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출직 공직자, 고위공직자들은 재산신고를 한다. 기초의원도 재산신고를 한다. 1년에 한 번은 무조건 하고 임기 시작될 때, 퇴직할 때도 한다. 직계존속도 포함된다. 부모님이나 자식의 재산도 공개된다는 얘기다. 금융정보 동의서를 제출하면 입출금 통장에 잔액이 원 단위로 나온다. 주식거래도 당연히 신고... 나는 재산신고를 하면서 내 가계의 총재산 규모를 처음 알았다. 남편이 나 몰래 받은 대출이 있다는 것도(크게 혼내지는 않았다), 종신보험에 그동안 들어간 돈이 얼마인지도 재산신고를 하면서 알았다.
재산신고 좋은 제도이지만 당하는 사람은 번거롭고 뭔가 나체로 던져지는 기분이다. 재산이 많은 사람이라면 선출직 공직자 따위 안 할 듯... 하지만 부와 권력은 인간욕망의 양대산맥이니 돈 많으면 자연스레 권력에도 눈이 가겠다. 권력이 있으면 부가 따라오고, 부가 있으면 권력도 따라오는데 이 2023년 전지구적 자본주의 시대에는 '부'가 우선인 듯하다. 선출직 공직자 별로 권한 없다. 권력이 대단한 무슨 변화를 가져오진 못하는 것 같단 얘기다. 물밑에서 진정으로 힘을 갖는 것은 돈, 자본, '부'다. 그걸 알아서 청년들이 정치에 별 관심이 없을 것이다. 그들은 부로 승부하겠다는 자세다.
나는 저 사람이 대통령 되면 나라가 망할 거야, 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 세계 경제규모 10위권의 대한민국 시스템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십몇 년쯤 후퇴하게 만들거나 앞서가게 만들 수는 있겠지만 국가라는 어마어마한 시스템 앞에서는 대통령도 한때다. 이 나라의 시스템의 가장 우위에 있는 것은 기재부라는 얘기도 있다. 청와대 주인은 기간제로서 5년마다 바뀌지만 나라 돈줄을 틀어쥐고 있는 기재부는 바뀌지 않는다. 기재부에는 유학파 등 최고의 엘리트들이 주둔해 있다.
일개 기초의원이 할 수 있는 게 뭘까? 작은 주차장 하나 만들어달라는 민원도 해결이 힘들다. 조례도 크게 영향을 주진 않는다. 특히 예산이 수반되는 조례라면 지자체와의 협의가 따라야 하니 기초의원의 영향력이란 게 별게 없다. 존재감에 비하면 의전이 과하다. 재산공개도 과하다.
# 의외로 공평한 세상
삶은 공평하다. 누구에게나 유한하다. 누구나 죽기 때문이다. 대단한 부자도 죽고, 대단한 권력자도 죽는다. 우린 이걸 가끔, 아니 자주 잊는 듯하다. 나는 모 기업 회장이 죽을 때 억울했을까 궁금하다. 그는 자신의 재산이면 죽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삶이 달콤하기보단 그 반대에 가까웠던 내게, 또 가난한 자에 가까운 내게, 죽음이 대단히 억울한 일은 아닐 것 같다. 물론 죽음 앞에서 어떻게 태세전환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이것은 삶의 가치를 논하는 게 아니다. 죽음을 받아들일 때 지불해야 할 번민과 괴로움의 비용을 말하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그래서 또 공평하지 않을까 싶은...
jingming-pan-unsplash
우리 시의원 중 한 사람의 재산은 수십억 원이 넘는다. 그는 로또 1등에 세 번쯤 당첨됐을 때나 가질 수 있는 재산을 가지고 있지만 그의 삶이 타인의 삶과 비교해 별나게 행복해 보이지는 않는다. 시의원 중에는 재산이 몇 천만원인 사람도 있다. 그의 삶도 마찬가지로 별나게 불행해 보이지는 않는다. 두 사람은 죽음 앞에서 공평하여 전부를 놓고 보면 큰 차이를 찾기 어렵다.
두 사람의 그 어느 사이쯤 있는 나도 죽는다. 우리는 시의회라는 곳에서 아웅다웅하며 하루를 십 년처럼 살고 있지만 결국 자연인으로 돌아갈 것이며, 손에 쥔 것 하나 없이 죽어 다시 우주의 먼지가 될 것이다. 이 공평함을 생각하면 가없는 안도감이 몰려온다. 누구에게나 도래할 마지막...
왜 죽음을 이야기하는가? 사람들이 죽을 날은 생각도 않고 끝간 데 없이 서로 비난하고 갈등만 하니 그렇다. 안성시와 안성시의회가 추경을 앞두고 다시 전쟁을 예고하는 중이다. 국민의힘 시의회는 보훈명예수당을 인상하는 조례를 통과시켰는데, 시가 이런저런 이유로 편성을 안 했다. 그러니 시의회가 발끈하고 시장 물러나라는 기자회견을 했다. 이번 임시회에 올라오는조례는 모두 부결시키겠다는 선전포고도 들린다. 우습게도 이전에는 입장이 서로 반대였다. 시가 편성한 예산의 상당 부분을 시의회가 삭감했고, 그때는 시장이 바람 부는 언덕에 서서 긴 기자회견문을 읽었다.
# 마이너스 말고 플러스의 정치를 하자
안성시와 안성시의회는 지금 마이너스의 정치를 하고 있다. 싸우는 거 좋다. 대신 플러스의 정치를 하면서 싸우면 안 되나? 잉여금이 무려 4천억원에 가까운데 말이다. 예를 들면 이렇게 싸워야 할 일이다.
“잉여금이 이렇게 많은데 왜 사업 이것밖에 안 하나, 왜 예산 이것밖에 편성 안했나? 직무유기 아닌가?”
“지금 보훈수당만 올릴 게 아니라 다른 수당도 더 올려야 하는 거 아닌가? 시민의 삶이 얼마나 힘든데...”
“공무원들 일하게 하려면 예산을 주라고! 돈 쓰는 일이 얼마나 고된 줄 알아?”
서운산에서 보는 안성시 야경
정치권의 극단적인 치킨게임은 시민을 피해자로 만든다. 안성시민은 세금은 내고 그만한 공공서비스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지자체의 예산은 남기라고 있는 게 아니다. 예산수립의 원칙 중 하나가 수지균형, 균형재정의 원칙이다. 그게 안성에선 무색하다.
죽음을 생각하면 용서하지 못할 것이 없고, 죽음을 앞에 두었을 때 우리는 똑같이 다만 '더 많이 사랑하지 못했음'을 후회할 것이다. 시와 시의회, 양측은 현재 감정이 상했다. 감정이 상해서 만나지도 못한다. 제발 그만 싸우자. 나는 방금 용기를 내 가장 강성이라는 국민의힘 시의원 한 분에게 전화했다. 처음이었다. 술 한 잔 하자고 했다. 우리 사이에 술 한잔 정도는 괜찮지 않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