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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윤희 Mar 07. 2023

사랑이야, 지금 필요한 거...

[의원 중 가장 만만한 기초의원 이야기] - 열하나

오염물질이 눈처럼 내리는...     


안성시 곳곳에 쓰레기가 쌓여 있다. 안성시 소각장 주민지원협의체가 쓰레기 반입에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2월 13일, 직접 가서 보니 종량제 봉투에 담겨 있지 않은 쓰레기도 많았고, 음식물과 재활용이 섞여 있어 소각용으로 부적합한 것도 많았다. 소각장 주변마을 주민을 대표하는 주민지원협의체는 쓰레기 상태를 조사해 반입을 거부할 법적 권리를 가진다.      


플라스틱, 스치로폼 같은 것을 소각장에서 태우면 상식적으로도 안 좋은 물질이 많이 배출될 것 같다. 한 주민은 얘기 도중 이런 말을 했다.      


“안 좋은 물질이 정수리로 다 떨어질 텐데 그걸 참고 살아온 건데...”      


눈처럼 쏟아지는 환경오염물질들... 지붕에도, 나무에도, 내 정수리에도 떨어지는... 과학적 사실과 허용기준치를 따지고 들면 달라지겠지만, 18년 간 소각장을 안고 살아온 주민의 내면 풍경은 그러하다.     


소각장 앞에 쌓여있는 쓰레기들. 상태가 좋지 않다.


많은 시민들은 쓰레기산이 생겨난 이유가 사람들이 쓰레기를 제대로 분리배출 못한 탓이라 여겼다. 하지만 시민들이 늘 하던 쓰레기 분리배출을 갑자기 어느 날부터 수준 이하로 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저간의 사정은 따로 있다.      


소각장이 노후화되면서 2020년 안성시와 주민협의체, 안성시의회가 협약을 맺었다. 주민들이 80톤 소각장 증설을 수용하는 대신, 환경교육센터를 지어주는 것으로... 환경교육센터는 잘 지어지고 있다. 문제는 환경교육센터 운영방식. 주민지원협의체는 재단 설립을 통한 운영을 주장하는데, 시의회가 가로막아 섰다. 재단 말고 시 직영으로 하라는 것이다. 재단설립 조례가 부결되면서 주민협의체의 반발이 시작됐고, 시의회가 별다른 태도 변화를 보이지 않자 주민협의체는 급기야 80톤 증설 약속도 다 파기한다고 선언했다. 2018년부터 이어오던 논의와 협의와 약속이 물거품이 될 판이다.  

    

수거되지 못한 쓰레기들


재단 운영에는 연간 2억원쯤 들 것으로 보인다. 2억원은 안성시 잉여금의 0.1% 정도도 안 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시의회 다수당은 왜 반대할까? 타당 출신 시장의 권한이 더 커지는 것을 경계하는 게 아니냐는 추측이 많다. 시의회의 직영 요구에는 주민협의체도 그렇지만 안성시도 안 된다고 한다. 기본인건비를 초과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해결점이 보이지 않자 쓰레기는 쌓이기 시작했다.

 

지역의 국회의원은 이런 일이 벌어진 이유로, 공교롭게도 시장은 민주당이고 시의회 다수당은 우리당(국민의힘)이어서라는 설명을 곁들였다. 결국은 정치권의 싸움이라는 이야기인가? 양당의 싸움 때문에 시민이 고통받고 있음을 인정한 것인가? 모르겠다. 이 일은 현재도 진행중이어서 기자회견에, 보도자료에 온갖 말들이 난무한다.


쓰레기가 쌓이는 동안, 그 한편에는 수년간 소각장 건립 반대투쟁을 하다가 결국 소각장을 수용하고 그걸 끌어안고 18년쯤 살아온 주민들이 있고, 내가 쓰레기 분리배출 뭘 잘못했나, 바나나 꼭지는 소각용인가, 음식물쓰레기인가 곰곰이 돌이키는 시민이 있다. 고민이 깊어진다. 정치인은 어딜 봐야 하는가...


한 공무원은 장기화하는 쓰레기 사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 앞에서 울었다. 그는 시민들이 무슨 죄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분리배출 못한 시민 운운하는 얘기에는 우리나라처럼 국민에게 많은 의무를 부여하는 나라가 없다고 부당함을 성토했다. '임시직'일 뿐인 정치인들이 시정을 맘대로 주무르고 있음에 그는 슬퍼했다. 소리내 울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가 거의 통곡하는 것처럼 보였다.      


사랑 없는 정치      


정치인에게 필요한 자질은 많다. 통찰력, 결단력, 설득력, 추진력, 소통능력, 공감력, 카리스마 등등... 똑똑해서 통찰력 있고 그래서 제대로 된 결단을 내리고, 다양한 이해관계를 추슬러 설득해 내고, 끝내 일을 추진해 성사해내는 것.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이 리더가 돼야 한다고 우리는 평소에 생각한다. 멋질 듯하다. 그런 정치인...      


하지만 나는 이제 지겹다. 그런 허울 좋은 자질 필요 없다. 기본이 되어 있지 않다면... 그 기본은 무엇인가? 이제 8개월이지만 의원노릇 해보니 정치인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은 시민을, 국민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타인에게 공감하고, 약자의 아픔을 내 것처럼 여길 줄 아는 감성지능. 내가 보기엔 '사랑하는 마음' 그것이 가장 필요한 자질이다.     


시민에 대한, 국민들에 대한 애정 있는 사람만이 정치인이 돼야 한다. 사랑하겠다 마음먹으면 통찰력, 결단력, 설득력, 추진력 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작동할 것이다. 제일 나쁜 건 사랑없는 정치다. 제일 나쁜 건 사랑은 개뿔도 모르고 오직 자신과 정당만을 위해 판단을 내리고 움직이는 정치인이다. 그런 이들에게 가난한 자와 약한 사람과 서민의 삶이 안중에 있을 리 없다.      

      

세종대왕님이 만든 글씨는 훈민정음이다. 대왕께서는 백성이 자신들의 말을 표현할 방법을 찾지 못하는 것을 가슴 아파했다. 백성들이 그들의 언어를 표기하고 그것으로 '사고'하고 그것으로 '성장'하길 기원했다. 가없는 애민... 한글 탄생의 배경에는 사랑이 있었을 뿐이다. 생각한다. 애민이 없이 우리가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정치인들 사이에서 시민들이 시든다. 봄이 온다는데... 대왕님은 없고, 우리는 시들고만 있다. 18년 간 쓰레기 소각장 안고 살아온 주민들 이야기를 국민의힘이 마음 터놓고 들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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