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만만한 기초의원 이야기] 스무번째
단식 10일차다. 기어이 어제 나와 한 텐트에서 8일째 동침하던 여성의원이 병원에 실려갔다. 그제부터 복통을 호소했는데, 위경련 같은 것이겠거니 했지만 급성 췌장염이라고 한다. 췌장수치가 정상의 4배까지 나왔다. 병원에 실려 간 의원은 몇 시간 뒤 전화해 남은 의원들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그게 미안할 일인가... 마음이 아프다.
나는 아직 멀쩡한 편이다. 아침 6시 전에 일어나 씻고 화장을 한다. 화장을 하는 건 아직 건재함을 보이기 위함이다. 제일 힘든 시간은 아침이고, 샤워할 때 힘이 든다. 그 외에는 낮에 천막 아래의 더위가 힘들고 가끔씩 기력이 떨어져 잠깐잠깐 누워야 할 뿐이다. 사람이 열흘을 먹지 않아도 이렇게 살 수 있구나 싶어 감탄하는 중이다.
아마 출처가 상대당일 가능성이 있는데, 쟤네 무얼 먹으며 단식한다는 소리를 퍼뜨리는 부류도 있는 모양이다. 물과 소금만 먹는다고, 매일 보건소에서 나와 혈당 체크를 하는데 60 전후 저혈당이라고, 개소리하면 단호히 대처하겠다고 SNS에 엄포를 놓았다. 사람이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 이미 넘어진 자에게 발길질을 하는 행위 같은 거... 그런 건 용납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들도 있다.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연민 같은 거... 쟤가 아무리 나를 괴롭혀도, 저도 힘들어서 저러겠지, 라는 연민의 시선을 포기하면 안 된다.
어제 농성장을 방문하신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오죽하면 단식이겠냐’ 생각했다고... 그게 사람된 자의 도리고 이해고 측은지심이 아닐까?
공당의 일개 시의원들이 한꺼번에 이렇게 단식하는 일은 거의 없지 않았을까 싶다. 그것도 열흘 넘게... 우리가 단식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폭거를 일삼는 국민의힘에 요청한 사항들이 있는데, 사실 너무 기본적이어서 말하는 나도 부끄럽다. 그래도 여기 적어본다.
1) 시장을 만나 문제를 해결하라 (만나라는 게 요구가 되다니 기가 막히다)
2) 기준을 갖고 합리적으로 조례와 예산심사에 임하라. 삭감의 경우 그 이유를 명확히 밝히라(국민의힘은 23년 안성시 본예산을 심사하며 무려 700개 이상의 사업을 삭감했고, 그 이유를 ‘불요’, ‘과다’로만 적었다)
3) 심사도 없이 모두 부결, 보류된 안건을 재상정하라 (이번 임시회에서 국민의힘은 보훈명예수당 인상분 9억원을 안성시가 미편성했다고 모든 조례를 부결시키는 이성적이지 않은 실력행사를 감행했다)
4) 공직사회에 대한 갑질과 권위주의적 태도를 버리라 (몇 박스씩의 자료요구, 회의장에서 아이를 혼내고 면박주는 말투, 반말 등)
이런 거 요구한다고 열흘째 단식하고 있다. 이 정도로 안성시의회가 비상식적이란 얘기다. 단식을 결정하기까지 하루쯤 심각하게 고민했다. 단식은 생명과 직결되는 것이니... 그래도 참을 수 있는 한계라는 게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상식을 견디며 소수당이니 찍소리 않고 사는 건, 의원대접 받으며 만족하는 건 길이 아니었다.
거리에 나앉아 있는 지금은 일상이 붕괴되고 몸은 힘들지만 마음만은 편하다. 내겐 식구랄 게 별로 없었다. 그런데 지금 새로운 식구들이 생기는 것 같아 행복하다. 오늘 아침엔 가까운 사람들의 모임단톡방에서 논란이 일어났다. 이제 단식 그만하게 해야 한다고... 감동적이었다.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사람들, 진심으로 응원해주는 사람들... 저 분들이 나를 자기처럼 아껴주는가 싶어 마음에 따뜻한 물 같은 게 고였다. 세상에 그것보다 더 귀한 게 어디 있을까...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눈가가 따뜻해진다. 내겐 새로운 식구가 생기고 있다. 그 사람들과 평생 살아가면 될 일이다.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