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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식하는 노무사 Jan 04. 2024

사내 노무사 썰 2

오타가 있을 시 수정하지 않겠음. 귀찮음


1. 금융권에서의 경력 마무리

금융권에서는 전략기획팀에 있었기 때문에 노무사와 관련된 직무를 전혀 하지 못했다. 인사 및 노무에 애정이 있지는 않았으나, 그렇다고 해서 전략 기획 등 숫자를 다루는 일이 좋지도 않았다. 팀의 특성상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하는 일도 고역이였고, 우연히? 또는 운 좋게도 내가 선배들, 상사들에게 이쁨을 받았기 때문에 업무 후 날 부르는 술자리도 잦아서 힘들었다. 모두에게 이쁨 받고 싶었던 신입사원이었던 것이고, 그렇게 열심히 노력하다보니 남들보다 마나가 빨리 달아서 고갈되었다. 


아침에 6시 20분에 출근하는데, 다른 팀과 회식을 하게 되면 회사에 체류하는 시간이 하루 17시간이 넘어갔고, 신체적 정신적으로 망가지기 시작했다. 만약 내가 지금의 지식과 유도리를 가지고 있었다면 퇴사를 하는 대신 팀을 옮겨달라고 했을 것이다. 소속팀장에게 면담을 신청해서 업무 조율을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시절의 나는 그런 짬바가 안됐다.


결국 이직을 결심했다. 제일 먼저 말한 곳은 부모님. 부모님은 아들이 노무사 자격증을 따고 대기업에 입사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지고 계셨다. 이런 부모님에게 들어간 회사를 그만 두겠다고 말했을 때 부모님은 버티라고 하셨다. 하지만 이미 나는 내심의 결정을 했고 부모님에게는 지지와 응원을 구하는 입장이었을 뿐 지지를 해주지 않는다고 해서 결정을 바꿀 정도로 타인의 말을 잘 듣는 타입은 아니었다.


그 이후 소속팀장에게 사직서를 제출했다. 소속팀장과 면담하고, 인사팀장과 면담했다. 그 때 인사팀장은 인사팀에 티오가 있을 때 최우선적으로 나를 고려했었다고 하며, 다음 인사이동 때 나를 인사팀에 배정하겠다고 했다. 속으로 '오 남아 볼까?'라는 생각도 좀 했지만 이미 퇴사하겠다는 말을 뱉은 이상 남자가 가오가 있지 한 말을 돌릴 수는 없다는 마음으로 그냥 퇴사하겠다고 했다. 


현재의 관점에서 그리 좋은 직장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노무사는 결국 노무사밥을 먹어야 하는데, 노무사와 관련없는 직무를 수행했을 뿐 아니라, 직무역량을 한창 쌓아야 할 시기에 인간관계에 집중하느라 야생성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금융권이 돈을 많이 주는 것은 맞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리 큰 돈도 사실 아니었다. (그때는 돈 많이 받는다는 자부심이 있을 정도로 만족했었지만)


2. 경력이직 준비

이직 준비는 금융권에 있을 때부터 계속 했었다. 그러나 어쩌다 면접이 잡혀도 면접 날짜에 휴가를 쓰는 것이 어려운 분위기였고 이직할 회사에 대한 공부를 할 시간도 없어서 최종에서 불합격하였다. 애초에 집에가면 진이 빠져서 입사 원서를 많이 쓰지도 못했다. 


이제 퇴사를 했으니 본격적으로 경력 이직을 준비했다. 나는 그때 업종에 관계 없이 인사 노무 직무를 할 수 있으면 지원했다. 일단 나의 최초 기업경력이 인사노무 경력이 아니었기 때문에 상당한 제약이 있을 것이라고 지레 겁 먹었으나 막상 지원해보니 생각보다 많은 곳에서 나를 찾았다.


업종은 게임업종, 제조업종, 화장품회사, 광고회사, 호텔업종 등등 다양하게 합격을 했고, 나는 제조업으로 이직하였다. 왜냐하면 제조업은 가장 오래된 전통적인 업종이고, 그 당시에 제조업의 인사노무관리는 전체 업종의 그것과 비교할 때 끝판왕이라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게임업종에 다니는 인사팀 직원과 이야기를 해봤을 때 제조업에서 게임업으로 이직이 가능하지만 반대로 게임업종에서 제조업으로 이직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 이야기인즉슨 제조업에서의 커리어가 제일 인정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제조업을 선택했다.


