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믿는다는 게 뭐예요?"
얼마 전 딸아이가 거실에 설치된 유아 미끄럼틀을 굳이 후진으로 서서 오르겠다며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앞으로 내려오는 것도 무서워해서 손을 잡아줘야 하던 때가 있었는데...
새로운 도전을 해나가는 딸아이가 대견하여 전한 응원의 메시지.
"아빠는 우리 딸 믿는다!"
두 주먹을 불끈 쥔 격한 나의 응원에 딸아이는 미끄럼틀을 오르다 말고 멈춰 섰다.
그리고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며 믿는 게 뭐냐고 물은 것이었다.
아빠의 믿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믿는다는 건 잘할 거라고 생각하고 계속 응원한다는 거야."
"아~~~"
다행히 딸아이는 잘 이해했다는 짧은 감탄사와 함께 미끄럼틀 오르기를 계속하기 시작했다.
근데 내가 믿는다는 뜻을 정확히 설명해 준 걸까?
동사형 '믿다'에 대한 표준국어대사전의 정의.
1. 어떤 사실이나 말을 꼭 그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그렇다고 여기다.
2. 어떤 사람이나 대상에 의지하며 그것이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여기다.
3. 절대자나 종교적 이념 따위를 받들고 따르다.
딸아이를 향한 믿음은 사전적 정의 모두를 포괄하는 게 맞는 것 같다.
호기심 많은 딸아이는 부쩍 본인이 이해하지 못한 단어의 뜻을 묻는다.
"뭐라고요?"
잘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아주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반문하는 모습은 정말이지 귀엽다.
[MBN '나는 자연인이다' 中, '뭐라고요?']
막상 갑자기 질문을 들으면 뭐라고 답해야 할지 엄청나게 고민이 된다.
질문을 들을 때마다 내 머릿속은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는 자동차의 RPM처럼 대답을 찾기 위한 두뇌회전 속도를 높인다.
"우물쭈물하는 게 뭐예요?"
"장군이 뭐예요?"
"걱정이 뭐예요?"
동화책을 읽어줄 때 특히 고난도의 질문이 쏟아진다.
몹시나 궁금한 표정으로 집중해서 내 눈을 바라볼 때면 뭐라고 대답해줘야 할지 여간 난감한 게 아니다.
올해 들어 딸아이는 간단한 한글을 읽기 시작했다.
가나다라부터 해서 우유, 고구마, 사자 정도의 단어들은 잘 읽는다.
이중모음이나 쌍자음, 받침이 있는 단어는 거의 읽지 못하지만,
본인의 이름이나 자주 접한 가족들이나 친구들의 이름에 포함된 글자는 또 기가 막히게 읽는다.
아이가 요새 좋아하는 것 중 하나는 등하원이나 산책 시 자동차 번호판을 보는 일이다.
'조' '하' '우' '주'...
나란히 주차된 차들을 지나가며 번호판의 글자를 소리 내 읽고 잘 모르는 게 나오면 멈춰 서서 물어본다.
몰랐는데 최근에 딸아이와 번호판을 같이 유심히 보다 보니 은근히 쓰는 글자가 한정되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의도한 건진 모르겠지만 어린아이도 쉽게 식별할 수 있어서 좋다.
[자동차 번호판 '문자'의 비밀, 국토교통부]
글자를 빨리 익히면 그만큼 사고가 제한된다는 말도 있지만,
동시에 글자를 알게 되면서 아이가 바라보는 세상이 더 뚜렷해지고 틀이 잡히는 측면도 분명 있다.
동화책을 읽다가 자기가 아는 단어가 나오면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짚으며 읽기도 한다.
우리가 읽어주거나 알려준 말들을 잘 듣고 기억했다가 마치 본인이 아는 단어인 마냥 따라 하는 모습도 어찌나 귀여운지.
반복해서 자주 읽는 책은 흡사 진짜 읽는 것처럼 따라 한다.
"이 도끼가 너 도끼냐 오잉."
"예, 예, 띠용."
어느 순간 책을 볼 때 아는 글자를 따라 읽다가 계속 '오잉', '띠용'이라고 추임새를 넣길래, 처음에는 그냥 표현력이 늘어 재밌는 연기를 하는 건가 싶었다.
그러다 아이가 가리키는 손가락 끝이 어디를 향해 있는지 보고 금방 깨달았다.
물음표와 느낌표를 지칭했다는 것을.
[탄탄스토리텔링 옛이야기 '금도끼 은도끼'中, 김동성그림, 여원미디어]
"'?'는 뭐라고 읽어?"
"오잉"
"하하하. 그럼 '!'는 뭐라고 읽어?"
"띠~용"
확인사살에 해맑게 웃으며 대답한다.
활자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유심히 우리가 읽어주는 걸 지켜보다가,
문장부호는 어감에 따라 본인이 임의로 명칭을 붙인 것이었다.
말을 하기 시작할 때 발음이 어려운지 계속
'베개'를 '께배'로, '뚜껑'을 '꾸껑'으로, '변장'을 '번장'으로 말해서 큰 웃음을 주던 너.
글자를 배우면서도 웃음을 주는 일이 가득해지는구나.
아빠는 우리 딸 정말 믿어.
어떤 일이든 잘 될 거고, 무슨 일이든 잘할 거야.
늘 생각하고 응원할게.
앞으로 세계의 더 많은 글자들도 배우면서,
풍부한 언어로 넓은 세계를 살아가면 좋겠구나 띠~용!
[표지그림 출처 : Image by geralt from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