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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노을 Dec 26. 2023

지리산 둘레길에서 헤맨 원시인

지리산 둘레길 1코스에서 생긴 일 


2023년 12월 25일 한파가 조금 누그러지자 저는 옆지기와 함께 지리산 둘레길 탐방에 나섰습니다. 

때마침 크리스마스가 있는 연휴라 며칠 쉬고 나니 운동도 하고 여행도 하고 싶었지요. 

일요일 저녁 아무 생각 없이 지리산 둘레길을 가자고 했더니 남편이 흔쾌히 그러자고 합니다.

부랴 부랴 인터넷을 뒤져 정보를 살펴보니 지리산 둘레길은 5코스까지 있다고 하네요. 몇 개의 블로그 글을 읽으며 정보를 얻습니다. 그리고는 1코스부터 도전해 보기로 하였습니다. 겨울이라 날씨가 걱정되었지만 사람들이 많지 않아 오히려 좋을 것 같았지요.


다음날 아침 배낭에 귤, 초콜릿, 떡, 생수를 챙겼습니다. 장갑과 모자도 챙기며 완전 무장을 했습니다. 뜨거운 물도 받아 지리산 둘레길로 고고 했습니다.

차량 네비로 지리산 둘레길 1코스를 치니까 금방 주소가 나오더라고요. 대구에서 

2시간 30분 정도 걸려 도착했습니다. 중간에 휴게소도 한번 들러 커피도 한잔 했지요. 


차량네비가 마침내 이곳을 도착지점으로 안내합니다. 여기 이 간판 ~



불행의 시작은 이 간판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자세히 보면 간판에 화살표가 보이죠. 저는 이 화살표가 둘레길을 가리키는 줄 알았습니다.  때문에 이 간판이 세워진 바로 옆 도로가 둘레길인줄 알았고요. 길도 좁고 좀 엉성하긴 했지만 나는 이 표지판 옆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촌길이고 둘레길이니 다소 엉성하다 생각하면서요. 

맞은편에 안내센터가 있었는데 때마침 월요일이고 크리스마스라 문이 닫혀있었습니다. 화장실조차도 면사무소 화장실을 이용하라고 적혀있더군요. 화장실도 급하고 뭐 그래서 가다가 커피숍이라도 나오면 볼일을 봐야겠다 생각해 서둘러 길을 떠났습니다.  


 밭둑길이라 이상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둘레길이니 뭐 그렇겠지 하는 생각에 그 길을 따라 3시간가량을 걸었습니다. 물도 있고 다리도 있고 숯가마도  있었습니다. 가긴 가는데 표지판은 보이지 않고 자전거 도로 표지판 보여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적하니 눈도 오고 눈도 쌓여 있고 해서  기분이 좋았지요. 남편과 손을 잡고 걷다가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며 정처 없이 그렇게 걸었지요.  블로그에 보면 이정표가 있다는데 그런 것이 잘 안 보여 1코스는 사람들이 많이 안 찾아 그런가 보다 했습니다. 남편도 지리산은 저쪽 뒤쪽인데 이쪽이 맞느냐고 몇 번 물었습니다. 나는 원래 그런 길이야라며 큰소리치며 앞으로 전진했습니다. 

3 시간 넘게 걷다가 용담사가 나왔습니다. 점심도 먹고 시간도 많이 지난 터라 우리는 절 구경을 하고는 되돌아가기로 했습니다. 크리스마스날이라 역시나 절을 찾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용담사는 고려시대에 지어진 보물이었습니다.





용담사에 있는 미륵불 (미래의 부처) 에게 인사를 하고 우리는 왔던 길로 되돌아섰습니다. 돌아오던 길에 점심으로 칼국수를 먹은 식당을 다시 지나오게 되었습니다. 식당 주인은 점심 장사만 하는지 식당에 불을 꺼 놓고 밖에서 장작을 패고 있더군요. 주인은 우리가 이상하게 보였는지 등산 왔냐며 말을 걸어왔습니다. 남편은 "둘레길을 걷고 있는데 길이 별로 좋지는  않네요"라며 대답을 했지요. 그러자 주인은 둘레길은 여기가 아니고 저산 쪽이라며 저 위를 가리켰지요.



그 순간 정말 뜨악했습니다. 우리는 완전 반대방향으로 걸어왔던 것입니다. 남편도 나도 너무나 허탈했지요. 바보스럽기도 하였고요. 

두 시간 넘게 걷다가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또 걷다가 힘들어 커피 집에서 따뜻한 차를 마시며 몸을 녹였고 그러면서 시간은 4시간을 훨씬 넘긴 시각이었습니다. 휴대폰시계는 이미 4시를 넘기고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우리는 급하게 둘레길을 찾아 헤맸습니다. 뛰다시피 도착해 차를 몰며 둘레길을 찾아보려 했는데 이정표가 너무 작아서 길을 다시 놓쳤습니다. 이번에는 차를 세워놓고 처음부터 찬찬히 이 골목 저 골목을 걸어서 찾아보았지요. 그랬더니 이정표가 보이더군요. 마침내 길을 찾아 걷기 시작했어요. 이미 둘레길을 걷던 사람들은 마지막 지점까지 내려오고 있었지요. 우리는 뛰다시피 걸었습니다. 그렇게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걷다가 포토존을 찾았습니다. 




포토존 근처 외진 집 거주하는 아주머니도 대문을 걸어 잠그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되돌아왔지요. 고즈넉한 연못을 지나고 산수유나무를 지나서 그렇게 우리의 지리산 둘레길 1코스는 끝이 났습니다.



다시 주차장으로 오는데 

참 바보 같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다행이라 싶기도 하고

...

저는 그날 완전 원시인이었습니다.  현대판 원시인~

 이런 바보가 또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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