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urStellar Dec 06. 2023

멈추었다. 바람이 지나갔다.

해변을 걷다 아름다움에 빠지다

더 걸을 수가 없었다. 멈춰야지 하는 생각보다 먼저 발걸음이 멈추었다. 조용해진 사위가 내 숨소리를 키웠다가 가라앉혔다.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 끝에, 눈앞 저 끝에 파란 바다가 하염없이 펼쳐져 있다. 더 늘어놓은 곳이 없는 바다는 수평선으로 재봉질로 마감한 듯 반듯하게 끝을 접어 말았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부드러운 선을 하늘 아래 그었다. 파랑과 파랑이 맞닿아 하나인 듯하지만 배려하듯 서로를 구분하고 있다. 넓은 파란 마당에 재잘거리듯 물결이 찰랑이고, 유쾌한 리듬에 맞춘 태양 빛 금색 가루가 찬란하게 물 위에 빛나고 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내려와 나를 포집한다. 빅뱅이 시작된 우주의 시원이라도 보여 줄 듯 하늘은 제 속을 텅 비웠다. 무엇이 있는 것인지, 무엇이 없는 것인지 고개를 들고 아무리 봐도 속을 알 수 없다. 어디가 시작인지 어디가 끝인지. 시작이 끝인지, 끝이 시작인지. 끝이나 있기는 한지. 무한한 파란 텅 빔. 그것 한가운데 나는 점을 찍고 있다.

하늘과 바다는 수평선에서 만났다. 떠나려는 하늘을 바다는 수평선으로 매듭지어 서로 이어 놓았다. 이제 하늘도 마음대로 떠날 수 없다는 것을 제 숙명으로 알 것이다. 바다를 내 버리고 홀연히 사라지는 무지개처럼 멀리 우주의 끝으로 달아나지는 못할 것이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왔다. 모든 것이 정지된 정물 같은 공간에서 해안가 늙은 소나무 가지가 흔들렸다. 파도 소리가 들린다. 사람들이 움직이다. 해변도로를 산책하는 사람들, 모래 위 모이를 찾는 비둘기들, 파도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노인들, 쉴 새 없이 눈부심을 만들어 내는 파도에 비친 빛 조각들.


움직여야 할 것 같은데 발이 말을 듣질 않는다. 바다와 하늘이 만든 파란색 정물화 한가운데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한번 벗어나면 영원히 사라질 것 같아 나오길 체념하고 그냥 있자고 결심한다.


다시 수평선을 본다. 배들이 지나간다. 가는 것인지 떠 있는 것인지 궁금해 한참 본다. 배는 아주 조금씩 아주 조금씩 가고 있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저 배에 실려 어디론가 가고 싶다. 알 수 없는 곳으로, 나를 모르는 미지의 공간으로 가고 싶다. 어릴 적 내가 가고 싶은 수평선 너머로.

하지만 나는 지금 움직일 수 없다. 한 발짝을 떼는 순간 유리로 된 그림은 부서질 것이다. 찰랑이는 바다는 파편으로 부서질 것이고, 파아란 하늘 빈 공간은 얕은 개울물 얼음처럼 쩍 하고 금이 갈 것이다. 그래서 나는 움직일 수 없다. 

여기에서 바다를 보리라. 하늘을 볼 것이다. 누군가가 그린 그림 속 무미한 정물이 될 것이다.


움이지 않아도 바람은 분다. 내가 움직일 필요는 없다. 그저 서서 바라보고 있어도 나는 움직인다.





매거진의 이전글 다 큰 딸 같이 놀아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