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 6일차다. 머리가 뜨겁고 입에서 쓴물이 올라온다. 이틀 전 혈압이 170, 혈당이 58 나왔다. 진료를 나온 보건소에서 의원이라고 구급차를 불러준다는 걸 마다하고 혼자 차 끌고 병원에 다녀왔다. 나는 의전을 싫어한다. 의사는 스트레스로 혈압이 높아질 수 있다고 했다.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 하지만 힘이 없을 뿐, 일상생활은 그럭저럭한다. 사람이 이렇게 안 먹고도 살 수 있구나 하며 감탄하는 중이다. 오늘 처음으로 몸무게를 쟀는데 5킬로그램이 줄었다.
먹고 싶은 걸 생각해보기로 한다. 밀크커피, 꼬마김밥, 비빔밥, 쫄면 등이 떠오른다. 평소에 좋아하는 것들이다. 시민분께서 지나가다가 작은 초콜릿 두 개를 주고 가셨다. “이건 먹어도 되잖아. 먹으면서 해요.”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그 초콜릿을 그냥 두고 만지작거릴 뿐 사흘째 먹지 못하고 있다. 다른 의원들을 생각해도 그렇고, 단식농성을 한다는 양심에 비춰도 그렇다.
알지 못하는 시민께서 주고 가신 초콜릿과 벌꿀
시위하는 천막으로 사람들이 끊임없이 온다. 아직 6일차이니 많이 오는 것일까? 단식농성이 열흘쯤 넘어가면 그때는 사람들의 관심도 시들해지는 것인지를 생각한다. 말을 많이 하면 힘들기도 하지만, 사람이 많이 와서 그나마 견디고 있음을 떠올린다.
오늘은 시청을 벗어나 지역의 김학용 국회의원실 앞으로 농성장을 옮겼다. 국민의힘 시의원들의 폭주에 국회의원의 입김이 작용하고 있다는 추론 때문이다. 키맨이 따로 있으면 핵심에 다가가는 게 맞다. 국회의원실은 대단위 아파트 단지와 상가가 밀집한 지역에 있다. 큰 사거리로 차량들이 끊임없이 지나가고 사람들이 지나간다. 인도 한가운데 큰 천막이 쳐지고 현수막이 달리니 사람들이 흘깃 쳐다본다. 시청 앞과 분위기가 다르다. 지나가는 시민이 응원한다고 말하기도 하고, 알던 사람들을 만나기도 한다. 이곳은 시청입구와 다르게 시민을 만나는 자리다.
그제 국민의힘과 협상이 몇 번 오갔다. 국민의힘은 우리의 요구안 6개 중, 하나만을 수용했다가 3개까지 수용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 3가지는 매우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것들이었다. 최후까지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것 하나를 추가로 담아달라고 했으나 수용되지 않아 협상은 결렬됐다.
문제가 된 요구내용은 우리가 단식농성을 시작한 후 의장과 시장이 만나 나름의 협의를 했으니 그것을 ‘지키겠다’라는 약속을 해달라는 것. 하지만 놀랍게도 국민의힘 의원들은 의장의 협의는 우리가 알 바 아니라고 수용할 수 없다고 했다. 오호, 이것은 어디 당나라의 말인가?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약속은 하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협상을 하던 날 단식 4일차였다. 의원들은 간절히 협상이 타결되길 희망했다. 단식할 때 가장 힘들다는 3,4일차였으니까... 그럼에도 요구안을 접을 수 없었다. 겨우 그거 받자고 단식을 시작한 것은 아니니... 협상이 결렬되고 한 차례의 쓰나미처럼 가중된 고통이 지나갔다. 하지만 지나갔을 뿐, 흔들리지는 않았다.
평소에 오디오북을 들으며 명화그리기diy를 하는 걸 좋아한다. 명화그리기는 유치한 취미이지만 마음이 차분해지고 슬쩍 무심의 경지를 넘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전에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이 있었다. 도대체 그림에서 빛은 어떻게 표현되는 것일까. 사실적인 그림 속에서 빛은 정말 빛 같았으니까... 가늠이 되질 않았는데 얼마 전 알게 됐다. 빛을 표현하기 위해선 어둠을 먼저 그려야 한다는 걸... 어둠이 없으면 빛도 없다는 걸... 놀라운 깨달음이었다. 어둠이 있어서 빛이 빛이고, 빛이 있어서 어둠도 존재할 수 있는 것이었다.
단식농성을 하는 지금은 어둠인가, 빛인가... 잘 모르겠다. 어쩌면 어둠이겠지만 어쩌면 빛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삶은 오묘하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