현대사회가 여자들에게 준 비교적 고급의 직업’으로 평가되었다. 여교사의 경우 ‘관공립의 교사는 훈도라는 준관리’로 평가되었고, 간호부는 ‘흰 「족두리」를 쓰고 깨끗한 「앱프롱」을 입은 천사’인 대표적인 근대적 직업여성으로 소개되고 있었다. 의사, 작가, 기자 등을 포함하여 이 같은 직업은 일반적으로 고등보통학교 이상을 졸업한 여성들이 선택하는 직업으로 임금 수준도 비교적 높은 편에 속하며,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는 직업으로, 여성들 스스로 직업에 대한 자부심도 높은 직업군에 속한다.
그런데 이와는 달리 신종 첨단 직업으로 사회적 관심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직업들이 있었는데, 헬로걸, 데파트걸, 버스걸, 에어걸, 가솔린걸 등 생소한 직업이라 아직 우리 명칭을 얻지 못한 직업군이 있었다.
당시 신문기사에서 이들 직업을 소개하는 내용을 보면 상당히 재미있다. 우선 ‘헬로걸’은 전화교환수를 지칭하는데 이에 대한 묘사를 보면 ‘고속도의 줄과 소리와 빛의 얽힘으로 된 기계문명을 운전하는 근대 문명과 스피드 시대를 상징하는 신종 직업’으로 묘사되었고, 백화점 판매원인 ‘데파트걸’은 ‘근대 자본주의 물질문명을 자랑하는 모든 상품을 이 사람 손에서 저 사람 손으로 옮겨주는 처녀군! 그들의 이름은 거리의 천사요, 「데파트」의 여왕’이라고 지칭된다. ‘버스걸’은 짐작대로 여차장을 지칭한다. 1960, 70년대 일상생활에서 가장 자주 만나던 여성 직업인으로 여차장은 당시에는 ‘버스걸’로 지칭되었다. 우리나라 최초 거리를 누빈 버스는 1928년 부영버스였고, 버스 도입과 함께 검표를 하는 버스걸이 등장하였다. 당시의 신문은 신종 직업 중에서도 가장 ‘모험적이고 첨단적인 직업’ ‘대도회의 중심부를 누비며 모든 모험과 농락과 싸운다는 점에서 가두 부인 직업 제일선에 나선 용감한 여성들’이라고 여차장을 소개하였다.
전화교환수, 백화점 판매원, 버스차장 등의 직업은 해방 이후에는 단순 서비스직이나 판매직으로 인식되었지만, 1920,30년대에는 근대문명을 상징하는 신기하고 새로운 직업에 종사하는 대표적인 근대 직업을 가진 여성들로 사회적 이목을 받는 직업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주목과 관심을 받는다고 해서 이들 여성들의 직업생활이 화려하거나 쉬웠던 것은 아니다. 아직 대다수의 여성들이 농촌에서 집안에서 벗어나지 않고 살아가는 삶이 일반적이었던 시절 집 밖을 나와 경제적 활동을 했던 여성들의 직업생활에는 지금의 취업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난관과 애환이 있었다.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전혀 첨단이 아니라고 할 수 있지만 100년 전 근대적 산업화의 흐름 안에 뛰어든 이 여성들은 어떤 경험을 했을까? 그 삶과 경험에 대한 이야기로 슬쩍 더 들어가 보기로 하자.
자료: ‘돈벌이하는 여자 직업 탐방기’(연재기사) 동아일보, 1925.2.25.-1928.3.21.
‘직업전선, 신여성의 행진곡’(연재기사) 조선일보, 1931.10.11.-1931.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