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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윤희 Feb 21. 2023

그 힘들다는 한 발 물러서기를 합니다.

[의원 중 가장 만만한 기초의원 이야기] - 아홉

정치판은 싸움판이다. 싸우는 게 일이다. 매일매일이 투쟁의 현장이다. 저쪽이 잘못됐다고 얘기해야 하고 이쪽이 옳다고 얘기해야 한다. 저쪽의 실정과 잘못, 부정과 무능을 밝혀야 하고, 명분과 논리에서 이겨야 한다. 심판은 대중이다. 만약 이렇게 매일매일이 투쟁이 아닌 정치인이 있다면 무게감이 없거나 업무태만일 수 있다. 실제로 별 위협이 되지 않는 적에게는 총부리가 집중되지 않으리라.       

 

물론 사회적인 이슈만 갖고 싸우는 건 아니다. 개인의 지위와 명예를 걸고 싸우기도 한다. 쟤가 당선되면 내가 떨어지니, 어떻게 하면 저이를 욕먹게 할까, 어떻게 하면 쟤가 낙선되게 할까를 늘 고민해야 한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의 한가운데...’ 다른 당끼리만 싸우는 것도 아니다. 같은 당끼리도 공천을 두고 살벌한 힘겨루기를 한다. 한 번 당선되면 그것이 끝도 아니다. 다음 당선을 위해 또 뛰어야 한다.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싸움을 양복 입고 마이크 앞에서, 온갖 현란한 언사를 사용해 하는 것이다. 법을 이용한 고소고발도 주요 수단이다. 단 주먹질은 없다. 고도로 문명화한 생존경쟁이다.        


고도로 문명화한 생존경쟁     


그러니 싸우는 거 싫어하는 사람들은 정치판에 발 들이지 않는 게 좋겠다. 멘탈이 강하고 지구력과 집요함이 있는 사람이 좋다. 나의 직업 만족도가 이렇게 낮은 이유도 싸우는 게 적성에 맞지 않은 사정이 크다. 세상에 경험할 것은 너무 많고, 인생은 유한하고, 자연은 오늘도 이리 변화무쌍하게 아름다운데, 내가 싫어하는 사람 만나느라 고통 받고 잔머리 굴리는데 시간을 할애해야 하니 한숨이 절로 난다.    

  

나는 2015년부터 이쪽 일에 관여하기 시작했다. 사람 따라 이렇게 흘러들어 여기까지 왔다. 이미 부상을 당했다. 내 가슴에 총알 하나 박혀 있는데 잘 안 보일 것이다. 상처를 아물게 해야 할 텐데, 끝날 때쯤 치료가 돼 있을지, 곪아서 사망에 이를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정치인들이 맨날 싸운다고 유권자 입장에서 혐오하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혐오만으로 해결되는 것은 없다. 정치판의 싸움은 우리사회 계급투쟁의 연장이며, 계급투쟁을 대리하는 측면이 강하다. 물론 진정한 힘은 대중에게 있다. 촛불로 대통령도 아웃시키니까... 하지만 일상적으로는 정치인들이 싸워서, 또 시민운동, 노조활동 등 정치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이들이 싸워서 사회가 진보하기도 하고 퇴보하기도 한다.      


하고자 하는 말은 그러니 무조건 나쁘게만 보지 말았으면 한다는 것이다. 싸움의 언사들이 좋을 리는 없으나, 소 몇 마리 운동장에 풀어놓고 어느 소가 더 정의로운지 판단하는 일이라면 관조하지 못할 것도 없다. 어느 소가 약자와 다수를 위해 싸우는지 판단하는 것은 민주시민의 의무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는 최선에 투표할 수 없다. 우리의 모든 투표는 차선일 뿐이다. 다 싫다고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으면 남는 것은 무시당하는 일이다. 그나마 선거 때라도 정치인들이 고개를 숙이는 건 우리에게 표가 있기 때문이다.      


생쥐나라 고양이 국회


생쥐나라 고양이 국회라는 말이 있다. 유권자들은 생쥐인데, 그 생쥐들이 자신들을 대변할 정치인으로 고양이를 뽑는다는 얘기다. 고양이를 뽑는 이유는 뭘까? 계급배반투표라 하는데, 이 얘기 시작하면 또 끝도 없으니 다음을 기약하자. 어쨌든 고양이들이 결정권을 가지면 ‘고양이들을 위한 나라’가 될 수밖에 없다. 쥐덫을 제재하지 않고 쥐구멍을 막거나 쥐약 생산량을 늘일 것이다. 물론 국회에도 드물게 생쥐들이 입성한다. 그런 생쥐들의 가열찬 승리를 희망하지만 생쥐들은 쪽수에 밀려서 퇴출당하거나 잡아먹히거나 하는 일이 많다. 원체 고양이판이니까... 물론 생쥐였다가 국회 들어가서 고양이로 변신하는 부류도 있다. 거친 비유들이지만 단순화하자면 그렇다.     


그러니 선거벽보의 얼굴들 중에 누가 생쥐이고 누가 고양이인지 잘 판단하면 좋겠다.     


 

이번에 깊은 고민에 빠진 일이 있다. 안성시 재난지원금을 지급하자고 시와 의회의 양당이 협상 중이었다. 예산안 편성 전 의회의 합의내용을 시에 전하면 그대로 받기로 한 것이었는데, 원래 구두로 약속한 것이 1인당 10만원이거나 가구당 20만원이었다. 그 일을 성사시키려고 우리 소수당은 국민의힘 의원님들께 읍소도 하고 설득도 하고 술도 마시고 호의도 전하면서 많은 공을 들였다. 그동안 싸우기만 하다가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후 국민의힘은 1인당 5만원 안을 말했다. 그리고 소수당인 민주당과의 최종 합의도 없이 국민의힘 시의원들 주도로 1인당 5만원안을 편성(?)했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싸워야 마땅한 일이었다. 부당함을 호소하고 상도를 벗어난 일이라고 펄쩍 뛰어도 될 일이었다.      


그런데 문득 동작이 멈춰졌다. 1인당 5만원 안에 합의하지 않으면 그마저도 없던 일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고민이 깊어졌다. 과연 무엇이 시민을 위한 길, 착하고 선하게 살아가는 분들을 위한 것일까?   

   

고민의 과정은 생략한다. 정답은 세상에 없으니까. 결론은 우리 소수당이 1인당 5만원 안을 수용했다는 것이다. 고개를 숙인 셈이다. 자존심을 버리고 그 힘들다는 ‘한 발 물러서기’를 한 셈이다. 잘했나, 못했나... 모르겠다. 세월 지나면 판단이 설까? 그럴까? 모르겠다. ‘오직 모를 뿐’이다...      





          

[덧붙임] 양당은 1인당 5만원에 합의했지만, 그 이후 약속했던 또다른 예산이 삭감되면서 결국 시의회 최종합의는 없던 일이 되었다. 안성시는 2월 20일 1인당 10만원 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한 추경안을 시의회에 제출했다. 시의회의 추경안 심사는 22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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