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에 살고 싶어

by YOSPAPA

"아빠! 우리 언제 호텔 가요?"


하나도 안 싸놨는데, 호텔에 간다고 들뜬 딸아이는 잠에서 깨마자 언제 출발하고 성화다.


딸아이가 태어나서 네 번째 맞는 생일을 기념할 겸,

회사에서 받은 무료 숙박권 기한이 지나기 전에 쓸 겸,

보름 전쯤 미리 호텔을 예약해 두었다.

호텔 가기 전날 밤 아내와 완벽한 일정도 계획해 놨다.


1. 아침 먹고 짐 챙겨 느긋하게 출발하기.

2. 른 점심사 후 텔 근처 영화관에서 상영 중인,

딸아이가(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아동만화 관람하기.

3. 호텔 체크인 후 아이 낮잠 재우며 다 같이 낮잠 자기!


[호텔로 출동이다!]


하지만 완벽한 계획은 아침을 먹고 짐을 챙긴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이미 가한 계획이었다.

아이와 밖에서 자려면 짐은 미리미리 싸놨어야 한다.

퇴근 후라 피곤하다고 내일로 미룬 어제의 나를 탓해야지 누굴 탓하겠는가.

고작 루라 하더라도 아직까지 아이와 함께하는 외박 준비는 장기출장 준비에 버금다.


아이 옷, 장난감, 목욕 및 수영용품, 잠자기 전 읽을 동화책 몇 권 등을 담으니

아이 것만으로 여행용 가방 하나가 반 이상 찼다.

그 와중에 잠잘 때 함께하는 인형 친구들 모두 호텔 구경 시켜주겠다고 한 명 한 명 져다 올려놓는 우리 딸.


"여보! 이 운동복은 왜 넣어놨어?"

"저녁에 입고 잘 거야. 객실온도 올리면 건조하고,추면 호텔도 잘 때 은근히 추워."

"티셔츠 입고 이불 잘 덮고 자면 안 돼?"


추위를 많이 타기에 두꺼운 운동복을 잠옷 대용으로 넣어놨니,

자리가 모자란다며 아내는 내 것을 제일 먼저 밀어다.

옷장에서 티셔츠를 꺼내와 돌돌 말아 여행용 가방 구석 좁은 빈틈에 잘 찔러 넣었다.

뭐 정 추우면 수영복 상의 덮고 자도 되고,

호텔에는 욕실가운(bathrobe)이라는 비상용 잠옷도 항상 구비되어 있으니까.


[Image by Mohamed Hassan from Pixabay]




짐 챙기느라 오전 시간이 훌쩍 지나 느긋하지 않게 집을 나서게 되었다.

평일이라 우리만 쉬고 놀러 가는 줄 알고 차가 안 막힐 줄 알았는데,

주중 점심시간임에도 시내는 많은 차로 붐빈다.

주차시간까지 고려하니 상영시간까지 30여분 밖에 안 남은 상황.

계획했던 점심식사는 생략하고 영화관 매점에서 빵과 팝콘을 사서 허기를 달래기로 했다.


즐겁게 관람을 마치니 어느덧 다리던 체크인 시간!

체크인 안내시간보다 훨씬 일찍 호텔 로비에 도착했는데도 이미 대기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이곳저곳 놀러 다니는 여유로운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 했다.

다른 사람들도 전혀 그렇지 않은 우리를 보면서 같은 생각을 했을 수도 있겠지만.




초고층 객실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멋진 전망에 딸아이는 이리저리 뛰며 신이 났다.

아이들은 멋지고 좋은 것은 귀신같이 안다.

때마침 헬기 한 대가 저 멀리서 지나고 있었다.


"와. 헬기보다 높은 곳에 있어요."

"높은데 있으니 좋아?"

어느 드라마에서 본 듯한 회장님,

대답 대신 창밖을 바라보고 서신 채 고개만 끄덕끄덕신다.


이리저리 객실을 밀히 구경하시더니, 넓은 욕조를 보고는 갑자기 씻으시겠다고 한다.

낮잠도 잊은 채 딸아이는 욕실에서 물놀이 삼매경 빠졌다.

오전 내 짐 싸느라 지친 아내는 욕조에 초췌하게 기대앉아있다.

연차까지 내고 쉬러 온 날인데 평소보다 더 피곤해 보인다.

