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테일의 경제학
최근 중요한 지인의 경조사를 방문할 일이 있었다.
격식 있는 옷차림을 준비해야 했는데, 갖춰 입을 셋업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는 경조사에서 갖춰 입을 셋업이 필요한 때라 크게 쓸 생각을 하고 쇼핑을 하러 나섰다.
쇼핑몰에서 5~6개의 브랜드와 다양한 가격대의 셋업을 입어보았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브랜드에서 울 100% 소재의 더블 버튼 슈트와 캐시미어 100% 소재의 코트를 입어보았다.
거울을 보는데 아.. 하는 탄식이 나왔다.
타 브랜드보다 30% 정도 높은 가격대였지만,
완성도 높은 마감과 울 100%와 캐시미어 100% 원단의 시너지는 예상보다 더 훌륭했다.
차르르 하게 떨어지는 원단을 바라보며 활동성이나 세탁방법을 생각하는 스스로가 작아짐을 느꼈다.
나는 쇼핑을 즐기지 않을뿐더러 옷은 실용성 위주로 구매 여부를 판단하는 편이었다.
세탁이 편하고 관리가 쉬우며, 착용감도 좋아야 했다.
하지만 이번 경험을 통해 좋은 소재가 주는 미묘한 차이가 명확하게 와닿았다.
고급 원단과 옷의 완성도 앞에서 실용성과 관리의 불폄함을 논하는 건 의미 없는 일이었다.
관리방법이 까다롭고 활동성이 제한적인 고급 원단은 그것을 관리하는 번거로움과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는 여유가 있을 때 비로소 가치를 발휘한다.
우리가 거리낌 없이 지갑을 여는 순간은 실용성보다 자신의 감성과 취향, 특별한 욕망이 자극될 때인 경우가 많을 것이다.
실용성은 보편적인 필요를 채우지만, 높은 가치는 오히려 그 너머에서 탄생한다.
기획 단계에서 이 정도면 변태 아니냐는 말이 나올법한 디테일이 서비스 성공의 정점인 경우가 존재한다.
'불편함'이란 그 자체로 하나의 사치라는 역설적인 깨달음이 다가왔다.
생계를 위한 선택이 아닌 취향을 위한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 실용성보다 미학을 우선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특권이기 때문이다.
루이비통의 가방이 구찌의 신발보다 더 실용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이폰이 다른 스마트폰보다 본질적으로 더 실용적인가?
아니다. 그들은 '특별한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프리미엄 가격을 받는다.
특별함이란 결국 소비자의 경험을 차별화하는 디테일에 있다.
대부분의 그런 디테일은 번거롭고, 불편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 디테일을 발견하고 구현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생존 너머의 시간과 공간,
그것을 음미하고 향유할 수 있는 감각적 경험과 여유가 필요하다.
불편함은 결국 '여유'의 산물이었다.
생존의 긴장감에서 벗어나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는 여유, 이는 경제적 여유뿐만 아니라 시간적, 정신적 여유까지 포함한다.
그래야만 의도적인 불편함 속에 숨겨진 디테일을 음미하고, 그 가치를 인식하고, 자신의 사업이나 서비스에 반영할 수 있다.
불편한 디테일은 그것을 경험하고 음미할 수 있는 시간적, 경제적, 정신적 공간이 있을 때 비로소 특별함이라는 가격표로 재탄생한다.
특별한 서비스를 기획하는 사람은 그 서비스가 제공할 경험을 먼저 체화해야 한다.
그래야만 소비자에게 진정성 있는 가치를 전달할 수 있다.
결국 더 깊이 고민하고 철저하게 경험하며 디테일에 대해서도 더욱 섬세하게 생각해야 한다.
디테일을 발견하고 구현하는 능력은 다양한 경험과 감각적 지혜에서 비롯된다.
감각적 경험은 지식 습득과는 다른 차원이다.
예를 들어 울 100% 슈트의 감촉, 캐시미어 코트의 무게감, 그리고 그것을 입었을 때의 체온 변화와
시선의 차이 같은 총체적 경험은 책이나 데이터로 대체할 수 없다
그래서 경험 비용을 가치 있다고 평가하는 것이다.
그 비용을 통해 우리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디테일을 발견하고, 이를 통해 차별화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특별함의 경제학이다.
고급 원단의 의류를 '걸쳐본' 것은 나에겐 특별한 경험이었다.
단순한 경험이 아니라 디테일과 가치 창출 사이의 복잡한 관계에 대한 통찰의 시작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단순한 셋업을 구매한 것이 아니라, 관리하면서 발생하는 불편함 외에 부수적인 경험들까지 구매한 것이다.
격식 있는 자리에 참석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사라질 것이고, 고급 원단의 사용법에 대해 알게 될 것이다.
특별함을 추구하는 여정은 자주 불안정과 실패의 위험을 동반한다.
안정적인 생계 수단을 포기하고 창의적인 도전을 선택하는 것은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그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여유가 없다면, 특별한 가치를 창출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생존'과 '특별함' 사이의 섬세한 균형이다.
생존의 불안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는 없지만, 그 불안에 지배되지 않는 상태.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하면서도 그 너머의 가치를 탐색할 수 있는 여유.
그것이 진정한 특별함을 가능케 하는 토양이 아닐까.
우리는 단순히 '무엇'을 제공할 것인가를 넘어 '어떻게' 제공할 것인가에 주목해야 한다.
'어떻게'의 차이가 바로 특별함을 만든다.
어떤 디테일을 강조할지, 어떤 욕구를 건드릴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