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lle Argentera
첫 번째 장기 여행에서 돌아온 뒤 거의 한 달이 흘렀다. 일주일 정도 푹 쉬고 이것저것 캠핑카의 고장난 곳을 고치고 나니, 하는 일 없이 무료하고 의미 없는 시간이 하루하루 흘러가고 있었다. 피노와 시어머니도 휴가에서 돌아오셨고, 날씨도 무더워 어디 가까운 산이라도 가자고 남편을 졸랐다. 어렵게 마련한 시간을 이렇게 허비할 수는 없지 않냐는 재촉에 남편이 찾아낸 곳은 ‘발레 아르젠테라(Valle Argentera)’.
토리노 도에 속하는, 프랑스 국경에 인접한 알프스 산속이었다. 2시간 반 정도 걸리는 거리로, 멀지 않은 거리에 알프스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며칠을 보내든 입구에서 입장료 한 번만 내면 돼서 돈을 아껴야 하는 우리에게는 최고의 캠핑지! 물을 채우거나 버릴 수 있는 시설 자체가 없는 산속인 데다가 우리 차의 오수탱크가 크지 않고 화장실도 한계가 있어서 3일 이상은 힘들 것 같았지만, 최대한 버텨 보기로 각오하고 출발했다.
산의 입구에서 입장료 5유로를 내고 아슬아슬한 비포장 산길을 달려 넓은 계곡 지역에 도착했다. 도착했다는 기쁨도 찰나 뭔가 부글부글 끓어 넘치는 소리가 나더니 차가 서 버렸다. 계속되는 오르막에 과열된 엔진이 그걸 식혀 줄 냉각수를 오히려 끓여 증발시켜 버린 거였다. 마침 근처를 흐르는 물이 얼음처럼 차가웠던 덕분에 그 물을 떠와서 식힐 수 있었다. 고장이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다시 힘겹게 시동이 걸리자 긴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산속에서 오도 가도 못하게 된 줄 알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길을 따라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더 좋은 곳이 나올 것 같았지만 차 상태가 염려되어 그 주변에서 캠핑할 곳을 찾아봤다.
둘러보니 길과 얕은 강줄기 사이에 있는 꽤 넓은 공터가 두 곳 눈에 띄었다. 캠핑카로 길을 가리고 강이 보이게 테이블을 놓으면 딱 좋을 것 같았다. 한 곳에는 이미 캠핑카가 있어서 우리는 조금 떨어진 옆자리에 들어가기로 했다.
차 뒤편으로 가 남편이 주차하는 걸 돕고 있는데, 젊은 남자가 아기를 안고 다가왔다. 그런데 미처 인사도 하기 전에 다짜고짜 영어로 화를 내는 거였다. 자리가 얼마나 많은데 왜 여기에 주차하는 거냐며, 이 계곡 전체에 자리가 얼마나 많냐고,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한 양 힐난하는 통에 그만 정신이 아득해지고 말았다. 대답도 못 하고 당혹스러워하는 내가 더욱 만만했는지 그 남자는 도대체 왜 여기냐며 대답해 보라며 기세등등하게 나를 몰아붙였다. 갑작스럽게 당한 봉변에 멍해진 상태로 나는 겨우 남편에게 가서 말을 전했다. 남편이 나오니 남자의 목소리가 누그러진 건 왜일까? 마음속에서 울컥 뭔가가 무너져내렸다.
남자는 주변에 다른 사람이 있는 게 싫다며 다른 데도 자리가 많지 않냐고 따졌는데, 남편은 여기가 마음에 든다며 일축하고 차에 올라 주차를 마쳤다. 차 사이 거리도 꽤 떨어져 있고 중간에 나무도 있고 서로 마주 보는 위치도 아니었는데, 그 정도로 사람이 싫으면 자기가 외딴 자리로 가야 하는 거 아닌가? 강변의 넓고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선 주변 사람들을 쫓아내려는 그 이기심에 어이가 없었다.
