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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윤희 May 17. 2023

나를 먹어서 견디는 일

[제일 만만한 기초의원 이야기] 열여덟번째

단식투쟁 시작하고 3일째다. 어제까지는 점심에 잠깐 배고픔을 느꼈을 뿐, 그다지 힘들지 않았는데, 오늘은 아침부터 힘이 하나도 없다. 시청 샤워실 샤워기 들어올리는 일이 힘들었다. 밀크커피 한 잔이면 멀쩡해질 것 같은 기분이다. 몸무게는 얼마나 빠졌는지 알지 못한다. 물과 비타민, 소금만 먹었다.     

 

농성장에서 보이는 안성시청 입구, 그리고 소금

내 몸속에서는 현재 자가포식이 이뤄지고 있을 것이다. 자가포식이란 세포가 영양소 결핍 상황이 됐을 때 자신의 단백질을 분해하거나 불필요한 세포를 스스로 제거해 에너지를 얻는 걸 말한다. 재밌는 현상이다. 나는 나를 먹고, 나를 먹어서 견디고 있다. 나를 먹어서 이룰 것이 무엇일까?       


시청 입구에 2인용 텐트를 치고 여성의원과 잔다. 시청은 밤 9시쯤 되면 조용해지는데, 아침에는 5시부터 시끄럽다. 청소하는 어머니가 끌차를 끌고 지나가고 아침운동하는 사람이 지나가고 이른 출근을 하는 노동자들의 트럭이 지나간다. 새가 울고 바람이 불고... 길바닥에 살아보니 길바닥에서도 삶은 피어나고 시위 현장에도 일상이 있다는 걸 알겠다.      


어젯밤엔 고공농성 같은 걸 1년도 훌쩍 넘게 했던 노동자들을 떠올렸다. 그들이 얼마나 절박했을까를 생각하니 문득 눈물이 고인다. 사흘하고도 이런데 세상의 백척간두 위에서 수백 일을 견뎠을 그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싶다.      


낮에 더위가 배고픔보다 견디기 더 힘들다. 어제는 32도까지 올라갔고, 지붕이 하얀 천막 아래는 더 뜨겁다. 은근한 불 속에서 의식이 아득해진다. 응원 방문을 와주는 분들이 끊임없이 이어져서 그나마 다행이다. 사람은 혼자서는 견디지 못한다. 주위에 누군가 있어, 함께하는 사람이 있어서 배고픔도, 더위도 견딘다는 걸 알겠다.      

unsplash. Andrew Bui


다 부질없다고, 세상이 무상한데 무얼 하고 있느냐고 내 안의 내가 묻는다. 질문이 쓸쓸하다. 잠시 찰나의 무심이 지나가고 내 안의 내가 다시 대답한다. 나는 어떤 의도를 갖고,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해 이런 고행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그럼 무엇인가.      


그저 어떤 인연으로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이 발생했고, 그 일에 반응하듯이 내가 또 움직이는 것뿐이라고... 내 움직임은 수행하듯이, 모른 척하듯이, 놓아버리듯이, 받아들이듯이 있을 뿐이다. 단식이어야겠다는 결정은 내가 한 것이 아니다. 아마도 이 세상이 했을 것이다.      


집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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