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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urStellar Apr 10. 2024

날씨에 대한 부채감

- 나에게 날씨란?

지난해 “나에게 맞는 IT 직업 찾기”라는 책을 처음으로 발간한 후, 올해도 최소 한 권은 집필하기로 계획했다. 생각해 둔 글감도 있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시작할 수 있으리라. 무얼 쓸지 이리저리 고민해야 할 일이 적어, 큰 어려움 없이 계획대로 진행될 것이다.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처럼 시작만 한다면 금년이든 아니든, 적어도 완성은 되겠지 생각했다. 의자에 엉덩이를 딱 붙이고 책상 앞에 앉는다면 반정도는 한 셈이다.


해가 바뀌고 벌써 4월이 되었는데도, 아직 새 책은 시작도 못했다. ‘책상 앞에 앉기만 한다면 언제든지 시작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리저리 미루다 보니 3개월이 후딱 지나갔다. 해가 바뀌었을 때 바로 시작해야 했는데, 둘째 유학을 앞둔 때라, 둘째가 가고 난 후 시작하자 마음먹었다. 1월이 훌쩍 지났다. 둘째가 떠난 뒤에도 하루이틀 날을 보내다 보니, 곧 셋째 대학 입학 일이 다가왔다. 처음 집 떠나는 막내가 괜히 안쓰러워, 입학 전까지 최대한 같이 지내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책 쓰는 일은 셋째 대학 입학 이후로 미뤄졌다. 셋째가 떠나면 셋째 방을 쓸 수 있어 굳이 도서관에 가지 않아도 되니, 조금 늦어도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3월이 오기 전 셋째가 간단한 짐을 챙겨 기숙사로 옮겼다. 어영부영 3월이 지나고 4월이 되었다. 그런데도 나는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고 책상 앞에 앉지 못했다.


더 댈 핑계도 없다. 이제 책상 앞에 자리를 잡아야 할 때다. 게을러진 자신을 나무라면서 꾸역꾸역 앉았다. 책상머리가 어색해서 창 밖을 바라보았다. 밝은 햇살이 방으로 들어왔다. 매일 내리는 비는 3월이 지나면서 서서히 잦아들었고, 화창한 날이 늘었다. 상큼한 봄바람이 열어 놓은 베란다 창 틈으로 불어왔다. 맞은편 앞 동 정원에는 언제 피었는지 어른 손가락을 오므린 것처럼 백목련이 피었다. 회색 앙상한 가지마다 만들어 붙인 듯한 하얀 꽃잎이 아직 쌀랑한 봄바람에 살랑거렸다. 흔들리는 가지를 멍하니 보았다. 채도 높은 봄 날씨를 보니, 얼마 전에 산 자전거가 떠 올랐다. 두 달 전, 큰 맘먹고 차 대신 자전거로 도서관에 가려고 샀다. 그동안 날씨가 궂어 제대로 타 볼 기회가 없었다.


의자를 밀고 일어났다. 햇살은 좋지만 바람이 많아 적당한 옷을 입고 나섰다. 이렇게 좋은 날 의자에 엉덩이 붙이고 있을 수 없다. 글을 시작해야 하는데, 해가 바뀌고 벌써 몇 달이 훌쩍 지나갔다. 이러면 안 되는데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하루 늦는다고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바람이 좀 세기는 하지만, 어렵게 찾아온 봄날을 놓치기 싫었다. 오늘은 자전거를 타고 밖으로 나가는 게 더 현명한 처사이리라. 복도 한편에 둔 자전거를 몰고 밖으로 나왔다. 페달을 힘차게 밟으니 자전거가 앞으로 쑥 나갔다. 쌀쌀한 바람이 나아가는 속도에 부딪혀 옷 속을 파고들어 몸이 오싹했다. 그래도 햇살이 있어 등이 따습다. 맑은 햇살 속 자전거는 속도를 냈다. 이런 봄날, 그저 책상 앞에 앉아 있기란 얼마나 힘든 일인가.



