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프라도 미술관에서 # 일상대여2
12번째 주인공
스페인이다. 열몇 시간을 비행기로 날아 마드리드에 왔다. '태양의 나라' 스페인 마드리드의 하늘은 그림처럼 선명하다. 정열적인 하늘을 보며 수채화 같은 여행을 이어간다. 콜럼버스의 흰 돛 단 배처럼 미지의 세계를 드래그하며 프라도 미술관에서 그 정점을 찍는다.
프라도 미술관은 1년에 300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관람할 정도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술관이다. 처음 자연사 박물관으로 지어졌다가 후에 궁정 미술관으로 왕의 초상화나 소장품들을 전시했다. 전쟁 시에는 나폴레옹의 숙소로 사용되기도 하였는데 지금은 스페인의 대표적인 미술관으로 세계 5대 미술관에 속한다. 르네상스 시대, 바로크 시대, 낭만주의 작품들이 8,000여 점이나 전시되어 있으며 지하 1층에는 스페인 왕실의 유물도 전시되어 있다. 피카소는 여러 번 프라도 미술관을 찾아 예술적인 영감을 얻기도 하였는데 그만큼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루벤스, 라파엘, 고야, 보쉬, 벨라스케스의 작품을 보려면 프라도 미술관을 찾으면 좋다.
프라도 미술관 입구에는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동상이 있다. '시녀들'을 그린 스페인 거장의 동상이다. 조선 후기 '김홍도'가 있다면 17세기 스페인에는 '디에고 벨라스케스'라는 화가가 있다. 그는 24살에 궁정 화가가 되었는데 왕의 초상화를 하루 만에 그려 펠리페 4세로부터 신임을 얻었다. 사진이 없었던 시절 그림은 역사의 기록이자 보존이다. 우리는 그가 그린 초상화를 통해 펠리페 4세의 주걱턱을 알아보고 마르가리타 공주의 커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 왕 또한 그것을 알기에 그림을 보존하고 지켜왔을 것이다. 예술을 사랑하는 스페인의 정열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아침 일찍부터 줄을 섰으나 입구에는 이미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꼬리에 붙어 줄을 서자 어디선가 애잔한 기타 선율이 들린다. 미술관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이려니 싶었는데 얼굴을 쏙 빼고 보니 벤치에 앉아 연주하는 집시가 보인다. 이국적인 그의 모습에 지루함을 잊고 한참 동안 눈과 귀를 빼앗겼다. 일행 중의 한 명이 한국적인 노래를 청하고 싶다고 했다. 나 역시 '바람의 노래'를 청해 연주를 들어보고 싶었는데 선 듯 악보가 떠오르지 않는다. 어느새 미술관에 들어갈 차례가 되어 아쉬움을 뒤로한 채 안으로 들어섰다.
루벤스의 '삼등신'을지나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마주한다. 사진이나 책에서만 보았던 원작을 직접 대하니 가슴이 두근거린다. 11명의 인물이 저마다 포즈를 취하며 그림 속에서 바라본다. 그림 속에는 화가인 벨라스케스 자신도 있고 마르가리타 공주도 있다. 공주를 둘러싸고 시녀들과 난쟁이가 놀란 표정을 짓고 있으며 거울 속에 왕과 왕비가 비친다. 모두가 주인공이기도 하고 모두가 주인공이 아니기도 하다. 도슨트들은 의도적으로 원근법을 깬 작품이라며 후세에서는 저마다 해석을 달리한다고 한다. 마르가리타 공주가 행복하게 노는 순간을 포착해 펠리페 4세를 위해 그린 그림이라는 것과 왕과 왕비의 초상화를 그리는데 공주가 뛰어들어 시녀들이 놀라는 장면일 것이라는 것 등 해석이 분분하다. 캔버스를 든 벨라스케스 자신을 그림 속에 등장시켜 왕의 신임을 드러낸 작품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지금도 다양하게 해석되어 보는 이로 하여금 저마다 작품을 해석해보는 재미가 있다고 한다. 그림 앞에 서면 관람객이 그림 속으로 초대받는 느낌을 준다는데 나 역시 그림 앞에서 그림 속으로 초대되어 본다. 벨라스케스가 그린 12번째 주인공이 되어 난쟁이처럼, 시녀처럼, 공주처럼 벨라스케스처럼 주인공이 되어 본다.
우리의 삶도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공주처럼 살다가 난쟁이처럼 헤매다가 벨라스케스처럼 자화상을 그리게 될지도 모른다. 주인공이 되려고 애를 쓰다가 주인공이 아무런 의미 없음을 알게 된다면 거울 속에 비치는 왕과 왕비처럼 어느 곳에서나 아무 곳에서나 자신을 투영하게 된다. 나 역시 시녀가 되기도 하고 난쟁이가 되기도 하는 삶에 순응하는 법을 배우러 이 먼 타국까지 날아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제 프란시스코 고야의 '옷 입은 마하', '옷 벗은 마하'의 작품 앞에 선다. 같은 여인이 옷을 벗고, 옷을 입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옷 벗은 마하'는 세계 최초의 여성 누드로 신이 아닌 인간을 그린 작품이다. 인간을 그린 누드는 당시의 가톨릭 교리에 위배 되어 고야는 신성 모독죄로 종교재판에 회부 되기까지 하였다. 그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고야는 틀을 깨는 시도를 한 것이다. 예술은 인간의 삶처럼 틀을 깨는 시도가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풍성한 여성의 미를 그린 마하는 유명한 알바 가문 공작부인의 누드화라는 소문이 있어 실지로 150년이나 지나 공작부인의 무덤을 피해 치기도 했다고 한다. ‘옷 입은 마하'와 '옷 벗은 마하'가 세계 곳곳에 대여해 주어 동시에 두 작품이 프라도 미술관에 걸려 있는 날이 극히 드문 일인데 나는 두 작품을 함께 감상하며 번갈아 비교해 보는 행운을 얻었다.
고야의 또 다른 작품 ‘자식을 잡아먹는 크로노스’를 보는데 섬뜩하리만큼 어둡고 기괴하다. 드라마 ’재벌 집 막내아들‘ 에서도 잠깐 소개된 적이 있는데 고야가 지난날을 반성하며 자신에게 벌을 주고 싶은 마음으로 그린 작품이라는 이야기가 팽배한다. 고야는 훗날 어두운 작품을 많이 그렸는데 아마도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회한의 그림을 그린 듯하다. 자식을 잡아먹는 그림이라. 고야의 작품 앞에서 선 나는 나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인간의 삶이란 시대와 역사를 초월해 영원히 이어지는 것일 테다. 프라도 미술관에서 나름의 의미를 부여해 본다.
그림을 감상한 후 우리는 1층에 모이기로 했다. 우리 중의 한 명이 길을 잃었다고 연락을 해왔다. 우리는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앞에서 만나자고 하면서 일행을 데리러 갔다. 미술관이긴 하지만 기나긴 역사의 터널 안에서 누구인들 길을 잃지 않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