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 중 가장 만만한 기초의원 이야기] - 열여섯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지역의 선배가 며칠 전 생을 마감했다. 그와는 생전에 몇몇 사람들과 어울려 곧잘 술잔을 기울이며 한때를 보냈다. 그는 악착같이 무언가를 성취하기보다는 끈을 하나 놓은 사람처럼 사람들과 어울리며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선비 같기도 하고 한량 같기도 했는데 고집은 없었고 얘기를 맛깔나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덕분에 낮술도 곧잘 마셨다. 그가 선호하는 술집은 시골구석에 있는 오래되고 허름한 곳이었다. 그런 집에선 사연 많은 삶을 살아왔을 듯한 장년의 여성들이 밑반찬을 내왔다.
환갑도 되기 전에 생을 등진 무정함이 노여워 장지까지 따라갔다. 산벚꽃이 군데군데 만발한 길을 그가 마지막으로 갔다. 세상은 연두연두하며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데, 그는 홀로 불구덩이로 들어가 한 줌의 가루가 되어 나왔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오는 것이라 새삼스럽지는 않았고 별나게 두려울 것도 없었는데 그가 죽음의 순간까지 홀로 맞이했을 외로움이 사무쳐 살이 떨렸다. 나는 죽음보다, 살아서의 외로움이 더 두렵다.
십수년 전 한 번은 그 선배와 술을 마시다가 잘 나가는 지역노조의 간부와 만난 일이 있다. 취기가 얼근했던 노조간부는 내가 저런 사람과 어울리고 있음을 보고는 면전에서 비난을 퍼부었다. ‘저런 사람’이라는 뜻을 명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보수 정치세력과 어울리는 그의 행적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됐다. 경직되고 교조적인 노조활동가였던가? 그의 비난은 예의도 아니었고 진실도 아니었다. 하지만 선배는 아무 반발도 없었다. 돌이켜보면 귀한 침묵이었다. 마음에 생채기가 생긴 건 오히려 나였고...
사람을 평가하는 일. 사람을 분류하는 일. 사람을 온전히 보지 않고 치부해버리는 일. 무서운 일이다. 시의원 되고 나서 그걸 더 잘 알게 됐다. 안성시의회는 국민의힘 5명, 민주당 3명인데, 서로를 제대로 알기 전부터 38선이 그어졌다. 우리는 사람으로 만나기 전에 어떤 정당이냐에 따라 먼저 분류되었다. 그렇게 나뉘어 싸우는 것이 계급투쟁을 대리하는 정치이긴 하겠으나, 국회도 아닌 지방의회에서의 맥락 없는 정치적 쟁투는 지역의 발전보다는 시민 피해를 더 많이 야기한다.
대화하지 않고 무엇을 이룰까
시의회의 주요 권력은 딱 세 가지인 듯하다. 조례 제정과 예산 심사, 그리고 행정사무감사. 지역의 법이라 할 수 있는 조례를 제정해 지역사회에 영향을 줄 수 있는데, 물론 이것도 상위법에 거슬리면 안 돼 한계는 있다. 하지만 많은 예산을 수반하는 조례라면 나름 영향이 많다. 지역에서 보훈수당을 얼마나 줄 것인가, 출산장려금을 얼마나 줄 것인가도 조례로서 결정된다.
예산 심사는 소위 칼질을 해대는 것이다. 칼질이 대단한 권력이기는 하다. 지난해 있었던 23년도 본예산 심사에서 시의회는 무려 700개 이상의 사업을 깎아서 시청 공무원들이 허탈해했다. 계수조정이 있던 마지막 날에는 제발 이 예산은 살려야 한다고 의원실을 쫓아와 줄을 선 공무원이 부지기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방의회는 예산을 삭감할 수는 있지만 증액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편성권은 집행부(지자체)에 있을 뿐이다. 어떤 사업예산을 증액하고 싶으면 사전에 집행부와의 논의를 거쳐 시장의 동의를 받아야 가능하다.
