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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민 Nov 06. 2023

물고기와 유가사탕, 그리고 휠체어와 지팡이

장애에 관한 단상






우리 할머니는 하얀 얼굴에 격투기 경기를 보는 걸 좋아하시고, 물고기를 백 마리도 넘게 키우셨다. 또, 일주일에 한 번 씩은 꼭 매운 라면 스프를 넣은 짜파게티를 드셨다. 우리 할아버지는 소금 맛 나는 사탕을 드시며 골프 경기를 보는 걸 좋아하셨다. 오전에는 모자를 멋들어지게 쓰고 집 근처 커피숍에서 시럽 넣은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길 줄 아는 분이시기도 하다.

그리고, 나는 우리 할머니가 일어서 계신 것을 본 적이 없다. 우리 할아버지가 명료한 발음으로 말하시는 것을 본 적도 없다. 지금 나는 우리 할머니는 정도가 심한 지체장애 (구 지체장애 1급), 우리 할아버지는 정도가 심하지 않은 뇌병변 장애 (구 뇌병변장애 5급)를 가진 분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아홉 살 즈음의 나에게 할머니의 휠체어와 할아버지의 지팡이는 짜파게티나 뉴스보이 캡, 딱 그 정도였던 것 같다. 우리 집에서 나에게 할머니가 걷지 않으시는 건, 할아버지의 말이 느리고 어눌한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내가 아이클레이로 서툴게 만든 장미꽃을 물고기 수조 앞 선반 위에 올려 두고 계속 계속 보셨고, 할아버지는 나를 볼 때마다 내 이름을 부르시곤 유가 사탕을 서너 개 쥐어 주셨다. 그분들을 사랑하고 알기엔 그걸로 충분했다. 

 나이를 두어 살 더 먹고 나서 “장애"라는 개념을 알게 되고도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와 그 개념을 잘 연결짓지는 못했다. 장애인은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신체적․ 후천적 능력이 불완전함으로 인하여 일상의 개인적 또는 사회적 생활에서 필요한 것을 자기 자신으로서는 완전히 또는 부분적으로 확보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데, ‘우리 집' 이라는 작은 세상 속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하실 수 없는 건 내가 기억하기로는 없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아니, 굳이 그런 ‘고급' 정의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그때의 내가 알았던 영화나 드라마, 책들은 장애인을 불행하고 불쌍하게 그려냈는데, 우리 할머니는, 우리 할아버지는 그다지 불행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린 나에게 ‘장애인' 하면 가장 강렬하게 각인되어 있던 장면은 초등학교 때 읽었던 필독도서 속에 나오는 부분이었는데, 주인공의 장애인 친구가 자기 다리는 왜 병신이냐며 울분을 토하는 장면이었다. 책이든 영화든 드라마든, 장애인이 등장하는 모든 매체에서 장애는 한 사람의 정체성의 모든 것이었고, 그 사람에게서 장애를 빼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처럼 그려졌다. 아마도 그래서 나는 안방에서 근육질의 남자들이 링 위에서 서로를 메다꽂는 격투기 경기를 즐겁게 보시며 당신은 평화롭게 물고기 밥을 주시는 아이러니한 여가 시간을 보내시는 할머니를, 눈은 골프 경기에 고정한 채로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내 가며 손이 끈적해지도록 투명한 소금 사탕을 맛있게 드시는 할아버지를 “장애"라는 단어에 연결짓지 못했던 것 같다. 할머니가 걷지 못하심은, 할아버지의 행동이 느리심은 그분들의 평화로운 주말 오후를 방해하지 못했다.

