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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윤희 Feb 13. 2023

바보야, 문제는 분배야!

[의원 중 가장 만만한 기초의원 이야기] - 여덟

오르지 않는 것은 월급과 주가뿐     


난방비가 뜨겁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1월 대비 도시가스는 36.2%, 지역난방비 34%, 전기료 29.5%가 올랐다고 한다. 시골 단독주택에 홀로 사시는 어르신은 심야전기로 난방을 하는데 지난달 전기세가 53만원이 나왔다고 놀라셨다. 우리집 도시가스비도 40%쯤 더 많이 나온 것 같다. 오르지 않은 것은 월급과 주가뿐이라는 우스개가 돈다. 물가 대비 소득을 살피면 우리 대다수는 더 가난해진 듯.  

     

난방비 급등에 대한 여론이 들끓자 여기저기서 지원이 이어지는 분위기다. 어떤 언론은 제2의 재난지원금 사태?라고 말했다. 안성시도 취약계층 난방비 긴급지원을 의회에 제안했다. 그러자 국민의힘이 다수당인 안성시의회도 아예 100억원대 규모로 통 크게 지원하자고 던졌다. 100억원 규모면 인구 20만도 안 되는 안성시에서 난방비로 선별지원은 어려워 재난지원금으로 갈 듯하다.      


당장 이달에 결정이 나야 한다. 3월 난방비 납부에 시민들이 조금이라도 보태려면 그렇다. 전 시민에게 똑같이 주는 재난지원금 같은 경우 결정에서부터 수급까지 빠르고 명확하다. 반면 선별복지는 너무 많은 에너지와 행정력을 낭비한다. 어느 수준까지 지원할지 결정하고, 결정된 기준에 따라 그에 해당하는 가구를 구분하고, 그 가구들의 신청을 받고, 신청기준에 맞는지 확인하는 모든 과정은 무척 지난하고, 의외로 많은 비용을 요구한다. 내용물보다 배달비가 더 비싼 음식일 수 있 셈이다.   


어쨌든 안성시의회가 100억을 말했고, 안성시는 그 이상도 ‘콜’했으니, 아마 지원이 이뤄지지 않을까 한다. 1인당 10만원이든, 가구당 20만원이든 2월 중 합의하기로 했다. 안성시는 부채는 없고 잉여금은 많으니, 군소리 나올 것도 없다. 반 년간 으르렁거리며 싸우던 양당이 손가락 걸고 약속했으니 이를 계기로 분위기쇄신되면 좋겠다.


정치의 처음과 끝, 징수와 분배     


우리나라 어르신들은 애국심이 강하다. 나라에서 뭘 준다고 하면 놀랍게도 이렇게 답하시는 분들이 있다. “나는 공짜로 돈 받기 싫다. 더 요긴한데 쓰는 게 낫지. 나라만 잘 되믄 된다”라고... 고개가 숙여지는 대목이다. 오늘의 세계 10위권 경제대국 대한민국은 그런 분들의 애국심에 일부 기대고 있을 것이다. 존경한다.   

   

하지만 그런 분들에 대한 존경은 존경이고, 그런 방식의 애국은 오직 국민에게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어서 싫다. 국가가 국민보다 우선할 수 있는 것인가. 그렇게 희생해 나라 건사해놓으면 결국 잘 먹고 잘 사는 기득권은 따로 있는 게 아닌가. ‘사람이 먼저’라는 어느 시절의 슬로건을 떠올린다. 그 슬로건이 생겨나게 된 배경도 떠올린다. 국민이 없고, 국민이 불행하다면 국가의 존재 이유를 어디서 찾아야 할까. 나라를 위해 희생하는 마음도 숭고하지만, 약자와 다수를 위하는 정의로운 나라가 되도록 투쟁하고 싸우는 것도 숭고한 애국이란 생각이다. 스캇 펙의 ‘아직도 가야할 길’이라는 책에서의 명언은 이럴 때도 맞다.     

 

- 사랑은 단순히 거저 주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지각 있게 주는 것이고, 마찬가지로 지각 있게 안 주는 것이다.             


