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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비 May 16. 2024

에세이: 그리운 친구여

문신처럼 각인된 너의 말


ㅡ 너 지금 어디야?

ㅡ 나? 임랑! MT 와 있지이~ 무슨 일 있어?


임랑 해수욕장 한 민박집 평상에 걸터 앉아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시끌벅적 부산스러운 이곳의 소란이 무안할 정도로 서늘한 적막이 흐르는 전화였다. 모래사장에서부터 따라온 모래 알갱이들을 털어내려 심드렁하게 신발 한 짝을 벗는 중이었다. 핸드폰 너머로 이어진 친구의 다음 말에 들고 있던 신발을 가만히 내려놓았다. 아니, 털썩 놓쳤던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친구의 말을 끝으로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들을 수 없었다. 동기들에게 뒤를 부탁하고 쫓기는 사람처럼 민박집을 나섰다. 곧장 눈앞에 보이는 택시를 붙잡아 타고서도 놀란 가슴이 쉬이 진정되지 않았다.  


산허리 너머로 해가 빠르게 넘어가고 있었다. 집까지 들를 시간 여유가 없었다. 조금 전 내게 전화를 걸었던 친구 집으로 향했다. 친구는 집에 있는 검은 옷이란 옷은 모두 꺼내 침대 위에 넓게 펼친 상태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친구의 옷을 걸쳤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검은 천으로 휘감은 우리 둘은 이동하는 내내 서로 별다른 말을 주고받지 못했다. 내뱉을 단어가 없었다. 


우리 둘 다, 친구의 장례식은 처음이었다. 


장례식장 입구에 도착하자 낯익은 얼굴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아무리 철이 없어도 오랜만의 조우를 반기고 즐길 수 없었다. 입구 근처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익숙하고도 낯선 서늘한 한기가 어깨 위로 느리게 내려앉음을 느꼈다. 앞서 입장하는 다른 친구들보다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시린 어깨를 한참 동안 쓸어내린 뒤에야 발걸음을 옮겼다. 21살. 고등학교 생활이 물리적으로든 심적으로든 가장 가까운 때였고, 일찍 결혼하는 친구의 결혼식에는 어쩐지 친분의 두께와 관계없이 너도나도 참석하는 분위기였다. 그건 일찍 작별하는 친구의 장례식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 친구와의 생전 관계를 묻고 따지지 않았다. '친구' 혹은 '동창'이라는 이름으로 검은색 물결이 하나가 되었다. 기억 속 무수한 얼굴이 조문객 행렬로 이어졌다.   




절친한 친구(friend)와 같은 반 친구(class mate)를 구분하자면 후자에 속하는 아이였다. 작은 키에 짧은 단발머리. 웃을 때면 얇게 접히며 휘어지는 눈이 참 귀여웠다. 하얀 피부에 옴폭 패이는 작은 보조개가 인상적이었다. 자신이 웃는 일보다 상대가 웃을 일을 부러 능청스레 만들고 즐기는, 마음씨 보드랍고 유쾌한 캐릭터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로 우리가 따로 만날 일은 없었다. 몰려다니는 무리가 아예 달랐고, 대학이 달랐고, 특별한 접점도 없었다. 


그 애 특유의 햇살 같은 웃음꽃이 핀 영정 사진 앞에서 눈물이 왈칵 차올랐다. 내 기억 속 마지막 얼굴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모든 것이 그대로인 너는 훌쩍 어디로 떠났을까. 꼭 떠나야만 했을까. 대답을 들을 수 없는 물음은 고인 눈물과 함께 조용히 삼켰다. 하얀 국화 한 송이를 그 애 앞에 가지런히 내려놓았다. 고개 숙여 인사를 전했다. 보고 싶었어. 


같은 테이블에 앉은 우리들은 모두 검은빛이었다. 똑같은 교복을 입고 생활하던 그 때와 많은 것이 변한 듯 또 변하지 않았다. 넘어가지 않는 밥을 천천히 씹어 삼키는데, 중년의 여성이 우리 테이블로 다가왔다. 마지막 인사하러 와 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그 애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먼 훗날, 나이 든 그 애를 몰래 엿본 것만 같아 다시  슬퍼졌다.   




서늘한 어깨를 털어내며 장례식장을 나서는 길. 몸을 돌려 다시 한번 그 애를 바라봤다. 그 애가 내게 남겼던 마지막 말이 선명히 떠올랐다. 그 때는 그 애도, 나도 그 말이 유언이 될지 몰랐다. 


당시에는 싸이월드가 SNS의 중심이었다. 나는 사진만큼이나 글을 많이 올리는 이용자였고, 그 애는 나의 사진보다 글을 무척이나 애정했던 이용자였다. 말없이 '좋아요'만 누르던 그 애가 어느 날 대뜸 방명록 하나를 남겼다. 세상을 떠나기 몇 달 전이었다. 네 글이 참 좋다는, 그러니 부디 너는 계속 글을 쓰면 좋겠다는 말이었다. 절친하지 않은 동창의 갑작스러운 응원에 마음이 부풀어 올랐었다. 괜히 부끄러워 'ㅋㅋㅋㅋ' 같은 실없는 댓글을 달았던 것도 같다. 그게 다였다. 그게 그 애가 내게 남긴 마지막 말이 될 줄은 몰랐다. 평생 나를 따라다니는 그림자 같은 말이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알았더라면 … 뭔가 달라졌을까. 아니, 알 수 없다. 


그 때도, 지금도 나는 그 애의 선택을 존중한다. 그 애의 생(生) 만큼이나 사(死)도 마음 다 해 존중하는 까닭이다. 어쩌면 그 애도 궁금했을 평범한 미래에 살고 있는 나는, 숙제 같은 그 애의 마지막 말을 종종 떠올린다. 문신처럼 선명하고 짙게 각인된 그 말을.   




늘 머릿속에서 무수하게 생각만 했던 이 글에 드디어 마침표를 찍는다. 그 애가 애정하고 지지하던 내 글로 그 애의 마지막을 기록한다. 나는 차마 헤아릴 수도, 이해할 수도 없을 그 애의 마지막을 이렇게 피상적으로 남기는 것이 무슨 소용일까 싶어 오래토록 망설였다. 그럼에도 이렇게 쓰기로 결정한 것은, 역시나 그 애의 마지막 말 덕분이다. 나는 정말 쓰는 사람이 되었다. 너의 지지가 지금의 나를 쓰게 했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쓰게 할 것임을 믿는다. 고맙다. 그립다는 말 대신 고맙다는 한 마디에 차마 다 쏟아내지 못한 내 진심을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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