물론 아내 눈에 비친 내 모습도 별반 다를 바는 없겠지.

물놀이를 하고도 피곤한 기색 없이 실침대에 누워 한참을 들떠 조잘대던 리 딸은,

결국 평소보다 훨씬 늦게 잠이 들었다.




"배... 고파"

낮잠 자는 딸아이를 사이에 두고 침대 맞은편에 누워있던 아내가 나지막이 얘기한다.

점심을 제대로 먹지 못한 리 부부는 허기에 잠도 온다.

객실에 음식을 한 번 시켜볼까 하고 호기롭게 룸서비스(Room Service) 메뉴판을 펼쳤다가,

금액이 잘못 적혀있는 것 같아 살포시 닫아 놓았다.


" 여보! 딸내미 1시간만 재우고, 나가서 맛있는 거 먹자!"


메뉴판을 보고 숫자감각을 상실한 건지 호텔 밖에 나가면 어떤 비싼 메뉴라도 시켜줄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이른 저녁외식을 마치고 돌아와 호텔 수영장으로 향했다.

다른 사람들은 저녁식사를 하고 있을 시간.

수영장을 통째로 빌린 것 마냥 우리 가족끼리의 물놀이를 즐다.

전용 수영장을 가진 부자의 삶이란 이런 것일까?

호텔은 잠시나마 부자가 된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해 준다.


[Image by Engin_Akyurt from Pixabay]


딸아이는 호텔 수영장에서 온 힘을 쏟은 데다가 낮잠도 평소보다 덜 잤기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다.

잠투정 없이 평소보다 일찍 잠들 것 같아 우리 부부도 들떴다.


확실히 호텔에 머물면 반복된 일상과는 다른 새로운 시간, 공간 속에서 기분 전환이 된다.

딸아이를 일찍 재우고 소파에서 음료 한잔과 오붓한 대화로 하루를 마무리하자고 아내와 교감을 나눈 후,

아이의 양 옆에 각자 몸을 뉘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이 밝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시작된 취침과 숙면.

애초에 이불을 잘 덮고 자느니 마느니 논할 필요조차 없었다.

피로가 곧 이불이다.


전날 저녁을 먹고 들어오면서 편의점에서 사 온 간단한 식들을 테이블 위에 차렸다.

요거트, 바나나 등으로 이루어진 우리 가족만의 조촐한 조식 뷔페.

가지고 있던 무료 숙박권은 조식이 포함되지 않은 객실 한정(Room Only) 투숙 조건이기 때문이다.

혹시나 식 룸서비스는 뭐가 있었는지 메뉴판을 한번 더 봤다가,

빨리 체크아웃하고 나가서 호텔 처의 집을 방문하는 것으로 바로 결정이 났다.




"아빠 근데 우리 왜 방에서 밥을 먹어요?"


기억을 못 할 거라 생각했는데...

호텔에 조식 뷔페가 있다는 것을 딸아이는 기가 막히게 기억고 있다.

작년과 재작년 호텔 방문 시상 조식 뷔페를 이용하긴 했었다.

호텔들이 어려울 때 경쟁적으로 특가나 제휴상품을 놓기도 했니와,

대부분의 호텔에서 만 4세 이하 아이에게는 조식 뷔페가 무료로 제공되기에 혜택도 톡톡히 누렸었다.


호텔에서 아침 먹을 때 본인이 좋아하는 주스, 과일, 계란요리들을

아빠와 엄마가 가져다었다는 걸 기억하고 있는 우리 딸.

호텔까지 왔는데 왜 조촐한 객실 조식이 제공되는지가 의문이셨는지 고객불만(Complain)을 신다.


배고픈 상태에서 급하게 바나나를 먹은 탓일까.

우리 VVIP님의 지적에 무언가가 얹힌 듯 먹먹해다.




부자 느낌만 주는 아빠 말고 꼭 부자 아빠가 되어,

언젠가는 꼭 우리 딸 매일매일 호텔에서 조식 먹고살게 주겠노라

아빠는 그날 다짐 또 다짐을 했단다.


잊지 않기 위해 모해 놨다가 이렇게 글로도 남겨둔다.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 2013) 中]






[표지그림 출처 : 롯데호텔 홈페이지 / lottehote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