일부 어르신의 말처럼 나라에서 ‘공짜로’ 돈을 준다? 이 말은 맞는 말인가? 아니다. 틀린 말이다. 나라가 뭐길래 국민에게 공짜로 돈을 주는가? 나라에서 주는 돈은 결국 국민의 주머니에서 나온 세금이거나, 국민이 갚아야 할 부채에 지나지 않는다. 생산한 재화의 일부를 세금으로 내는 국민이 없으면 국가는 존재할 수 없다. 

 

세금을 ‘징수’하고, 예산을 ‘분배’하는 이 과정은 매우 중요해 보인다. 이 과정 안에 정치의 존재 이유, 우리가 지향하는 사회에 대한 방향성이 고스란히 다 녹아있다는 생각이다. 법인세를 올리느냐, 내리느냐, 누구나 똑같이 부담하는 부가가치세의 비중을 높이느냐, 마느냐를 보면 정치권력의 방향성을 알 수 있지 않은가? 복지지출을 늘리기 위해 노력하는지,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지를 보면 서민을 위한 정부인지, 기득권을 위한 정부인지 가리기 어렵지 않다. 우리나라의 공공 사회복지 지출 규모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에서 여전히 최하위 수준이라고 한다. 각자도생은 과장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부자는 혼자 잘나서 부자가 될 수 없다. 세상은 그렇게 생겨먹지 않았다. 가난한 사람도 그 사람이 그저 무능해서 그렇게 가난해졌다고 할 수 없다. 그리고 설사 무능하더라도 공동체, 정의로운 사회라면 그런 이들도 건사하는 것이 맞다. 빈익빈 부익부, 돈이 돈을 벌고 양극화만 점점 심해지는 지금 대한민국의 가장 큰 일이 빈부격차를 완화하는 것이다. 공공의 힘으로 좀더 건강한 징수와 분배를 이루고 그것으로 돈의 쏠림을 최대한 막는 것이 모두를 위한 최고의 선(善) 아니겠는가?       


모두가 살만한 세상을 위한 최소한의 투자   

  

10~20만원 수준의 재난지원금은 부자에게는 껌값도 안 되지만 서민에게는 한 해에 한 번 소고기 사먹을 중요한 금액이 되기도 했다. 2020년 정부의 1차 재난지원금 지급은 자영업 매출 손실을 대부분 상쇄하며 소비진작을 일으켰다고 한다. 경제가 회복 불가할 정도로 망가지기 전 응급처방으로서 재난지원금의 효과는 확실했던 셈이다. 지갑이 두둑해지면 돈이 돌기 시작하고 돈은 여기서 저기로 건너가면서 지속적으로 이윤을 창출한다. 부자는 10~20만원 받는다고 소비를 늘이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서민들은 열심히 썼다.      


선별복지와 보편복지가 논란이 될 때 유행하던 그림이 있다. 아래와 같다. 좌측 그림처럼 똑같이 지원하면 가난한 이는 여전히 가난해서 경기를 못본다. 우측이 맞을 것 같다. 하지만 우측의 저 그림도 틀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저런 일은 가능하지 않으며 납세저항을 일으키기 쉽다. 세금 징수가 어려우면 분배도 어려울 것이다. 저 두 개의 그림보다 진일보한 그림이 있다. 저 세 사람의 앞을 막고 있는 담벼락을 아예 없애는 것이다. 무상급식, 무상교복이 그 좋은 예다. 아예 처음부터 담벼락이 없다면 차별이 생겨날 일이 없다. 공공이 무상의료를, 무상교육을 하면 부자와 가난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수의 서민층이 튼튼하게 살아나가지 못한다면 건강한 나라는 없다. 다이아몬드형 계층구조가 안전하다. 양극화 심화는 부자도 불안한 사회, 인구절벽으로 소멸을 고민해야 하는 사회를 만들어갈 뿐이다.

부디 안성시와 안성시의회가 간만에 손잡고 통 큰 합의를 이루면 좋겠다. 시의원의 권력은 예산의 쓰임에 관여할 수 있다는 데 있다. 그 기준은 오직 약자와 다수 서민의 삶이 더 나아지느냐에 있어야 한다. 그 간단한 기준만 공유한다면 누구나 친구 먹을 수 있다. 국민의힘이든, 누구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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