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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레 May 26. 2023

사르데냐 섬의 무료 주차장

Sardegna 두 번째 이야기

  이탈리아에서 캠핑카로 여행하면서 물건을 도둑맞거나 강도를 당한다거나 하는 상황을 항상 조심하긴 했지만, 사실 안전하지 못하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그런데 사르데냐에서는 좀 달랐다.


  그렇지 않아도 사르데냐 섬에서는 빈 캠핑카 털이가 종종 일어난다고 들었고, 우리는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무료 주차장(말이 주차장이지 주차해도 되는 공터에 가깝다)에서 주로 잤기 때문에 늘 도난 범죄의 희생양이 되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


  사실 습관처럼 늘 해왔던 일이다. 잠깐 자리를 비울 때에도 카메라나 노트북 같은 고가의 물건은 찾기 어려운 곳에 숨기고 문과 창문을 매번 잠그고, 잘 때 아무리 더워도 위층 침실 창문까지 닫아 잠그는 것. 자전거도 비록 낡은 중고지만(남편 것은 30유로 주고 산 것, 내 건 시누이가 어릴 때 타던 것) 늘 캠핑카 뒤 받침대에 올려 두고 체인과 잠금장치를 걸고 길에서 보이지 않도록 뒤로 주차했다. 사르데냐에서는 그 외에도 다른 차들이 있는 곳에서 너무 외따로 떨어져 표적이 되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



  그런데 어느 날 늦은 오후,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외진 해변에서였다. 비포장도로 건너로 바다가 바로 보이는 공터에 주차를 해 놓고 앞좌석에 앉아 바다를 보고 있었는데, 남편이 별안간 심각해졌다.


  같은 차가 벌써 세 번째 지나간다는 거였다. 게다가 지나갈 때 우리 캠핑카를 유심히 쳐다보고, 좀 떨어져 세워져 있는 다른 밴도 유심히 살펴보며 지나가서는 곧 다시 돌아와서 처음 온 길로 사라졌다가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한다는 것이다. 수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슨 의도가 있는 것일까. 우리는 잔뜩 긴장한 채로 길을 주시하다가 차가 돌아오지 않자 긴장을 풀고 바로 앞 바닷가로 나가서 바람을 좀 쐬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차가 또 나타났다.



  다시 돌아온 차는 띄엄띄엄 세워져 있는 몇 안 되는 캠핑카와 밴을 유심히 들여다보며 우리 차가 세워져 있는 작은 공터로 와 그 끝에 멈춰 섰다. 우리는 불안해져서 급하게 차로 돌아왔는데 그 모습을 보더니 다시 시동을 걸어 왔던 길로 돌아가는 거였다. 세상에, 도대체 왜 저러는 거지 싶어 쳐다보다가 운전자와 눈이 마주쳤는데, 유감스럽게도 험악한 인상에 불안감이 더욱 상승해 버렸다. 우리는 다급히 차에 들어가 문을 잠갔다.


  잠시 후 남편이 상황을 살피러 나갔다. 돌아온 남편은 그 차가 이번에는 좀 떨어져 세워져 있는 밴 근처에 서 있다가 떠났다고 했다. 오 마이 갓. 나는 처음 캠핑 여행을 계획할 때 막연한 두려움에 사 뒀지만 한 번도 쓸 일이 없었던 후추스프레이를 찾아 손에 꼭 쥐었다.


  사람이 있으면 털러 오진 않겠지. 설마 오늘밤 강도를 계획하는 거면? 에이 이렇게 낡은 캠핑카를 털려고 그 정도의 위험을 감수하진 않을 거야.. 그래도 혹시 몰라 우리는 무기가 될 만한 것을 챙겨 잠자리에 들었다. 긴장한 채로 하룻밤을 보낸 것이 무색하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날 무슨 일이 일어날 뻔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간밤에 비가 많이 와서 길이 엉망이 돼 있었다. 비 때문에 계획을 취소한 걸지도.



  그 후에는, 자전거를 거의 도둑맞을 뻔한 일이 있었다. 크고 작은 바위들로 구획된 작은 해변들이 이어져 있고 멀리 숲과 산이 보여 아름다웠던 한 해변의 주차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곳도 외진 해변이었고, 주차장은 해변 근처 덤불숲이 우거진 공터였다.


