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속의 과도 (2)

(feat. 중학교 사춘기 시절의 나)

by Rachel

중학생이 되면서
나는 점점 집 밖의 일들을 혼자 감당해야 하는 아이가 되어갔다.


친구들과의 관계는 어딘가 어긋나 있었고,
어떤 날은 이유도 모른 채 표적이 되었다.

팔 상완에 주먹 자국처럼 퍼렇게 멍이 들었던 날,
그제야 이 일이 조금은 위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처음으로 엄마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엄마… 학교에서 친구들이랑 사이가 좀… 안 좋아. 어떻게 해야 해?”

엄마는 잠시도 생각하지 않았다.

“엄마 바쁘고 아프다. 너까지 짐 주지 마라.
엄만 네 나이 때 이런 거 다 알아서 했어.
넌 컸으니까 네가 해결해라.”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나는 앞으로 어떤 일이 생겨도
말하면 더 복잡해진다는 것만 확실히 배웠다.

도움이 아니라, 부담.
상담이 아니라, 꾸중.


그날 이후 나는 입을 다무는 데 조금 더 익숙해졌다.




중간고사가 끝난 뒤 친척들을 만나러 갔을 때, 팔에 남아 있던 멍이 드러났다.

“얘 왜 이렇게 멍이 들어 있어?”

언니들이 놀라서 엄마에게 얘기하자
엄마는 그제야 알았다는 듯 표정을 바꿨다.
하지만 집에 돌아온 뒤, 나에게 돌아온 말은-

“왜 이런 걸 말 안 해서 엄마를 곤란하게 만들어?”



말해도 혼나고, 말하지 않아도 혼났다.

그래서 점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아이가 되어갔다.

성적표가 나오는 날이면 집 안의 공기는 더 차갑게 식어갔다.

첫 학기 평균은 89점.
엄마는 만족한 얼굴을 하더니 곧바로 기준을 말했다.

“다음부터는 평균 90점이다. 80점대는 있는 걸로 치지도 않는다.”

칭찬을 기대해본 건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칭찬이 없냐는 질문에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너를 열심히 서포트하고 기른 엄마가 상을 받아야지.
너는 뭐 했다고 칭찬을 받니?”


그 말은 앞으로의 모든 성적표를 바라보는 방식을 바꿔놓았다.

2학기 기말고사에서 80점짜리 과목이 몇 개 나왔을 때,
나는 안방에서 성적표를 꺼내며 조용히 식은땀을 흘렸다.

점수를 보는 엄마의 표정이 변하는 순간, 내 심장도 함께 굳어갔다.

그때의 나는 과목 하나, 숫자 하나에 따라 내 위치가 정해지는 아이였다.

성적표는 시험 결과가 아니라 집 안에서의 나의 ‘역할’을 결정하는 종이였기 때문이다.



동생의 사춘기가 시작되자 엄마는 동생을 데리고 식당도 가고 카페도 가며
시간을 많이 보냈다.



나는 그 시간 동안 다음 시험 범위를 정리하거나 숙제를 했다.



가끔은 생각했다.
우리 가족 안에서 나는 언제부터 ‘성적을 관리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중3 말, 엄마는 허리 수술 때문에 일을 그만두었다.
엄마가 다시 집에 머무르게 되자 기이한 불안이 찾아왔다.

누구에게는 엄마가 오래 집에 있는 것이 반가운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게 그것은 집이 더 조용하지 않게 된다는 뜻이었다.

어떤 말이 돌아올지,
어떤 표정이 나를 향할지,
예측할 수 없는 시간이 다시 시작된다는 예감.


그 예감은 대부분 맞았다.



중학생 시절의 나는
말을 아끼는 법을 배웠고,
조용히 버티는 법을 익혔고,
혼자 감당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그리고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나는 조금씩, 아주 조용하게 무너지고 있었구나.

다른 사람에게는 사소해 보였을지도 모르는 일들이
내 안에서는 소리 없이 쌓여 어디에도 기댈 수 없는 벽이 되었다.

그 벽 앞에서 나는 점점 더 침묵 속으로 숨어 들어갔다.



이제 엄마가 있는 집은 나에게 안온한 구석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필사적으로 “공부해야 한다”는 이유를 만들어 학원을 떠돌았다.

학원에서 밤 1시까지 공부하고 오는 날이면 차라리 괜찮았다.

하지만 나를 기다린다며

늦은 밤까지 잠을 자지 않는 엄마를 보고 있노라면
숨이 막혔다.


엄마는 늦게까지 자식을 기다리는 엄마 역할에
특별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설명할 수 없는 부채감을 느꼈다.


나는—
집이 편안하지 않아서 그런 건데.
엄마가 편안하지 않아서,
집이 무서워서 필사적이었던 건데.


그런 나를 ‘자랑스럽다’고 말하는 엄마를 보며
사실을 알고 있는 나는 더 깊은 곳으로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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