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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윤희 Mar 29. 2023

소멸하는 풍경, 외로운 기초의원

[의원 중 가장 만만한 기초의원 이야기] - 열넷

#풍경 하나    

  

미혼모가 한 명 있는데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도움을 줄 수 있는지 누군가 내게 물어왔다. 마음이 갔다. 아기 본 지 너무 오래되지 않았는가. 전화를 했지만 몇 차례 받지 않았다. 문자로 내가 누구인지, 누굴 통해서 어떠한 연유로 연락을 하는지를 밝힌 다음에야 통화가 됐다. 모르는 전화는 받지 않는다는 그녀는 늘 긴장하고 있는 듯했다.     

  

아기엄마는 논밭을 끼고 있는 외딴 빌라에서 홀로 8개월 된 아이를 키우고 있었다. 아빠되는 사람은 그녀 명의의 차량을 끌고 먼 데로 나가 돌아오지 않는 듯했다. 그녀는 기초생활수급자나 한부모가정으로 지정돼 지원을 받기를 희망했지만, 그게 아니라면 기저귀나 분유값이라도 지원받길 희망했지만 차량과 소득 때문에 여의치 않았다. 제약회사에 다닌다는 그녀는 250만원 정도를 받고 있었다.      


소득이 꽤 높다고 무심결에 말했다가 돌아온 대답을 듣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침 7시부터 저녁 7시까지 12시간 근무한다고 했다. 아기랑 살아가려니 그만큼 일해야 하더라고... 아침 7시에 출근하려면 6시에 아기를 데리고 집을 나와 시골 버스정류장까지 한참을 걷고, 버스를 탄 후 어린이집으로 가서 이제 8개월 된 아기를 맡기고 와야 다. 하루 12시간의 근무, 하루 12시간 넘게 맡겨진 아이... 모자가 떨어져 있는 그 시간이 아득했다.      


시청 담당 직원과 이런저런 방법을 찾는 중이다. 하지만 소득기준으로 복지대상을 선별하는 우리나라의 구조에서는 만족할 만한 혜택을 찾지는 못할 것 같다. 합계출산율 역대 최저 0.78명. 나라가 멸종할 수도 있다는데, 홀로 아이를 키우며 고군분투하는 그녀에게 정부의 손길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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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둘      


내 지역구 중 하나인 삼죽면은 내 남편의 고향이다. 때문에 선거 당시 지역과의 연고를 강조하기 위해 ‘삼죽면 며느리’라고 현수막을 걸고 홍보했다. 그곳의 주민으로 산 적은 없어 사람들은 도대체 어느 집안의 며느리냐고 궁금해하기도 했다. 어디서 ‘듣보잡’이 나타나 연고를 주장했던 셈이다. 선거운동은 한 달이었고 오히려 당선 후에 그곳에 더 많이 가는 중이다. 주민분들은 ‘며느리’라는 홍보문구를 기억하고 있었고, 뒤늦게 나타나 악수를 청하는 이 며느리를 좋아해 주셨다. 그 이유 없는 호의와 선의가 궁금했는데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지역이 점점 늙어가고 왜소해지니 어떤 연고든 그저 고마웠던 것... 악수를 할 때 삼죽면민의 손에는 쓸쓸함이나 그리움 같은 것들이 묻어난다.      


