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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윤희 Jul 27. 2023

기자의 중립, 이통장단의 호통

[일개 시의원이 떠듭니다] - 하나

어느 기자가 말했다. 자신은 언론인으로서 중립을 지킨다고... 나는 잠시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는 자신이 매우 중요한 가치를 말한 듯이 굴었다. 자신의 문장 한 줄이 없는 기자였다. 평가와 비판이 없는 기자라... 오만한 내 눈에는 그가 바보로 보였다.       


그가 말하는 중립이 뭘까? 세상에 중립이란 게 있을까? 사람이 절대적 균형을 갖고 양쪽을 바라보는 게 가능할까? 내 생각에 그건 망상일 뿐이다. 우리는 언제나 편향돼 있다. 누구나 자신의 창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 창은 창마다 모양이 다르고, 비추는 곳도 다르다. 우리가 신이 아닌 이상, 중립의 길을 열어주는 창이란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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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로 세상의 모든 사건은 편향돼 있다. 모든 사건은 복합적이지만 중립적이지는 않다. 중립적인 사건이 있다면 그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할 것이다. 중립적인 사건이 없으니 중립적인 의견도 있을 수 없다.     

 

기자의 말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양쪽의 입장을 똑같이 다루고, 옳고 그름에 대한 진단도 없이 하나마나한 말만 하면 기자라 할 수 있을까? 세상의 수많은 고통 앞에서 하나마나한 말은 얼마나 무용한가? 내가 아는 언론인 선배는 이렇게 말했다.      


“기자의 가장 큰 특권은 어떤 사건을 쓸지, 안 쓸지에 있지.”       


쓰면 사건이 되고 안 쓰면 없는 사건이 된다. 이 어마어마한 편향이라니... 그런데 중립이 있을까?    

  

언론에 필요한 가치는 공정이지, 중립이 아니다. 공정과 중립의 개념을 얼렁뚱땅 섞어버리지 말자. 사건을 열심히 보고, 바로 보고, 옳고 그름에 대해 판단하고 그에 대한 비판적인 기사를 내는 것. 그것이 언론이 해야 할 일이 아닐까? 대체로 중립을 말하는 이들은 중립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한쪽 편을 들었을 때 예상되는 손실을 피해보자는 의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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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꽤 긴 시간 기자였다. 기자일 때 옳다고 믿는 것의 편을 들었다. 편향된 기자였지만 내 양심에 비춰 진실되고자 노력했다. 어쨌든 매우 편향됐던 내 기사는 포털사이트에서 랭킹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얼마전에는 이통장단협의회에서 시의원 출입금지령을 내렸다. 각 읍면동에서 매달 열리는 이통장단 회의에 시의원은 들어오지 말라는 얘기였다. 행정사무감사에서 어느 시의원의 발언이 문제가 됐고, 이에 이통장단이 발끈한 결과였다. 문제가 된 발언은 국민의힘 시의원이 했는데, 문제는 민주당 시의원까지 모조리 출입금지라 했다. 민주당은 왜? 소수당인 민주당 시의원들은 국민의힘 시의원들의 몰상식과 싸우기 위해 단식까지 하지 않았던가? 이해할 수 없어 까닭을 알아보니, 이통장들 입장에서 국민의힘이 싫지만 그렇다고 민주당도 좋은 건 아니기 때문이라고 했다.      

 

양당 시의원 모조리 오지 말라는 통보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정치혐오인가, 정치적 중립인가? 정치적 중립이라면 그것은 마땅한 태도인가? 어쨌든 이통장단협의회에서는 지역정치권에 대한 준엄한 호통을 전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의도는 그러했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읍면동 회의에 오지 말라는 출입금지령이 어떤 시의원들에겐 그저 할 일 줄여주는 좋은 소식이었다. 어느 시의원은 출입금지령에 ‘땡큐’로 응답했다.        


의도했던 것은 호통이었는데, 호통이 호통으로 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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