예산심사라는 권력은 그래서 온전한 권력이 아니라 반쪽짜리 권력이다. 시의원이라고 예산을 삭감만 하면 뭐하겠는가. 유권자들이 희망하는 것은 대부분 예산증액이고 민원해결이다. 그런 걸 성취하자면 시의회는 어쩔 수 없이 지자체, 시장의 협조를 구해야 한다. 예산삭감이 당연한 권력이라고 마구 휘두르는 게 아니라, 타당한 이유를 들어 지자체도 이해하는 선에서 삭감하고, 그 대신 증액시킬 것이 이러저러하게 있으니 협조를 구해서 이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자체와 날만 세워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답답한 노릇이다. 이번 4월 추경을 앞두고 시장이 만나자고 했으나 다수당 시의원님들은 가지 않았다.
일은 사람이 하는 거다
의원사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노라면 수시로 누군가 노크를 한다. 의회 직원들이 이런저런 일 때문에 들어오기도 하고, 집행부 공무원들이 설명과 이해를 구하기 위해 사무실을 찾기도 한다. 의회 직원들 사무실에는 모 의원이 현재 의원실에 재중인지, 부재중인지를 알려주는 램프까지 있다. 의원실에 들어가면 내 이름 석 자 위의 램프에 빨갛게 불이 들어오는 것이다. 그 램프를 뒤늦게 발견한 나는 기함을 토했다. 감시당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필요가 있었다. 공무원들 입장에선 수시로 의원을 만나야 할 일이 생기니 어쩔 수 없었다.
덕분에 사무실에서 뭘 하자면 집중이 잘 안 된다. 정말 집중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집으로 도망 와서 하기도 한다. 이전의 어느 날에도 의원실을 찾은 한 무리의 사람들과의 이야기가 길어졌다. 업무적인 이야기만 간단하게 하면 모를까, 사람의 대화는 그런 식으로는 끝나지 않아서 온갖 일상의 얘기까지 오가며 자리가 길어졌다. 처리해야 할 일이 쌓여 있던 나는 좀 피곤했다. 이런 자질구레한 수다는 그쳤으면 좋겠다는 마음. 효율만을 극대화하는 효율충처럼 나는 그랬다.
그런 내 모습에 문제가 있음을 깨친 건 스승님 덕분이다. 우연히 그런 불편을 말하니 스승님께서는 지나가는 말투로 이렇게 일갈하셨다.
"일은 사람이 하는 거다"
죽비로 정수리를 한 대 세게 맞은 듯했다. 일은 사람이 하는 거다. 일은 사람이 하는 거다. 그 말속에는 성취, 성과에 집착하는 내 마음을 꼬집는 의미가 담겨 있었고, 또 큰일일수록 사람들의 마음이 모여야 이뤄진다는 진실이 담겨 있었다. 그랬다. 행정적 민원이야 그저 효율만 따져도 될 일이지만, 어느 지역에 소방지역대를 세우는 일은 수십 명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과 의지, 수많은 관계자의 협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그런 일은 효율로 이뤄지는 일은 아니었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 모든 일의 전부임을 깨닫는 중이다. 마음을 얻는 건 어떻게 가능한가. 수많은 소통과 대화, 그리고 눈 마주침, 서로에 대한 인간적 이해와 존중에 기반하지 않고는 불가능하겠다. 나는 다시 한 번 내 어리석음을 되새기며 스승 앞에 부끄러웠다. 아직도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천치...
봄날. 그래서 늘 응원해주던 그 선배가 간 것이 못내 아쉽다. 함께 술잔을 기울이고 있으면 세상의 모든 집착이 무상하게 느껴지곤 했는데... 좀더 많이 대화하고 좀더 많이 눈 마주하지 않았음이 안타깝다. 몇 달 전 선배에게 책을 택배로 선물했다. 선배는 당시 눈도 잘 보이지 않았는데 그것도 모르고 그 자잘한 글씨의 두꺼운 책을 보내고 나는 안도했던가. 한심하다. 죽음이 새삼 두렵지는 않지만 사랑이, 신뢰가, 우정이 뭔지도 제대로 깨닫지도 못하고 우물쭈물하다가 가버릴까봐 나는 그것이 두렵다. 남은 자만 제 업보에 겨워 운다.
선배, 잘 가세요. 이번 생에 만났으니 다음 생에도 만나겠지요. 그때는 좀더 잘 모시겠습니다. 오늘 정수리에 벚꽃잎 한 장 내려앉았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