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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레 May 08. 2023

에어컨 없는 캠핑카로 한여름에

18. Basilicata, Puglia


  바실리카타(Basilicata) 주에 들어서자 건초를 베고 난 진베이지색의 낮은 구릉지대가 끝없이 펼쳐졌다. 다른 계절, 다른 나라에 온 것 같았다. 우리는 마테라(Matera)를 보려고 바닷가로 내려가지 않고 내륙으로 들어온 것인데, 마테라는 협곡 사이 433m의 고지대에 위치한 도시다. 특히 구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한 동굴 주거지인 ‘사시 디 마테라(Sassi di Matera)’를 꼭 보고 싶어 이 더위에 바닷가에 가는 것도 미루고 일부러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 외곽 오토캠핑장에 도착해 자고 다음 날 아침, 드디어 마테라를 보러 가는 날이었다. 교통편을 알아보던 남편이 비보를 알려왔다.


  G20 회의 준비로 마테라로 들어가는 버스가 전부 운행이 중지됐고, 외지인은 아예 출입이 금지되었다는 거였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라 말문이 턱 막혔다. 그런 건 대도시에서 하는 거 아니었나.. 게다가 왜 이런 뉴스를 나도 남편도 보지 못했지? 한국 뉴스를 검색해 보니 인터넷 기사가 겨우 하나 있었다. 장차관급 회의라 이탈리아에서도 크게 화제가 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날은 28일, G20 회의는 29일부터 30일까지라 마테라를 보려면 3일을 더 다른 할 게 아무것도 없는 캠핑장에서 돈과 시간을 버려야 했다. 이미 6월 말이고, 휴가철 전에 돌아가야 해서 이번 여행 기간은 2주 반 정도밖에 남지 않았는데… 결국우리는 코앞에서 마테라를 포기하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푸른 동굴에 이어서 마테라까지.. 보고 싶은 건 보지도 못하고 돈과 시간만 낭비했다는 생각에 속상하고 허탈한 마음으로 풀리아 주에 들어섰다. 이어지는 좌절에 날씨도 계속 습하고 더워 몸과 마음이 무거웠다. 그럼에도 저 멀리 하늘빛 바다가 보이자 마음이 주책없이 들뜨기 시작했다. 바다를 보며 해안도로를 달리다 보니 해변에는 작은 보라색 꽃이 핀 덤불 같은 것이 가득했다. 길가에 차를 세우고 내려서 냄새를 맡아 보니 야생 오레가노였다. 야생 허브라니. 지천으로 피어난 보라색 꽃밭 너머로 밝은 색의 풀리아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아무것도 다듬거나 꾸미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풍경이었다.




                                      (전자책 발간 예정으로 이하 내용은 삭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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