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외계인이 싫어.
생쥐처럼 작은 두더지 새끼가 길바닥에 죽어있는 것을 보았다.
지렁이가 탑처럼 쌓아놓은 똥무더기를 보았다.
송충이처럼 털이 수북한 애벌레들이 나무에 다닥다닥 붙어
모든 잎을 먹어치운 뒤의 헐벗은 나무들을 보았다.
너른 억새밭의 물억새들이 햇빛을 받아 은빛으로 반짝이는 일렁임을 보았다.
물웅덩이를 가로지르는 나뭇가지 위에서 등딱지가 반질반질한 거북이의 낮잠을 보았다.
키 큰 나무 군락지를 헤치며 쉬이~ 솨아~ 불어오는 바람 따라 춤추듯 흔들리는 잎을 보았다.
이 모든 것을 걸으면서 보았다.
걷지 않았으면 못 보았겠지.
보지 못했다면 알지 못했겠지.
알지 못했다면 난 여전히 그대로였겠지.
그대로였다면 나는
아름다움을 사랑하지 못했겠지.
다행이다. 걸을 수 있어서.
찬찬히 걸었다.
하늘 따라 걸었다.
바람 따라 걸었다.
길 위에서만 생명을 만난다.
누군가는 갯벌 위에 난 길 위에서
누군가는 습지로 가는 둑방 길 위에서
누군가는 어두운 숲으로 가는 길 위에서
생명을 만나는 길은
멀고 어둡고 위험하다.
생명을 만나는 모든 길은
결국 하나로 통한다.
경이로움
대구 달성습지를 걸으며 자연을 만끽하는 시간을 가졌다.
도시에 살면 인간이 자연이라는 사실을 가끔 잊는다. 기계와 전기로 이루어진 물건들에 둘러 쌓여 내 안의 생태 에너지가 바닥이 날 때쯤. 그러니까 마음이 퍽 갑갑하고 두통에 시달리며 어디로 가야만 하나 고민이 될 때쯤이 생태 에너지 고갈의 비상등이 켜질 때다.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 시키는 일. 호수공원을 돌며 하늘을 보면 10%, 새로운 나무와 꽃을 자세히 보며 사진을 찍을 때 5%, 바람을 맞으며 야생동물을 보게 될 때 15%가 채워진다. 완벽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보고 느끼면 70% 이상이 충전된다.
삼시 세끼를 잘 챙겨 먹어야 건강하듯 좋은 생태 에너지를 위해서 자연을 보고, 만지고,
행하는 수고는 당연하다.
생태 에너지를 계속 채우지 못하면 계속 마음은 쪼그라들어 자연을 찾으려는 마음이 점점 사라진다.
그렇게 메마른 마음이 쩍쩍 갈라지다 못해 바스러지면 결국 인간은 본디 자연이라는 것을 망각한 채 외계인이 된다.
다양한 생명이 살고 있는 자연을 무시하고, 건조한 인간만을 위한 지구를 만들어 가고 있는 외계인.
그렇지 않고서야 저들이 하는 짓을 설명할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