아기와 골든 리트리버를 데리고 온 그 프랑스 부부는 하룻밤이 지나고 우리가 얼마나 조용한 이웃인지 알게 되자 다음 날 아침, 밖에 있던 남편에게 와 사과했다. 우리 전에 이 자리에 있었던 가족이 아이들이 많고 시끄러웠던지라 스트레스를 받아 예민해져 있었다며.. 그게 그의 무례함에 면죄부를 줄 수 있는 사유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그때 캠핑카 안에 있어서 그 대화를 들을 수 있었는데, 그들의 말은 사과라기 보다는 변명처럼 들려 상처받은 마음이 달래지지 않았다.
그 일만 빼면, 우리는 이곳에서 정말 잘 지냈다. 낮에는 초여름 같고 밤에는 초겨울 같은 고산지대에서, 낮에는 반팔에 반바지를 입고 하이킹을 하거나 산과 강을 바라보며 앉아 쉬거나 책을 읽거나 보드게임을 했고, 밤에는 옷을 껴입고 하얀 입김을 만들며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올려다 보다가 캠핑카로 들어와 포근한 솜이불을 덮고 기분 좋게 잠들었다.
아, 여기 밤하늘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 밤하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서 이 글을 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간 날은 음력으로 7월 3일이라 아주 얇은 초승달이 있었거나 그마저도 산에 가려 보이지 않았거나 했을 것이다. 확실한 것은 달의 존재감이 없었고, 구름 한 점 없이 맑았으며 마침 유성이 떨어지는 시기였다. 그런 조건에 고도 1750m 산속에서 보는 밤하늘이란, 다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말문이 막힌다.
그날, 늦은 저녁을 먹고 10시가 넘었을 때 밖은 이미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희뿌연 부분이 한 곳도 없는 완벽한 어둠.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하늘을 올려다보자 눈에 쏟아져 들어온 것은 크고 하얗게 빛나는 수많은 별들이었다. 수를 헤아릴 수가 없이 많은 별들이 밤하늘에 박혀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촘촘하게 하늘을 채운 별들 사이의 좁은 어둠이 짙어 수많은 별들 하나하나가 입체적으로 빛났다. 그 공간감이, 마치 우주 공간을 직접 응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별들로 가득 찬 밤하늘에는 은하수가 선명하고, 왼쪽 하늘에는 커다란 북두칠성이 빛나고 있었다.
계절상 한여름인데도 입김이 나올 정도로 추워서 우리는 옷을 두 겹 입고 담요를 두르고 앞뒤로 껴안은 채 목을 꺾어 하늘을 올려다 봤다. 목이 아프고 너무 추워 몸이 부들부들 떨렸지만 난생 처음 보는 환상적인 광경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별들이 너무 크고 가깝게 빛나 마치 천천히 쏟아져 내리는 것 같았다. 거기다 유성까지. 선명하게 빛나는 유성의 꼬리가 슬로우모션처럼 늘어지다가 순식간에 사라졌을 때는 뭔가에 홀린 것처럼 신비한 느낌마저 들었다.
삼일 째 아침, 프랑스 가족이 떠난 후 그 자리는 이탈리아 번호판을 단 밴이 차지했다. 나가 보니 한 남자가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남매를 데리고 와서 이미 텐트를 다 치고 강물에 돌을 둥글게 쌓아 음료수와 수박을 넣는 등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이탈리아 사람도 계곡물에 수박을 넣는구나 싶어 반가운 마음이 들었지만 이전 일도 있고 해서 나는 되도록 그와 마주치지 않으려 신경을 썼다. 그런데 우리를 본 남자가 환하게 웃으며 반갑게 인사를 해 왔다.
이탈리아 사람 특유의 사교성에 홀려 웃으며 인사를 하고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잠시 후 정리를 끝낸 남자가 다시 우리를 부르더니 차가운 맥주가 있다며 주겠다고 했다. 차가운 맥주라니, 너무나 솔깃했지만 미안한 마음에 우리는 예의를 차려서 사양했다. 그러자 남자는 “Come no~(아니긴 뭐가 아니야~, 어떻게 'No'라는 거야~ 정도의 이탈리아어)” 라며 장난끼 어린 표정으로 이탈리아 사람 특유의 손가락 모으는 제스처를 해 보인다. 이어서 “차가운 맥주인데!!” 하는 남자.