한 때 해외 이민이 유행했었다.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는 직원의 퇴직 사유가 이민인 경우가 꽤 있었다. 이민은 아니더라도 같이 일하는 사무실에 기러기 아빠 한 두 명 정도는 있었다. 교육환경이 좋고 경쟁이 덜 심한 사회로 탈출을 부러워하는 시절이었다. 누구나 관심 갖는 이민, 나도 궁금했다. 나처럼 IT에서 일하는 직군이 가기 유리한 곳이 캐나다였다. 아내에게 말도 하지 앉고 혼자 틈틈이 자료를 검토했다. 호기심으로 시작했지만 마음만 먹으면 캐나다에서 사는 일이 불가능하지는 않아 보였다. 이민이 과연 좀 더 나은 미래를 보장하는 비상구가 될 수 있는지를 한동안 깊이 고민했었다.


캐나다를 여행한 적이 있었다. 토론토의 겨울 추위와 어둑어둑한 분위기가 먼저 생각났다. 도심을 벗어나면 광활한 허허벌판에는 눈바람만 날렸다. 차가 없다면 밖으로 나갈 수 없는 매서운 추위를 그때 처음 경험했다. 토론토는 캐나다에서 남쪽 지방인데도 봄과 여름이 일 년 중 몇 개월밖에 안 된다고 현지인에게서 들었을 때 자외선 가득한 한국의 여름이 생각났다. 캐나다 사회가 복지가 더 좋고 안정적인지는 몰라도 그러한 날씨에 남은 평생을 보낸다고 생각하니 끔찍했다. 캐나다는 내가 생각하는 밝은 날이 많은 곳이 아니었다. 내 검은 눈동자 속으로 반짝이는 햇살이 들어와 눈이 부시고, 가을볕이 내리쬐는 맑은 가을 하늘을 올려다보는 날씨가 부족한 캐나다는 내게 너무 어려운 곳이었다. 그 후 나는 캐나다 이민을 내 머릿속에서 지웠다.


움직이기 좋은 기온과 날씨는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인생에 하루하루가 중요하듯, 좋은 날씨 또한 소중하다. 나는 날씨에 집착하는 편이다. 좋은 날을 그냥 흘려보내고 싶지 않다. 봄이 찾아와 세상은 온통 꽃 천지이고, 봄바람이 불어 꽃 비가 우두둑 내리는 어느 하루, 그런 하루를 날씨와 더불어 온전히 보내고 싶다. 하지만 생업은 나를 사무실에 가두었다. 새벽에 집을 나와 빌딩 속으로 들어가고,  사각 공간에서 하루가 끝났다. 좋은 날에 맞는 좋은 하루를 보내고 싶지만 그러지 못했다. 일하는 평일에 찾아온 가슴 떨리게 좋은 날씨는 비극적인 날이기도 하다.


직장 시절도 그러했지만 학생 때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대학교 때 중간시험은 꼭 4월이나 10월이었다. 짧은 봄과 가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버린다. 한 달 정도 시험에 매달리다 보면 어느새 봄과 가을은 지나버렸다. 도서관에서 책과 시름하느라 아름다운 계절이 그냥 지나갔을 때의 아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몸은 도서관 의자에 있었지만, 마음은 속절없이 지나가는 계절이 내뿜는 풍경에 가 있었다. 화창한 날, 마지막 시험을 앞두고 책을 덮고 밖으로 나갔다. 지금 아니면 영원히 사라지는 그날의 기온과 햇살과 나무와 공기를 마셨다. 그리고 그때 나는 알게 되었다. 나는 결코 고시 같은 오랜 수험생활을 결코 하지 못할 사람이라는 것을.