인구가 4천 명이 되지 않는 삼죽면은 소멸위험지역에 속한다. 삼죽면에서는 청년을 찾기 어려운데 그나마 의용소방대나 자율방범대 등에 활동을 하는 청년들이 있다. 자율방범대는 해가 진 후에 승합차를 끌고 지역을 한 바퀴 돌아보거나 경광봉을 들고 도보순찰을 나가는 것으로 그들의 동네를 지키고 있다. 중심가에 상가도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 이곳에선 지나다니는 사람 찾기가 더 힘들고 그래서 범죄도 거의 없지만 청년들의 순찰은 몇 년째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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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사무실은 수십 년 된 낡은 건물로 수도시설도 없다. 이미 수년 전 건의를 했다는데 행정은 아무 소식이 없다. 그 낡은 사무실에 저녁마다 삼삼오오 모이는 것으로 삼죽면 청년의 명맥을 이어가는 중이다. 웃고 떠드는 이들의 표정에도 어쩔 수 없는 쓸쓸함이 묻어있다. 사람들은 점점 떠나고, 청년들은 더 많이 떠나고, 떠나간 그 자리에는 물류창고가 우후죽순 생겨나 대형트럭들만 지나다닌다. 가로등이 늘어나도 삼죽면의 밤은 상대적으로 더 어두워지는 것 같다. 멸종을 앞둔 종의 슬픔 같은 것이 느껴져 이곳의 밤은 더 애틋하다.   

     

#풍경 셋

      

주민들을 만나기 위해 열심히 이통장단회의, 기관사회단체 회의, 지역행사를 쫓아다녀 보면 대체로 만나는 사람들만 만난다. 많이 잡아도 시민의 10% 정도만 지역사회 돌아가는 일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듯하다. 의원이랍시고 열심히 다니지만 만나는 사람만 만나게 돼 있다는 얘기다. 지역사회 활동에 참여하는 이들은 대부분 장년층이나 노년층 남성이다. 이·통장단회의를 가면 40대를 만나기 힘들고 여성 이통장님은 발견 자체가 어렵다. 지역사회 활동에 관심이 없는 90%의 시민들은 만날 방법이 딱히 없다는 것.

     

궁여지책으로 지역의 온라인 카페에서 활동을 해볼까 했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어느 카페의 운영진은 정치적 견해를 밝히는 것이나 특정 정치인이 활동하는 것을 극도로 꺼려했다. 그런 방침이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자세라 여기는 분위기도 있는 것 같았다. 안타까웠다. 진정한 중립과 객관이 존재하기는 하는 것일까? 정치적 무관심과 기계적 중립을 투명하고 좋은 것이라 여기는 것은 고약한 풍토는 어디에서 왔을까...   

      

장년층과 노년층의 남성들은 쉬 우리나라 정치를 비판한다. 논리적 근거 없이 감정적으로 비난하는 경우도 태반이다. 그런 모습도 안타깝지만 정치가 내 삶에 무슨 상관이냐며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모습도 안타깝다. 정치는 우리 삶의 형식에 매우 큰 영향을 끼친다. 오늘날의 청년이 헬조선을 말할 때, 그 헬조선은 어디서부터 시작됐는가.       

안성시내 야경


나는 만날 수 없는 얼굴 없는 그 90%의 시민들이 궁금하다. 높은 곳에서 야경을 보며, 혹은 저녁에 불 켜진 아파트의 창들을 보며 일반시민이라고 할 만한 이들을 생각한다. 매일매일 돈을 벌어야 하고, 살기 위해 돈을 버는 것인지, 돈을 벌기 위해 사는 것인지 문득문득 고민하는 사람들. 연애도 포기하고 결혼도 포기하고 출산은 더더욱 포기하고 컴퓨터 앞에 홀로 앉아 있는 청년들도 생각한다. 그들을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민주시민의 기본소양을 가지고 있고, 상식과 합리를 본성처럼 지니고 있을 일반시민들의 목소리가 필요하다. 언론이 아무리 편향된 보도를 내뱉어도 그 안에서 진실을 보고, 지역의 정치인들이 극단적으로 갈라서서 대립할 때 준엄한 권위로 가르마를 타 줄 시민의 목소리... 생각해보니 기초의원은 외로운 직업이다. 의원이랍시고 책임은 있는데 정녕 이런 고민을 함께 나눌 사람은 찾기가 힘들다. 지방자치나 풀뿌리 민주주의... 사람들의 관심에서 아주 먼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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