이 아저씨 진심이구나! 예의상 물어본 게 아니었다. 정말 진심으로 '차가운 맥주를, 왜? 도대체 뭐 때문에 거절하는 거야?'라는 표정을 짓는 아저씨를 보니 더는 사양할 수 없어 남편이 가서 맥주를 받아 왔다. 연거푸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맛본, 알프스 계곡의 얼음장 같은 물에 담겨 있던 맥주는 냉장고에서 갓 꺼낸 것마냥 시원했다. 오랜만에 마시는 맥주 맛보다 밝고 다정한 호의에 마음이 녹는 것 같았다. 사람한테 받은 상처는 사람이 치유한다더니.
그날 낮에는 커다란 구름이 지나가며 두 번 정도 짧게 비를 뿌렸다. 빗방울은 큼직하지만 듬성듬성 떨어지는 비였다. 그러다 6시 반쯤 되었나 본격적으로 비가 오기 시작하더니 타닥타닥 빗방울이 지붕에 부딪히는 소리가 점점 세차졌다. 순식간에 젖어버린 의자와 테이블을 안에 들이고 기다려 봤지만, 비는 그치기는 커녕 더 거세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번개가 몇 분 간격으로 번쩍번쩍 하고 고도가 높은 탓에 천둥소리도 한층 가깝게 들려 무서웠다.
게다가 우리는 계곡 물이 내려오는 강 바로 옆에 주차하지 않았던가. 우리 차는 비포장도로와 강 사이 풀밭에 세워져 있었는데 한 시간 만에 비포장도로는 물길이 되었고, 얼음처럼 맑고 얕았던 강물은 흙탕물이 되어 마구 불어나기 시작했다. 덜컥 겁이 났다. 산에서 비가 올 때는 물가에 있으면 안 된다는 말이 머리에 맴돌았다. 그렇지만 도로로 올라가기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어서 초초하게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마음을 졸이다 문득 창문 밖을 내다봤더니 산 봉우리 사이로 구름이 내려앉은 모습이 수묵화처럼 신비로웠다. 걱정은 뒤로 하고 창문에 얼굴을 바짝 대고 경치를 구경하고 있노라니 산 뒤편에 가득했던 구름이 구렁이가 담을 넘듯 부드럽게 산을 타 넘어 앞으로 전진해 오는 것이었다. 그 순간 나는 ‘구름이 땅으로 내려오다니?’ 싶었는데, 시간차를 두고 ‘아, 여기 해발 1750m지.’ 하고 납득했다. 구름은 파도처럼 우리 코앞까지 밀려와 흩어졌다.
비는 그 후로 세차게 쏟아지다가 그쳤다가 다시 쏟아지기를 반복했다. 어두워진 후에는 어찌할 방법이 없어 그냥 잤는데 다행히 비가 그쳐 무사히 다음 날이 됐다. 떠나온 지 4일째, 2박 3일 버티면 성공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만큼 버티다니 뿌듯했다. 돈도 고속도로 톨비와 입장료, 이곳 아그리투리스모에서 가끔 식사 대용으로 사 먹었던 치즈와 계란 값 외에는 쓰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니 그동안 알레산드리아는 거의 40도까지 올라가 밤에도 잠을 못 잘 정도로 더웠다고 한다. 우리가 겨우 2시간 반 거리에서 하얗게 입김을 뿜고 있었음을 생각하니 신기했다.
그곳의 맑고 서늘한 공기와 환상적인 밤하늘을 잊지 못해 우리는 일 년 후 여름 휴가철에 다시 이곳에 왔다. 그 사이 초입의 위험했던 길들이 깔끔하게 포장되어 있었고, 이전에 캠핑했던 강가의 공터는 이제 캠핑금지 구역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산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 와이파이가 되는 넓은 캠핑장을 찾아내 거기에서 지냈다.
