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교환독서: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옥대장님께.
편지 잘 받았습니다. 부탁하신 이야기도 잊지 않고 마음 깊이 새겼습니다. 그 때 지아의 곁에 있는 무수한 사람들 중에 저의 자리도 하나 마련되어 있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요.
조금 전 책을 모두 읽었습니다. 남아있던 페이지를 야금야금 읽어내는 동안 막걸리 한 잔을 기울였고요. 술기운 덕인지, 늦은 밤의 열병 덕인지 마음이 자꾸만 녹아내리고 뭉그러집니다. 오스카가 말하죠, 차라리 아빠의 마지막을 정확히 알면 좋겠다고. 수백가지도 넘는, 머릿속에서 피어오르는 아빠의 마지막에 대한 상상을 멈추고 싶다고. 아이의 절규 앞에서 저는 눈물을 쏟았습니다.
제 할아버지 말예요. 마지막 기억이 분명합니다. 전선에 둘러싸여있던 모습. 거친 몸짓으로 전했을 할아버지의 마지막 말씀. 그리고 파격적이게도 저는 할아버지의 염을 바로 옆에서 지켜본 한 사람이었지요. 하나뿐인 손자와 손녀가 모두 참석한 자리에서 염이 진행되었습니다. 벌써 몇 년이 흘렀는데, 그 장면을 떠올릴 때면 아직까지도 할아버지의 뼈마디가 부러지는 소리가 귓전에 울립니다. 할아버지의 입 안을 가득 막았던 솜을 모조리 빼내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요.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어요. 꼭 제 입과 귀가 막히고, 온 몸이 하얀 천에 꽉 죄여오는 것 같은 공포를 느꼈습니다.
퍽 잔인한 마지막이지요. 보지 않았더라면, 듣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경험입니다. 그래서 잊고 있었습니다. 저는 할아버지의 마지막을 보지 못했습니다. 가족 모두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어요. 무슨 일이 생기면 전화를 할테니 체력을 비축해두라는 의미였습니다. 너무 많이 울어 눈이 퉁퉁 부은 채로, 병원 근처에 있는 감자탕 집에 들렀습니다. 목을 축이는 정도의 식사를 겨우 하고 집으로 왔어요. 침대에 눕자마자 쓰러지듯 잠들었지요. 그리고 새벽, 엄마의 손길에 눈을 떴습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했어요. 네. 우리는 할아버지의 마지막을 그 누구도 곁에서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괴로움에 몸부림 치다가 돌아가셨는지, 곤히 주무시다가 편히 숨이 멎었는지 알 수 없지요. 지금도 저는 모릅니다. 와르르 마음이 무너져 내립니다. 우리 할아버지, 너무 외로웠을 것만 같아서요. 무서웠을 것만 같아서요. 마지막 순간 할아버지는 무엇을 보고 듣고 느끼셨을까요.
속절없이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 단순하고도 서글픈 사실을 20여 년이 지난 지금에야 저는 다시 돌아보고 눈물짓습니다. 살아남은 자의 죗값일 지도 모릅니다.
살아남은 자들에게는 내일이 있지요. 아닙니다. 다시 말해야겠어요. 살아남은 자들에게는 지금이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을 마지막인 것처럼 살아가지 않을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1분 1초, 언제 우리에게 들이닥칠지 모를 죽음을 두려워하기보다는, 그것이 오기 직전까지 생을 마음껏 누리는 쪽을 택하고 싶습니다. 그 굳은 마음에 이 책은 한 가지 메세지를 하나 더 매달아줍니다. 바로, '소통'입니다.
한 번이라도 더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한 번이라도 더 다정한 눈길을 건네고 싶습니다. 한 톨의 모래알이어도 좋으니 쉬지않고 옮기는 삶을 지속하고 싶습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제가 알고 있으니까요. 죽음 이후에 남을 모든 것을 걱정하기보다 죽음 이전에 모든 것을 품는 삶을 꿈꿉니다.
옥대장님의 부탁, 잊지 않을게요. 약속해요. 꼭 지킬게요. 그리고 말예요. 저는 마음을 미루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저는 당신을 무척이나 사랑합니다.
밤비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