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른 노을 Mar 03. 2024

푸른 노을

일상대여2


                                                                           



                푸른 노을 


  설을 쇤 지 며칠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정월 대보름이다. 정월 대보름이 되면 내가 자란 시골에서는 달집 태우기를 한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청솔가지를 꺾어 달집을 지었다. 마을 어른들과 함께 공터에 달집을 지었는데 보름날 저녁이 되면 그 달집을 태웠다. 막 지은 달집을 몽땅 태우는 것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하기도 하였는데 마을의 액운을 없애주고 풍년을 기원하는 풍속임을 알고는 그날만 기다렸다. 그해의 달집크기가 크면 클수록 내 기분도 덩달아 좋아졌다. 어른 한 두 명이 드나들 수 있는 달집이 완성되면 나는 몰래 달집 속에 숨어 들어갔다. 달집은 소나무가지에서 흘러나오는 향기로 안을 그득 채웠다.



  그렇게 지어진 달집은 보름날 초저녁이 되면 푸른 연기를 내며 불을 뿜었다. 시뻘겋게 불길이 타오르면 마을 어른들은 두 손을 모으거나 고개를 숙였다. 저마다 소원을 빌며 그해의 풍년을 약속받았다. 엄숙하고도 환한 불길을 보면 나 역시 묘한 감정이 일었다. 불길 속을 막 헤집고 나온 것처럼 내 마음도 뜨겁게 달아올랐다. 큰 불이 피어오를 때쯤에는 하늘에 둥근달이 떴다. 땅의 불을 이어받기라도 한 듯 둥근달은 휘영청 마을을 비추었다.


  하늘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마 그즈음이었을 것이다. 달과 별 그리고 태양이 번갈아가며 하늘에 나타나는 현상은 풀지 못하는 수수께끼처럼 신기했다. 까만 하늘에 보석처럼 박혀 있는 별은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고 나는 눈을 깜빡이며 그 사이를 유영했다. 별과 별사이를 헤집고 다니는 우주선처럼 내 마음은 하늘 속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저녁노을은 하늘에서 그리는 그림 같았다. 지구가 만들어내는 시간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기도 한 노을은 일 년 내내 달집의 불꽃처럼 아름다웠다. 대기층에 의한 빛의 산란으로 태양의 붉은 파장이 끝까지 살아남은 것이 노을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화성의 푸른 노을 사진을 본 직후 더욱 실감하게 되었다. 학창 시절 노을이 생기는 이유를 배웠을 법도 한데 노을은 그저 붉은색이라고만 생각했다. 화성의 푸른 노을은 일본 작가가 쓴 소설 속 낮달처럼 신비롭게 느껴졌다. 푸른 노을은 화성의 얇은 대기 때문이다. 지구는 대기가 두꺼워 푸른빛이 짧게 산란해 지구의 보이는 하늘에 도달하지 못하는 반면 화성은 대기가 거의 없어 푸른빛이 바로 산란해 푸른 노을이 만들어진다. 화성의 푸른 노을은 화성의 붉은 흙과 더불어 한 번도 보지 못한 또 다른 지구밖 풍경이다. 그러한 이유로 화성의 테라포밍 역시 기대가 된다.



  테라포밍은 우주에 있는 행성을 지구화 시켜 인간이 거주할 수 있도록 만든다는 계획이다. 지구 주변에 있는 달이나 수성, 목성은 인간이 거주할 수 없을 정도로 척박하다. 달과 수성은 대기가 없어 직접적인 태양풍을 맞아 인간이 살아남을 수 없고, 금성 역시 뜨겁고 대기가 두꺼워 안을 들여다볼 수 없을 정도다. 그에 비해 화성은 지구와 가장 닮은 구석이 있다. 화성의 북극과 남극에는 빙하가 존재한 흔적이 있고 물도 존재한다. 지구와 같은 사계절의 변화가 있으며 밤과 낮을 만들어내는 자전축도 있다. 암석과 붉은 흙으로 되어 있으며 지구만큼 충분하지는 않으나 이산화 탄소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얇은 대기가 존재한다. 화성의 하늘에 대기가 흩어지지 않게 할 수만 있다면 인간이 살 수 있는 테라포밍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1965년이래 수차례의 화성탐사선들이 로보를 싣고 화성을 탐사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큐리어시티로보가 고개를 내밀어 화성의 노을 사진을 찍었다. 놀랍게도 붉은 노을이 아닌 푸른 노을이다. 해가 뜨는 모습과 해가 지는 모습의 푸른 노을은 신비롭기까지 하다. 지금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노을 사진이다. 인간이 우주를 개척해 얻은 신의 선물 같은 사진이다.



  나는 푸른 노을을 보며 또 하나의 꿈을 꾼다. 과학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변하는 것이다. 미래도 과학처럼 움직이는 것일 테다. 규칙을 알고 규칙을 변화시키고 정해진 것을 알고 정해진 것을 변화시키는 것이 과학이고 미래다. 우리의 꿈이다. 인류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나와 그들의 꿈, 우리의 꿈을 위해 화성의 푸른 노을을 그들의 책상 앞에 고정시키고 있다. 화성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도전한다. 인류최후의 순간을 대비하기 위해 무엇인가를 준비한다. 지구는 대기먼지가 쌓여 태양이 가려져 암흑천지가 될 수 있다. 코로나 같은 전염병으로 전멸할 수도 있다. 지나가는 소행성이 충돌해 반으로 쪼개질 수도 있을 것이며 인간스스로 만든 핵무기로 인해 파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구에 있는 물, 토양, 대기를 다른 행성에 피신시키므로 인류멸망은 피해 갈 수 있고 또 다른 지구를 계획할 수 있다. 이것이 화성의 테라포밍의 이유일 것이다.


  아직 인간의 발을 딛지 못한 화성 테라포밍은 곧 인간을 태운 우주선이 화성으로 갈 예정이라고 한다. 지금의 과학기술로 화성까지 가는 시간은 6개월 이상 이라고 한다. 우리 인간이 화성여행을 할 수 있어 화성의 푸른 노을을  감상할 수 있는 그날을 기대해 본다. 




   달집태우기를 보러 고향에 들렀다. 불이 난다는 이유로 사라졌던 달집 태우기가 소방차를 곁에 두고 다시 시작한다. 원뿔 모양의 달집 주변을 동네어르신들이 풍물놀이로 흥을 돋운다. 구름이 껴 달의 얼굴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왠지 기대가 된다. 나의 소원을 주문 외듯 달집에 걸어 본다. 무엇이든 이루어질 것만 같다.  






작가의 이전글 지리산 둘레길에서 헤맨 원시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