이번에는 준비를 단단히 하고 와서 압력솥에 밥도 하고 라면도 끓여 먹고 맥주도 자주 마실 수 있었다. 날씨가 나쁘거나 와이파이가 잘 안 터져 심심할 때는 책을 읽거나 루미큐브를 했고, 날씨가 좋으면 주변을 둘러보거나 하이킹을 했는데 돌아올 때 마른 나뭇가지를 잔뜩 주워와서 거의 매일 불을 피웠다. 지금 생각하면 참 열심히도 불을 피웠더랬다. 사람은 시간이 너무 많이 주어지면 뭔가 몰두할 거리가 필요한 법이고, 불 피우는 건 너무 재미있어 질리지도 않았다.
그곳은 와이파이가 되는 넓은 캠핑장이라 많은 사람들이 오갔다. 아이들을 데리고 온 가족, 하이킹을 온 커플, 단체로 와서 체육대회를 연상케 하는 커다란 텐트를 치고 활기차게 노는 사람들까지. 강아지를 데려온 사람이 워낙 많아 즐거워하는 강아지들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덩달아 행복해졌다.
캠핑장에 오래 머무르는 사람들의 강아지와는 조금 친해지기도 했다. 특히 막스라는 조그만 삽살개는 시도 때도 없이 캠핑장을 누비고 다녀 주인 아주머니가 특유의 음색으로 마악스~ 마악스~ 하고 부르는 소리가 하루에도 몇 번씩 울려퍼졌다. 덕분에 거기 있던 사람들 모두가 막스를 알았다. 우리 캠핑카에도 자주 왔는데 이름을 부르면 꼬리를 흔들며 좋아했지만 늘 오래 머무르지는 않고 바삐 다른 차를 살피러 떠나곤 했다.
어느 날 캠핑장에 고양이가 돌아다니기에 만져 주다가 주인인 이탈리아 남자와 대화를 나누게 됐다. 매년 캠핑카로 이곳에서 여름을 보낸다는 그에게 이것저것 팁을 전수받고, 마침 아시아 음식에 관심이 많다고 하기에 작은 병에 담긴 김치를 선물했더니 고맙다며 팔찌를 만들어 줬다. 내 팔목 둘레에 딱 맞게 만들어 준 팔찌. 신기하게도 이탈리아 사람에게서 한국인의 정을 느낄 때가 많은 것 같다. 사람 좋게 웃는 얼굴이 아직 기억 난다.
남자의 고양이 퓨마는 조심스럽게 캠핑카들을 확인하고 다니며 며칠 동안 혼자 산책을 나왔는데 어느 날 셰퍼드에게 잡힐 뻔한 이후로는 밖에 거의 나오지 않게 됐다. 셰퍼드는 아직 어려 그저 놀고 싶었던 것 같았지만 쫓기는 입장에서는 얼마나 놀랐을까. 나무에 올라가 내려오지 못하는 걸 남자가 올라가 안고 내려오는 걸 본 게 마지막이었다.
우리는 3~4일에 한 번씩 마을에 가서 물과 화장실을 갈고 장을 보고 돌아왔다. 그러면서 5시 이후에 다시 들어오면 입장료가 무료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예이~!) 그렇게 일주일을 버틴 후 집까지 돌아가서 제대로 샤워를 하고 식료품과 나무와 숯을 더 사 와 일주일 더, 이렇게 총 2주 동안이나 이곳에서 머물렀다. 머리의 기름기가 심할 때는 낮에 워터팩을 나무에 걸어 두고 살짝 데워진 물로 기름기를 조금이나마 씻어내며 버텼다. 그곳에서 보내는 하루하루가 너무나 평화로워 그 시간을 하루라도 더 연장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왜 속세를 등지고 자연인이 되는지 알 것 같았다.
산에서 지내는 게 마냥 행복하다고 이 나이에 차마 자연인이 될 수는 없고, 이제 더는 이곳에 돌아오지 못할 테지만 이곳에서 보낸 시간들이 내 마음에 어떤 풍경을 만들었다고 느낀다. 내가 다시 바쁘게 살아가고 일에 치이고 사람에게 시달릴 때 나를 숨쉬게 해 줄 풍경. 그런 풍경을 많이 만들어 두는 것이, 내가 캠핑 여행을 하며 얻는 가장 큰 보상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