  우리는 그곳에 그날 낮에 도착해 점심을 먹고 해변들을 둘러 본 후 수영을 하며 좋은 하루를 보냈다. 밤이 되어서는 바다로 난 바위 사이 작고 평평한 공간에 앉아 전날 마시고 남은 와인을 병째 마시며 환하게 떠오른 보름달과 밤바다를 바라봤다. 우리는 그곳이 마음에 들었고 주차한 자리도 괜찮아서 며칠 머무를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생길 줄이야.


중간은 전날 다른 해변에서 찍은 사진


  잘 자다가 남편이 벌떡 일어나 손바닥으로 벽을 꽝 치며 불을 켜는 바람에 나도 덩달아 놀라서 깼다. 그런데 무슨 일이냐고 물어도 남편이 대답을 않고 아래로 내려가서는 심각한 표정으로 서 있기만 하는 거였다. 시간을 보니 새벽 2시였다. 무슨 일인지 말을 안 해 주니 짜증스러웠지만 표정이 하도 심각해 나도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한참 만에 하는 말이 자전거를 고정해 둔 알루미늄 받침대를 건드리는 소리를 들었다는 거였다. 덤불로 3면이 막힌 자리에 뒤로 넣어 주차했기에 안전할 줄 알았는데.


  우리는 숨을 죽인 채 상대의 기척을 기다렸다. 몇 분을 기다려도 주위는 쥐 죽은 듯 조용했지만, 혹시 몰라 30분쯤 기다린 후에 불을 끄고 누웠다. 사실 나는 이때까지만 해도 별 거 아니겠지 했었다. 그런데 잠시 후 다시 스르르 잠에 빠지려는 찰나, 자전거를 고정한 벨트의 고정쇠를 여는 찰칵 짤랑 소리가 선명하게 울려퍼졌다. 바람이나 나뭇가지에 건들려 나는 소리가 아니라 고정쇠를 잡고 들어올려야만 날 수 있는 소리여서 순간 몸이 벌떡 일으켜졌다. 우리는 동시에 뛰쳐 일어나서 불을 켰는데, 그러자 밖은 다시 잠잠해졌다.


  환장할 노릇이었다. 나가서 확인을 하면 속이 시원하겠지만 자전거가 목적이 아니라 캠핑카의 문이 열리길 기다리는 건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침이 올 때까지 깨 있을 수도 없고 나가 볼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다른 방법이 없어, 결국 우리는 한밤중에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차를 뺄 때 사이드미러로 뒤를 뚫어져라 쳐다봤지만 가로등도 없는 공터인 데다 디귿자 덤불 때문에 달빛도 닿지 않아 안쪽은 깊은 어둠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이 모든 일들은 미스터리로 남게 되었다.


라펠로사(La Pelosa)의 도로에서 만난 멧돼지

  여담인데, 이탈리아 섬에는 멧돼지가 참 많다. 사르데냐의 무료 주차장에서 잔다면 멧돼지를 마주칠 각오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엘바 섬에서도 무료주차장에서 한밤중에 멧돼지 가족의 소리를 들었었지만, 그건 귀여운 일화였다. 사르데냐에서는 땅거미 지는 저녁에 산책을 하다가 쓰레기통을 뒤지던 녀석과 눈이 마주친 적이 있는데, 거대한 수컷의 형형한 눈빛을 4~5미터 거리에서 마주하고 있자니 숨이 멎게 무서웠다. 멧돼지를 놀라게 하거나 등을 돌리면 안 된다는 걸 기억하며 우리는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뒷걸음질을 쳐서 겨우 그 길을 벗어났었다.


  그 후에는 라 펠로사 해변 바로 앞으로 난 도로에서 작은 멧돼지를 만난 적이 있다. 한낮이었고 크기가 작아서 무섭지는 않았지만, 하루에 몇 천 명이 방문하는 유명한 해변의 바로 앞 도로에도 멧돼지가 출몰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사르데냐에는 그 정도로 멧돼지가 많은 것이다.


위험을 감수할 가치가 있었던, 사르데냐의 아름다운 무료 주차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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