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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윤희 Mar 22. 2023

기초의원의 업무, 자신 있으면 덤비자!

[의원 중 가장 만만한 기초의원 이야기] - 열셋

술자리 피하기가 어렵다. 저녁에 사람 만나는 게 의정활동의 중요한 부분이다. 술은 사람과의 간격을 순식간에 좁히는 효과가 있다. 정치인에게 친화력은 매우 중요한데 술은 그게 원활히 발휘되도록 한다. 갈등을 해결해야 할 때도 술이 끼면 수월해진다.       


선거운동 명함을 제일 잘 받아주는 공간도 그러했다. 지방선거면 보통 각종 후보들만 스무 명도 넘는데 명함을 버리지 않고 잘 받아주는 이 술집이었다. 술에 살짝 취한 사람들은 평소보다 너그러워져서 싫은 내색 없이 대해주었다. 때문에 저녁이면 늘 명함 한 뭉치 들고 술집을 돌았다.

   

도농복합지역인 내 지역구만 하더라도 술을 좀 먹어야 인정해주는 고전적인 분위기가 있다. 다행히도 술을 먹을 줄 알고 즐겨 해서 그런 쪽으로 큰 어려움은 없다. 의회 내에서 거구인 의장 다음으로 내가 잘 먹는 걸로 공인(?)도 받았다. 다만 술주정이나 음주 후의 실수, 취해서 SNS 하기 따위는 용납이 안 된다. 그거 자신 없으면 이 판에 발 들이지 말아야 한다.       

사람 사이의 윤활유, 술? [출처 : Unsplash의The Creativv]

선출직인데 술 한 잔 못하는 분들은 매우 놀랍다. 정치판이 아니어도 어려움이 있을텐데 알코올기 하나 없이 당선된 그런 분들은 상 줄 만하다는 생각이다. 어쨌거나 건강검진 받을 때 지역의료생협 의사는 내게 그랬다. 그러다 ‘훅 간다’고... 최선의 충고였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우주가 허락하고 내 몸의 세포들이 허락해주길 기원하면서 당분간은 달려볼 수밖에... 대한민국 정치인들의 간수치는 분명 평균보다 높을 것이다.      


어디선가 마시는 게 의원의 일이냐는 비난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래서 오늘은 기초의원이 해야 할 일을 분류해보겠다.      


1) 정례회, 임시회 참여

의회 활동의 기본이다. 정례회, 임시회를 다 합쳐 회기가 연간 100일쯤 된다. 조례심사, 일반 안건 심사, 행정사무감사, 예·결산심사, 업무청취 등이 여기에 다 들어간다. 100일의 회기를 보내기 위해선 별도로 투자해야 하는 시간들이 있다. 즉 예산서와 결산서, 행정감사 자료, 조례안 등을 다 들여다보고 상임위에 들어가야 한다. 제대로 덤비면 공부하다 죽을 수도 있다.       


2) 조례 발의

의원 고유의 권한으로 조례 제·개정안을 발의할 수 있다. 조례는 지역의 법과 같은 지위를 갖는다. 물론 상위법이 우선이지만... 지난 7대 전국 기초의원들의 연간 조례 발의 건수는 2.05건이었다. 지역별 편차가 좀 있어서 가장 발의건수가 많은 곳은 5.86건 정도 됐다. 국회는 이미 예전에 경쟁이 붙어서 법안 발의가 남발되고 있다. 21대 국회 3년 동안 발의된 법안 건수만 2만 건이 넘는다. 처리된 법안은 6천 건쯤... 법안을 많이 발의하면 유능한 의원인 듯 여겨지는 분위기가 있다. 기초의회도 점점 그런 분위기가 돼가는 듯한데, 거기엔 동의하기 어렵다.


실효성 있고 공동체를 위하고 진정 다수에게 도움이 되는 좋은 법안이 그렇게 흔할 리 없다. 발의 건수에 집착하는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 개인적으로 난삽한 법을 고 있노라면 카프카의 소설 ‘성’이 떠올랐다. 아무리 걸어도 닿을 수 없는 성 같은 법들... 법이 그물망처럼 촘촘한 사회가 좋은 사회는 아닐 것이다.