‘오늘 날씨 좋다.’ 만나는 사람마다 날씨 좋다는 말을 하는 날이 우리 평생에 며칠이나 될까? 사람이 가장 쾌적하게 느끼는 온도인 계절은 봄과 가을이라고 보면 일 년 중 5,6개월 남짓이다. 그중 비 안 오고 흐리지 않은 쾌청한 날은 얼마나 될까? 일부러 기상대 자료를 들춰 보지는 않았지만 그다지 많지 않을 것 같다. 좋은 날이라고 해도 다 날씨를 즐길 수는 없다. 직장인이라면 평일 사무실 책상에 붙들려 있어야 하고, 학생이면 교실에, 택시 운전사는 자동차에 붙들려 있어야 한다. 주말이나 공휴일이 아니면 평일 좋은 날은 그림의 떡일 뿐이다. 주말에 운 좋게 날씨가 좋아야 산이라도 오르고 아이들 데리고 공원이라도 갈 수 있다. 귀하고 귀한 모처럼 맞는 화창한 공휴일, 누구 결혼식이랍시고 행사라도 있으면 쉬는 날도 내 날이 아니다. 또 최근에는 중국서 날아온 미세먼지나 황사까지 가세해 그나마 얼마 안 되는 좋은 날을 더 속아낸다. 100세 평생을 산다 해도 우리가 온전히 날씨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날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좋은 날씨를 헛되이 흘려보내지 말자는 내 생각은 과학 지식을 갖게 되면서 더 깊어졌다. 칼 세이건 ‘코스모스’를 읽은 후 나는 내가 사는 곳을 조금 알게 되었다. 천재 과학자는 주변에만 고착된 내 시야를 지구 밖으로, 나아가 태양계로, 더 나아가 은하계로 넓혀 주었다. 시야는 상상 속에 거대하게 자리 잡았다. 내 상상력의 한계를 넘는 우주, 은하계. 셀 수없이 많은 은하계 중 하나에 우리 은하계가 있고, 우리 은하계 속에 한쪽에 태양계가 자리하고, 태양계에서 하나의 행성, 지구. 지구에서 우리는 태어나 살아가고 죽는다. 이 무한대의 우주라는 공간에 인간 같은 생물이 사는 유일한 행성(현재까지는 다른 생물이 발견되지 않았기에), 지구. 우리는 지구라는 행성에 운 좋게 태어났다. 지구는 가스로 형성된 행성이 아니라 흙과 바위로 되어있어 단단한 땅을 디딜 수 있고, 산소와 물이 있어 숨을 쉴 수 있다. 해왕성 같이 태양과 너무 떨어져 얼음으로 덮이지도 않고, 또 수성같이 너무 가까워 불구덩이 행성도 아닌, 딱 생명이 살 수 있는 적정한 거리에 있다. 지구에서 생물은 억겁 동안 시간 속에서 진화를 통해 여기에 이르렀다. 어느 면을 봐도 우리가 여기 존재한다는 사실은 수백수천 가지 행운에다 또 수백수천 가지의 행운이 겹친 결과일 수밖에 없다.


운 좋게 이 행성에서 태어나 살아가면서 행성이 주는 좋은 날이라는 귀한 선물. 나는 선물을 거역하기 힘들다. 우주가 나에게 준 선물을 바쁘다는 이유로 모른 척하고 지나갈 때 너무 미안하다. 지구에게, 태양계에게, 우리 은하에게. 그리고 우주에게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저지른 기분이다. 좋은 날 일하다가, 공부하다가 그냥 하루가 흘러갈 때 나를 둘러싼 온갖 것에 미안하다. 소중한 것을 모르는 무식함, 감사할 줄도 모르는 오만함을 드러내는 것 같다.


온 산과 길에 벚꽃이 지천이다. 봄바람이 불어 하염없이 떨어지는 꽃잎으로 길바닥이 분홍색이다. 가지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햇살로 꽃잎이 반짝인다. 화단 돌 틈에는 철쭉이 새빨간 립스틱 색깔로 물들었다. 이 좋은 날을 그냥 과거로 흘려보내기는 아깝다. 좋은 날은 흐르는 시간에 나를 맡겨야 한다. 햇살 속에서 지금을 걸어야 한다. 바람과 함께 자전거를 타도 좋다. 걸으면서 작은 꽃을 본다. 자전거를 타면서 싱그러운 봄바람을 내 안에 맞이한다.



아무래도 당분간 집필 시작은 어렵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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