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윤희 Apr 05. 2023

정당공천제의 폐해

[의원 중 가장 만만한 기초의원 이야기] - 열다섯

기초의원 정당공천제를 없애자는 얘기가 많다. 지방의회가 국회도 아닌데 정당으로 쪼개져 맨날 싸우니 그런 말이 나온다. 실제로 당론만 앞세우다 보면 협치가 안 된다. 중간이 없다. 지방 스스로 잘살아보자고 지방자치인데 지방은 없고 정당만 있다. 높으신 분들의 싸움을 대리하는 아바타 역할이나 하는 꼴이다. 그러니 지역민들이 의회 보고 있으면 울화가 치민다. 의원 입장에서도 그렇다. 안성시의회는 8명인데 의원들 간에 서로를 알기도 전에 이미 38선이 그어졌다. 한 사람을 제대로 알기도 전에 분별하는 이 나쁜 구조라니...     

 

이렇게 되는 까닭이 국회의원 또는 지역위원장에게서 기초의원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데 있다. 공천이라는 목숨줄을 쥐고 있는데 따르지 않을 도리가 있는가. 국회의원에게 기초의원은 선거라는 최전선에서 맨 앞에 세워 내보낼 병력쯤 되는 듯하다. 총알받이... 그러니 국회의원들이 그 좋은 패를 스스로 포기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매우 어렵겠다. 회기마다 지방선거 공천제 폐지 법안이 발의되기는 한단다. 하지만 통과되지 않는다. 고양이에게 생선... 21대 국회도 그럴 것인가.      

dong-cheng-xdmOj9mgkYo-unsplash


정당공천의 폐해는 기초의원의 수준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공천이 객관적이고 공정한 기준에 따라 이뤄지기보다는 국회의원 개인의 잣대에 좌지우지되면서 발생하는 사태다. 시민을 대표할 만한 자격이 되지 않는 사람이 후보가 되는 경우가 많다. 정치에 대한 신뢰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정당 공천이 이뤄질 때 결정적인 부분이 뭘까? 정치철학이 훌륭한 사람, 소신이 있는 사람, 정직한 사람, 혹은 앞으로 지방자치의 발전에 기여할 사람이 공천을 받을 확률이 높까, 아니면 자당에, 혹은 국회의원 선거에 도움이 될 사람, 후원금 좀 거둬올 역량이 되는 사람, 혹은 뒷일을 봐줬거나 암묵적인 거래가 있었던 사람을 밀까? 답은 어렵지 않다.      



전국에서 소문난 진상      


그래서일까?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공천이 이뤄지기도 한다. 모 시의회에는 이미 십여 년 전 지자체 보조금 횡령으로 최종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이 비례대표 공천을 받아 입성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공천을 받을 당시에도 또다른 보조금 횡령사건으로 기소된 상태였다는 것이다.      


해당 정당의 국회의원은 공천심사 당시 기소사실을 몰랐다고 했다. 당 규정에는 횡령 등의 혐의로 기소된 자는 기소와 동시에 공천을 받을 수 없다고 돼 있지만 소용없었다. 그러면서도 한쪽으로는 비례의원을 2번까지 공천해놓는 어마어마한 ‘선견지명’을 보였다. 당시 많은 시민들은 의구심을 표했다. 비례의원은 1명인데, 왜 같은 당에서 2명을 공천하나 하고...      


지난해 7월, 1심 재판부는 그 비례 시의원에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의원직을 수행하던 첫 달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속한 다수당은 그를 시의회 부의장으로 앉혀놓기까지 했다.     

Tingey Injury Law Firm

이건 민주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시의 보조금을 횡령한 자, 그리고 또다시 동종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판단돼 1심에서 유죄를 받은 자가 시민의 대표가 되어 의회권력을 행사하는 것은 정상적인 일인가? 그 당은 어떻게 그런 자를 공천했는가? 심지어 부의장이라고? 별점 보고 찾아간 음식점에서 형편없는 음식이 나온 꼴이다. 이 기막힌 사태는 소문이 좀 났는지, 해당 지역의 의회는 관련업계에서 ‘진상 시의회’라고 불린단다. 그런 이름으로 불리게끔 만든 장본인은 따로 있을 텐데 욕은 의회가 먹는다.           



의원 자격시험 도입이 시급함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시험을 치르는데 정치인도 자격시험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나 싶다. 정당 공천이 기본적인 수준을 담보해주지 못하니 이런 생각도 해본다. 취직을 하려고 하든, 학교에 입학을 하려고 하든 뭐든지 시험을 보는데 정치인은 왜 시험을 안 보나.      


의원 자격시험이 실제로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점수를 얻는 시험은 아니어야 할 것이다. 즉 그 사람의 똑똑함이나 교육 정도가 아니라, 인성이나 품위, 정직과 양심, 진심을 가늠하는 시험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IQ(지능지수)가 아니라 EQ(감성지수), SQ(사회성 지수), NQ(공존지수) 등을 더 중시하는 시험.      

scott-graham-OQMZwNd3ThU-unsplash

하긴 아무리 좋은 시험이어도 시험으로 한 사람의 진정성을 판별하기는 불가능에 가깝겠다. 오래 보아도 타인을 알아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생각까지 하는 건, 수준 이하의 정치인 하나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힘들어질 수 있는가를 몸소 매일매일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폐해가 너무 크다. 물론 나를 그렇게 여기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    


사흘은 꼬박 소머리 삶을 줄 아는 사람     


지역구인 한 면에서는 이 봄날, 날을 잡아 나무를 심었다. 백여 명쯤 되는 주민이 산을 올라 수국을 4천주쯤 심었다. 모종을 산꼭대기까지 옮기고, 낙엽을 걷어내고, 물탱크로부터 물을 받아 뿌리고, 땅을 파서 모종을 심는 일. 이 모두가 봉사였다. 몇 해 뒤 여름이 되면 부처님의 머리 같은 수국이 산꼭대기에 만발해 다시 없는 풍경을 만들어낼 것이다.     

  

또 다른 지역의 부녀회는 나무심기 봉사에 참여한 주민들에게 점심을 대접했다. 소머리 두 개를 24시간쯤 고았다고 했다. 부녀회 어머니들은 그 한 끼를 위해 장 보고 음식 만들고 반찬 만들고 하는데 사흘쯤 들였다. 소머리국밥은 지금껏 먹어본 것 중 최고였다.   

       

나는 봄 햇살 내리쬐는 면사무소 마당에서 염치없게도 국밥 한 그릇을 얻어먹으며, 적어도 타인을 위해 사흘쯤은 꼬박 소머리 삶을 줄 아는 사람이 지도자가 돼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 자신의 봉사를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 얼굴 모르는 이가 먹는 음식일지라도 최고의 정성을 다하는 사람, 관심 받는 것보다 타인을 사랑하는 것이 훨씬 행복한 일이란 걸 이미 다 깨친 사람. 그 정도는 되는 사람이 이 땅에서 정치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그러자. 그런 사람이 정치하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