 다시 돌이켜 보면 우리 할머니 댁 곳곳에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위한 구조물들이 녹아 있었다. 그 이유 때문에 그분들이 ‘불완전하다' 혹은 ‘자신이 필요한 것을 충족할 수 없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던 것 같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벽을 쭉 따라서 손잡이가 설치되어 있어 할아버지가 잡고 걸으실 수 있었다. 현관문 앞 작은 탁자 옆에는 할아버지의 모자 옆에 네 발 달린 지팡이가 항상 있었고, 창고방에는 짜파게티 상자와 함께 할머니의 휠체어와 욕창 방지 방석이 있었다. 할머니가 주로 계시는 안방에는 모든 것이 할머니가 앉아서, 혹은 엎드리거나 누워서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집이라는 작은 세계 속에는, 적어도 어린 나의 눈으로 보기에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하실 수 없는 것은 없었다. 할아버지는 산책을 나가고 싶으실 때면 손잡이를 잡고 지팡이를 짚고 언제든 나갈 수 있으셨다. 할머니는 앉은 자리에서 손만 뻗으시면 믹스 커피를 타 드실 수도, 원하는 옷을 골라 입으실 수도 있으셨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윤택한 삶을 누릴 수 있게 하기 위해 설치되었던 구조물들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만의 것이 아니었다. 할머니 댁에 하나둘씩 늘어 가던 보조기구 하나하나에는 나름대로 나만의 추억이 담겨 있다. 욕조 옆 어드메에 붙어 있던 작은 손잡이는 개운하게 목욕을 끝낸 내가 균형을 잃고 미끄러져 넘어질 때 나를 딱딱한 욕조 바닥으로부터 구해 주기도, 고개를 숙여 머리를 감을 때에 샴푸를 올려 둘 곳을 마련해 주기도 했다. 나에게 할머니 댁의 보조 기구들은 장애를 가진 할머니 할아버지를 돕기 위해 존재하는 이질적인 무언가가 아니라 집의 일부이자 집 그 자체였다. 지팡이와 휠체어가 없다면, 집 곳곳의 손잡이와 의료기구들이 없다면 할머니 댁이 내가 아는 그 집이 아니게 될 것처럼, 내 할머니 댁의 기억 속에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모습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손잡이와 바퀴들이 뚜렷하게 각인되어 있다. 어떤 사람이 장애인인지, 아닌지의 여부는 그 사람 자체를 보고 판단하는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그 사람이 할 수 없는 것, 그리고 할 수 있는 것으로 결정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정의를 따르면 적어도 집이라는 작은 사회 속에서 우리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장애인이 아니셨던 셈이다. 

 아주 어렸을 때에는 장애가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보고 듣고 배워 온 것에 따르면 장애는 아주 슬픈 것이고, 불행한 일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꼭 사라져야만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즈음 어느 날에 “내가 생각하는 유토피아"라는 주제로 썼던 일기를 들춰 보니 어린 나는 그 누구도 안경을 쓰지 않고 휠체어를 타지도 않는 세상이 유토피아라고 써 두었다. 지금도 나는 장애가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그 방법은 다르다. 초등학생인 나는 모든 장애인의 장애가 ‘치료'된다면 이 세상에서 장애가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의 나는 ‘장애'의 사전적 의미인 ‘어떤 사물의 진행을 가로막아 거치적거리게 하거나 충분한 기능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사라지길 바란다. 나는 휠체어를 타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지하철 시위가 일어나지 않는 세상이 아니라, 모두가 지하철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없기 때문에 지하철 시위가 일어날 필요가 없는 세상을 원한다. 나는 모두가 자신의 신체 혹은 정신의 상태에 관계 없이 하고자 하는 것을, 바라고자 하는 것을, 꿈꾸고자 하는 것을 제약 없이 누릴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싶다. 그리고, 나는 이런 세상이 결코 불가능하지 않다고 믿는다. 적어도 우리 집이라는 작은 사회 속에서는 “장애 없는 세상"을 이미 만들어낸 바 있기 때문이다. 발길 닿는 모든 곳에 보행을 돕는 손잡이가 있는, 손길 닿는 곳에 필요한 모든 것이 있는 세상 말이다.

 그래서 나는 할머니 댁을 기억해야만 한다. 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걷지 못하시더라도, 말이 느리시고 조금 절뚝이며 걸으시더라도 집 안에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던 그 세상을 기억해야 한다. “할머니" 하면 휠체어보다 물고기 수조의 물비린내, 레슬링의 짜릿함과 짜파게티의 짭조름한 맛이, “할아버지” 하면 지팡이보다 나직한 골프 프로그램의 나레이션과 혀끝을 맴도는 유가 사탕의 맛이 먼저 떠오르는 그 감각을 기억해야만 한다. 세상 전부가 할머니 댁이 된다면, 발길 닿는 모든 곳에 보행을 돕는 손잡이가 있는, 앉은 높이의 손길이 닿는 곳에 필요한 모든 것이 있는 세상이 정말로 온다면, 장애는 짜파게티를 좋아하는 식성이나 골프 프로그램을 즐겨 보는 습관 정도가 되지 않을까 하고 바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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