(참고로 헤드헌터를 이용해서 경력이직을 준비하려는 사람들은 마음을 다시 고처먹어라. 내가 겪어본 헤드헌터들은 실력도 없고 이 업종에 대한 열정도 없는 놈들이 대부분이었다. 적어도 지원할 회사에 대한 정보는 제대로 알아보고 알려줄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무조건 일단 이력서부터 접수하라는 식이다. 우리나라의 헤드헌터들은 대부분이 기업과의 연계가 낮다. 즉 헤드헌터한테 잘 보였다고 해서 해당 기업에 들어갈 때 가점이 있는게 전혀 아니다는 뜻이다. 회사에서 노무사를 구인하면 헨드헌터들은 노무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 전부에게 메일을 돌린다. 그중에 한놈만 걸려라는 식이다. 한놈이 호구처럼 걸리면 그놈한테 이력서를 제출하라고 하고 합격하면 수수료를 받는 식이다. 이건 지나가는 동네 꼬마도 할 수 있는 일이다. 겨우 이정도 일을 하는 놈들이 자기네들끼리 서로 어디어디 이사네 어디어디 부장이네 하면서 자위하는 꼴을 보면 개패고 싶은데 노무사의 품위가 있어서 참는다.)


3. 제조업에서의 커리어 시작

제조업에서 내가 맡은 업무는 노사관계 업무였다. 내가 노무사 수습을 받을 때 노사관계 업무가 진입하기 어려운 업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노동조합을 상대해야 하는 업무 특성상 멘탈과 체력이 강한 사람을 선호하기 때문에 여자 노무사를 잘 안뽑는 경향이 있다.


여기서 연봉을 1억 넘게 처음 찍었다. 그런데 연봉에 비해서 하는 일은 별로 없다고 생각했다. 하는 일은 대충 이렇다. 아침에 출근하면 팀원들에게 인사하고 커피를 타먹으러 간다. 탕비실에서 다른 팀 부장들을 만나서 인사를 나눈다. 어디어디 부동산이 올랐네, 윗층 엔지니어 한명이 비트코인으로 돈 벌어서 퇴사했네 등등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면 어느새 시업시간이 된다. 자리에 앉아서 뉴스를 본다. 매일 회사에서 주요 뉴스를 뽑아서 아침마다 인트라넷에 올리는데, 대충 쓰윽 읽어보고 넘어간다. 그리고 네이버에서 노무 이슈가 있는지 뉴스를 찾아본다. (대부분 뉴스가 별로 없다.)


그리고 우리 회사와 관련되어 있는 뉴스나 판례가 있으면 구성원들에게 공유한다. (이걸 왜 노무사자격증을 가진 사람한테 시켰는지는 모르겠지만 워낙 할일이 없다보니 그거라도 안하면 눈치보여서 내가 한다고 했다.)

오전 회의를 시작한다. 이번주에 무슨일을 할건지, 저번주에 하기로 한 일의 진척사항은 어떤지 공유한다. (나는 이 과정이 매우 무쓸모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오전내내 이딴 회의를 하는데, 별다른 특이 이슈가 있는 것도 아니고 팀원들이 하는 일이 거의 대동소이 하기 때문이다. 차라리 특별한 이슈가 있을 때 팀 안에서 팀을 만들어서 그 작은 팀의 진행상황만 보고 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회의가 끝나면 점심시간이다. 진짜 현타가 올정도로 회의때 뭐가 없다. 서로 조잘조잘 이야기하고 으쌰으쌰 잘해보자 이정도다. 점심밥을 먹는다. 맛이다. 대기업이기 때문에 역시 급식업체도 대기업이고 식단가도 거의 만원이다. 샌드위치를 먹을수도 있고 한식을 먹을수도 양식을 먹을수도 있다. 나는 겁나 맛있게 먹고 있는데, 나보다 한참 전에 들어온 선배들은 맛이 없다고 한다. 왜지?


그래서 가끔은 차를 타고 공장 밖에 있는 중화요리집을 간다. (나는 점심을 차를 타고 멀리가서 먹고 오는걸 정말 귀찮아 한다. 억지로 갔다.) 그리고 담배 피울 사람은 담배 피우로 또 차를 타고 어디론가 간다. (공장은 몇키로 이내에서 흡연을 해서는 안된다는 내규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흡연자들은 삼삼오오 흡연파티를 결성하고 제일 짬이 없는 흡연자가 운전하는 차에 몸을 싣고 공장 저 너머로 가서 담배를 폈다.)


오후 근무시간이 메인이다. 나의 경우 노동조합 사무실을 방문해서 위원장 잘 있는지 살펴보고 인사하고 시시콜콜 이야기좀 하면서 놀다가 사무실로 복귀한다. 이게 일과의 끝이다. 물론 단체교섭이나 임금교섭 시즌에는 여기에 더해서 교섭을 한다. 교섭에 대한 이야기는 추후에 별도로 다루겠다.


또한 나의 경우는 노무사여서 소수노동조합과의 교섭도 맡아서 했기 때문에 서울 본사 출장이 매우 잦았다. (나는 이것도 너무 피곤했다. 유류비와 숙소비를 모두 빵빵하게 지원해준다고는하지만 길에서 버리는 시간이 너무 아까고 피곤했다.)


내가 제조업에서 퇴사하게 된 썰은 다음에 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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