8개월 사이 의원사무실 책장이 이렇게 됐다


3) 행사 참석

지역에 무관심하다면 모르겠지만, 실상 지역에 수많은 행사가 있다. 내 지역구는 8개 면과 동으로, 평일에도 한 건 이상의 행사는 꼭 있다. 이통장단협의회 회의 쫓아다니기도 버겁다. 면별 체육대회, 각종 이·취임식, 개관식, 총회,간담회 등등... 가야할 곳도, 오라는 곳도 많다. 안 가면 당장에 “요즘 그 의원 안 돌아다닌다”는 핀잔이 따라붙는다. 그러니 주말 이틀을 제대로 쉬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그런 환경은 내게 매우 큰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하지만 도리가 없다. 4년은 개인생활 버리고 주민들 사이에서 꽃처럼 살라고 의원이다. 웬 꽃? 잔치에는 참석하면 주민들이 좋아해주신다. 코사지 달아주시니 꽃처럼 웃으면 된다는 뜻.

 

4) 민원 해결

기초의원의 다른 이름은 '민원해결사'여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의원은 ‘주민의 권력’이고, 주민의 권력을 위탁받아 대행하는 사람이다. 민원을 해결하려고 주민이 직접 시정을 상대하면 접근이 쉽지 않다. 통화도 어렵고 부서별 칸막이 행정도 있어서 주민 입장에선 전화 돌리다 홧병 난다는 얘기가 있다. 그래서 의원이 대행해줄 필요가 있다. 의원이 집행부에 요구하면 일반시민이 얘기하는 것보다 실현가능성이 높아진다. 해결도 빨라진다. 인도에 풀 뽑아달라는 것도 민원이다. 작은 민원 우습게 보면 안된다. 사소한 것이라도 해결할 수 있으면 그가 짱이다.  


앞서 행사 참석이 업무 중 하나라 했는데, 재밌는 것은 행사에 많이 다닐수록 주민을 많이 만나니 시나브로 민원도 많이 받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업무량에 있어서 의원 간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도 나타난다. 행사장 덜 다니고 주민 만나는 일에 게으르면 민원도 없다.       


5) 정당활동

당의 공천을 받아 당선이 됐으니 정당활동을 해야 한다는 의무가 부여된다. 그게 아니더라도 정치활동의 기본은 정당활동이겠다. 중앙당의 요청에 따라야 하고, 도당이 시키는 일을 해야 하고, 지역위원회의 기자회견, 회의, 시위, 민원의날 행사 같은 것도 해야 한다. 국회의원 선거가 가까워지고 경선이라도 하게 되면 당원 모으는 일도 해야 한다. 국회의원이나 지역위원장이 공천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다음 선거에서 재공천 받을 생각이면 그렇게 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지역사회에는 수많은 행사가 있다. 지역의 새마을협의회 대청소 발대식

 

6) 주민 만나기 

이밖에 교육도 받아야 하고, 견학도 가고,  타당 의원님들과의 견도 조율해야 하고, 개인 SNS도 해야 하고 등등 할 일이 많다. 그중에서 가장 중한 업무는 무엇일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다만 의원의 업무는 혼자 책상에 앉아 하는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사람을 만나는 게 업이지 싶다. 얼마나 많은 주민이 지지하는 의원인가가 곧 그의 정치력이라 할 수 있으니... 그게 아니더라도 시민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의원, 내 편이 되어줄 정치인을 필요로 한다. 그러니 의원이라면 말하는 것보다 듣는 걸 우선하자. 실상은 반대인 경우가 많지만 인기 있는 사람은 들어주는 사람이다.        


이쯤되면 팔방미인쯤 돼야 기초의원 제대로 하겠단 생각이 들다. 틀린 생각은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행사장 가거나 사람 만나는 일이 좀 버거웠다. 술이 아니곤 말도 별로 없는 고약한 성격이어서 더 그랬다. 하지만 이쯤에서 비밀을 하나 말하자면 나 좀 변한 것 같다. 8개월 동안의 의정생활 끝에 주민들과 미소 짓고 눈 마주치며 악수하는 일이 조금 즐거워졌다. 심지어 내게 위안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놀라운 형질변경... 왜 위안이 될까? 주민분들이 그냥 웃어주시고 반겨주시니 그렇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깊이 감사할 일이다. 그 이유불문한 선의와 호의라니...

     

오늘도 나는, 우리 공동체는 또 그렇게 굴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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