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감기

내 안의 면역력이 무너질 때

by 밤비


우울은 마음에 걸린 감기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어쩔 수 없다. 이보다 더 적절한 비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1. 감기만큼 흔한 질병도 없다. 누구나 걸릴 수 있고, 특히 면역력이 떨어질 때는 더 쉽게 감염된다. 우울도 그렇다. 마음의 면역력이 약해졌을 때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


2. 어떤 감기는 저절로 낫는다. 2주 정도 푹 쉬고, 영양을 잘 챙기면 어느새 회복된다. 우울도 그렇다. 의학적 처치 없이도 스스로를 돌보고, 주변의 지지를 받으며 천천히 회복할 수 있다.


3. 그러나 어떤 감기는 폐렴이 되어 목숨을 위협한다. 우울도 마찬가지다. 치료 시기를 놓치거나 방치하면 생명을 앗아갈 수 있다. 우울은은 가볍게 느껴도 되는 감정 상태가 아니다.


이쯤 되면 질문이 동그마니 떠오른다. "나 요즘 기분이 좀 안 좋은데, 이것도 우울일까?"





정확한 진단은 전문가의 몫이지만 단서는 있다. 2주 이상 우울한 기분이 지속되고, 일상에서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다면 반드시 우울을 의심해 보아야 한다. 평소 자신의 감정상태와 에너지 수준을 살피는 것이 핵심이다. (원래 에너지 수준이 낮은 사람이 대부분의 활동에서 심드렁한 것과, 원래는 에너지 수준이 높았던 사람이 불현듯 대부분의 활동에서 심드렁해지는 것은 전연 다른 문제니까)


더불어 이 우울이 일상 기능을 방해하고(예: 불규칙한 수면과 식사, 주의집중 실패, 반복되는 실수) 극심한 고통을 유발하며(때로는 내가 아닌 주변이 힘들 수도 있다), 이 양상이 일상적 범주를 벗어났다면, 그 순간이 바로 도움을 요청해야 할 때다.





우울은 반드시 눈물로만 표현되지 않는다. 무작정 24시간 내내 심연에 빠져있는 것도 아니다. 깔깔 웃기도 하고 개구진 장난도 친다. 나 역시 그랬다. '흔한 번아웃일 수도 있고, 체력적으로 좀 지쳐서 예민한 거겠지.' 무심히 지나쳤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울은 조용히 나를 옥죄었다. 이유불문 꾸준히 지켜오던 일상이 무너져내릴 때마다 더 괴로웠다. 꾸준히 해오던 집안일이 지긋지긋하게 느껴졌고, 매일같이 하던 글쓰기는 한 글자 써 내리기도 힘들었으며, 취미로 즐기던 독서모임이나 달리기에도 점점 마음이 식어갔다. 무얼 해도 기쁘지 않았고, 무얼 해도 살아있는 것 같지 않았다.


하루종일 침대와 한 몸이 되어 끝없이 침잠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예전엔 즐겁던 일에도 아무런 감흥이 없어지는 것. 그 조용한 무감각이 우울의 얼굴일 수도 있다. 나 역시 그 얼굴을 오랜 시간 마주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자살 사고가 용암처럼 솟아오르던 때 당장 문을 박차고 나섰다. 나를 도와줄 이를 적극적으로 찾았다.


그러니 기억하자. 우울은 마음의 감기다. 혼자 앓지 않아도 된다.





※ 혹시 당신이나 당신의 가까운 사람이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세요.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혹은 가까운 응급실이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에게 연락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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