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파인 Nov 29. 2023

1930 여성기억  헬로걸 그리고 <다음 소희>

근대 여성 풍경

 

  올해 초 <다음 소희>라는 영화를 보았다영화를 만든 정주리 감독과 함께 영화를 보고 대담을 하는 GV 행사였다특성화 고등학교 현장실습생으로 콜센터 상담원으로 일하게 된 춤추기를 좋아했던 한 소녀의 삶이 스러져 가는 과정이 가슴을 아리게 했다. 2017년에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인데 영화 상영 중 여기저기서 공감과 탄식 그리고 울음이 들려왔다. 2023년 현재도 많은 여성들은 텔레마케터콜센터 상담원 등으로 전화 앞에서 끊임없이 거절되고상처받는 감정노동을 하고 있다.     

  

  100년 전에도 여성들은 전화의 등장과 함께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우리나라에 전화가 등장한 것은 1902년이었다. 1902년 3월 서울과 인천 사이의 전화가 가설되었고같은 해 6월 시내교환전화가 가설되었다, 1903년에는 부산에도 전화가 가설되면서 전화교환수가 등장하였으나 조선 여성이 여성교환수로 본격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한 것은 1920년대였다고 한다. 1930년대 들어서면 전화교환수가 수 천명에 이르게 되는데 경성의 경우 중앙전화국과 광화문용산 두 개의 분국에만 400여 명의 교환수가 있었고각 관청회사은행신문사 등에서 구내전화를 교환하는 수 명씩의 전화교환수가 있어 숫적으로 적지 않아 여성들의 주요 직업이었던 것으로 보인다.(동아일보, 1930.10.13.)     

 

   당시 전화교환수의 자격은 쉽지 않아 예민한 청각과 명랑한 목소리는 물론 전화교환대의 높이 때문에 키가 4척 7(143cm 정도이상은 되어야 했고채용 시험은 국어산술작문 이외에도 기억력과 동작 예민성 등에 관한 적성시험을 거쳐 채용되었다고 한다. 1928년 중앙전화국 광화문 분국의 전화교환수 업무의 현장 탐방 기사에 소개된 헬로걸의 업무 현장을 보면 다음과 같다.       

  

  “40명의 교환수 중 조선여자가 11명이었는데보통 15세에서 18세 사이의 여성이며교환대 17대에 1대에 3명씩 앉아 일하고 몇 사람 사이에 감독이 감시하고 있었다고 한다.  근무시간은 매일 9시 30분에서 4시 30분이고 사흘째 되는 날 야근이 있고 다음 날 9시 40분부터 하루 휴식을 취하는 방식으로 일하였다고 한다.(동아일보, 1928.2.25.)     

 

전화교환수 <조광> 1936.3월호

  


  임금은 수습생의 경우 월 19원 50정식 교환수는 월 24원의 수준이었는데이는 당시 간호사가 30원에서 60교사가 40원에서 80원이었던 수준과 비교해 보면 임금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근무시간은 평균 8시간에서 12시간이었다고 한다한 전화 교환수는 자신의 일에 대해 신경을 잃어버린 기계처럼 목소리로만 일한다고 하면서’ 궤짝 같은 작은 방에 갇혀 3년간 똑같은 소리를 반복하는 이상한 직업으로 자신은 기계에 불과하다고 한탄한다.  또한  손님의 야비한 욕설과 교환감독의 꾸지람은 물론 결근하면 일급도 없고야근 때 4시간씩  교환대에 있으면 졸음을 참기 어렵다고 자신의 일의 어려움을 토로한다.(여성 1933.12.)     

 

   지금은 전화교환수는 거의 사라졌지만전화를 활용한 마케팅이나 고충처리를 담당하는 콜센터 상담원으로 많은 여성들이 일하고 있다문제는 이 일이 감정적 스트레스가 매우 큰 직업 중의 하나라는 점이다일상적으로 욕설하거나 무시하는 언사치근덕대는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회를 내지 않아야 되고다른 한 편으로는 상담 콜 수치로 극한으로 경쟁시키고 평가받는 압박 속에서 상처받는 경험을 하고 있다. 100년 전 첨단 여성 일자리로 시작해 현재에도 전화 앞에서 친절하고 명랑한 목소리로 고객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고, 연결해 주는 의미 있는 일을 해온 여성들이 온당하게 대접받는 환경의 구축은 어떻게 가능할까

  

   사실 나도 안녕하세요고객님’ 하며 최선을 다하고 있는 분들께 가끔씩 짜증을 낸 적이 있는 것 같다. <다음 소희>를 보며 공감하고 아파했던 시간들을 생각하며조금 더 침착하고 따뜻하게 대화하는 연습을 해야 할 것 같다


             

자료 :  “자동기의 출현과 교환수양의 위협 : 교환대의 로봇뜨 기계적 사무에도 가진 놀임과 뜻밖에 꾸지람이           만타” 『조선일보』 1931.10.13.  

         “<하이 하이 난방>이 입버릇 된 교환수 아가씨들의 설움” 『동아일보』 1928. 2.22 – 2.26 

         “제1선 상의 신여성: 할로걸 백장미 사례 ”, 『여성』 1933.12, pp.58-59.       


작가의 이전글 여성기억 1920 03 100년 전 여성 취업논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