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윤희 May 16. 2023

단식농성하는 시의원도 있어서...

[제일 만만한 기초의원 이야기] 열일곱번째

별난 일이 생겼다. 시의원들이 단식농성 들어간다고 한다. 시의원들이 뭐가 부족해 단식농성에 들어가나. 생계가 위협을 받나, 재산권 침해가 일어났나. 남의 얘기가 아니라 우리 안성시의회 민주당 의원들 얘기다. 안성시의회는 총 8명의 의원이 있고, 민주당은 이중 3명이다. 3명의 의원 중 둘은 여성이고 한 명은 남성이다. 여성의원 둘은 사십대 후반, 남성의원은 이제 서른이다. 그중 한 사람이 나인데, 나는 내가 일생에 단식농성을 하게 될지는 몰랐다.      


단식농성하는 시의원들

민주당 의원들은 안성시청 입구에 가로 6미터, 세로 3미터의 천막을 쳤고, 천막 옆에는 현수막 3개가 길게 늘어섰다. 스치로폼을 깔았고, 밤에는 작은 2인용 텐트가 쳐졌다. 24시간의 노숙과 언제까지 계속될지 알 수 없는 단식... 이들은 앞서 단식농성의 이유를 말하는 긴 기자회견문을 읽었다. 기자회견 문의 마지막은 이랬다.  

   

“저희 세 명의 민주당 시의원들은 한 번도 단식농성을 해본 일이 없습니다. 노숙을 해본 적도 없습니다. 잘할 수 있을지, 누구 하나 심신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지 두려움이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나서지 않으면 이 불의를 바로잡을 수 없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시민을 볼모로 한 이 갈등과 싸움을 끝내고자 합니다. 저희와 함께 해주십시오. 이제 안성시민 여러분 말고는 저희가 기댈 곳이 없습니다.”      


이제 기댈 곳은 시민밖에 없다는 글귀를 읽다가 여성의원은 울었다. 이런 악다구니 속에서 끝내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황망해, 정말 이래야 하는지를 스스로 묻다가 솟구치는 눈물이었을 것이다. 여성의원은 단식을 시작하기 전날 집에 혼자 있을 남편을 위해 밑반찬을 여러 개 만들었다. 고추된장박이, 콩나물무침, 멸치볶음을 하다가 일상이 이렇게 무너지는가 싶었을 것이다.      


일상의 귀함... 작은 캠핑의 행복


어지간하면 그냥 살지 싶은데, 어지간하면 단식이겠나, 스스로가 말한다. 나는 약간의 상처를 받았다. 임기가 시작되고 10개월 간 국민의힘의 상식 이하의 행동들에 밤잠도 설치고 분노도 하고 울기도 하고 그랬다. 피켓시위, 기자회견, 고성이 오가는 싸움은 그런 과정에서 나온 일이다. 하지만 소수당으로서 싸움이 해결해주는 게 별로 없는 듯해 노선을 조금 바꿨다. 국민의힘도 사람이니 친해지고 인간적인 관계를 맺음으로써 사태를 해결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것. 그리하여 함께 술도 마시고 아양도 떨고 호의도 보이고 접대도 하며 나름 노력했다.  

    

그 절정은 국민의힘 시의원님들도 잘 모시겠다는 본회의 자유발언이었다. 꽤 많은 사람들은 그 발언에 감동 받았다고 했지만, 또 꽤 많은 사람은 비웃었다.      


사태는 다음날 벌어졌다. 국힘이 민주당 시장의 행위를 문제 삼으며 모든 조례를 부결, 보류시킨 것... 국힘 의원님들은 아예 방침을 정해놓고 임시회에 들어와, 심사도 설명도 없이 일사천리로 사태가 벌어졌다. 나의 호의는 묵살당한 셈이었다.      


분노는 서서히 왔다. 점심을 먹을 때쯤 깊은 불쾌감이 올라오더니, 오후에는 짜증과 분노가 일었고, 밤늦게까지 이 부당함을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가에 모든 생각이 쏠렸다. 잘나서 뭘 해보겠다는 게 아니라, 이런 걸 두고 보면 바보라는 소리나 들을 것이라는 생각이 강했다. 양심이 수용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다고나 할까... 밤새 삼보일배와 장외투쟁, 삭발 등을 떠올리다가 끝내는 단식으로 갔다. 삼보일배를 하면 어느 루트로 걸어야 하는지 지도를 보았으나 인도가 없는 도로가 많았다. 이 도시에서도 도로를 점령하지 않으면 삼보일배 어려웠다. 신기한 것은 삼보일배를 생각만 하는데도 무릎이 뜨거워졌다는 것...      


그리하여 단식이 시작됐다. 하루가 꼬박 지났고 이제 이틀째다. 단식농성은 많은 시민들의 관심을 불렀고, 반응은 잘했다라는 게 다수였다. 시민들도 국민의힘 시의회의 폭거에 시달릴 만큼 시달렸던 것. 국민의힘은 궁지에 몰린 것처럼 의회 문을 닫아걸었다.      


배지의 무게는 이렇게 무거워서... 마음이 분노를 먹고 견디는지 아직 큰 배고픔은 느껴지지 않는다. 시위현장 앞으로는 시청을 드나드는 차들이 수시로 지나다녀 노숙이나 다름없다. 거리에 나앉아봐야 억울한 자들의 심정이 보일지도 모른다. 고대광실의 화려한 의자에 앉아있으면 세상이 다 그러한 줄로 알지도... 나쁘지 않다. 나는 그래도 집회나 시위에 익숙하지만, 나머지 나보다 나이 어린 두 명의 의원은 이런 시위 생애 처음일 것이다. 신경이 예민해진 두 의원이 짜증을 내길래 그래도 연장자라고 나는 이런 뻔한 말을 했다.      


- 삶에서 생겨나는 모든 고통은 신이 우리에게 주신, 성장하라는 기회라고..      


이 물질세계에서 어쩌면 아무 소용도 없는 말. 하지만 절박한 자들에게는 살아갈 이유가 될 수도 있는 말일지도...      


단식 이틀째가 시작되는 아침, 두 의원은 약간 명랑해졌다. 어제 종일 농성장에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관심을 보이고 응원을 해주니 새로운 세상을 얼핏 보았을 것이다. 그 새로운 세상이 뭔지는 경험해본 사람만 안다. 나도 상임위장의 그 상식 이하의 발언을 듣지 않고 단식으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하는 마당이니 속은 차라리 편하다. 아직 하루만 단식했기 때문에 이런 말 하는지도 모르겠지만...   

안성시청

  

안성시청은 언덕 꼭대기에 있다. 5분쯤 등산을 해야 올라올 수 있는 곳이다. 대중교통도 따로 없어 노약자들은 몇 번을 쉬기도 한다. 입지 자체가 예전 권위주의 시대를 상징하는 것 같다. 대신 주차장이 광장처럼 있어 저녁 때면 걸릴 것 없는 하늘이 아주 장관이다. 어제 저녁 그 하늘을 오래 보았다. 하늘과 땅과 바다, 우주는 늘 같은 말을 한다. 그 하나의 문장을 생각한다.      


이제 단식농성 이야기 쓸 거다. 흔히 없는 경험이니... 


이전 17화 정치인의 재산신고, 지자체의 예산, 시민의 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