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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집순이 Jan 17. 2024

실패 된장국을 통해 배운 것

실패를 대하는 태도도 부모를 통해 배운다

된장국을 너무 짜게 만들었다. 도저히 내어 놓을 수 없는 실패작이라 방치해 두었다. 밥을 먹던 딸이 된장국의 냄새를 맡고는 냄비에 있는 게 뭔지 물었다. 실패한 된장국이라고 하니 냄새는 좋다며 맛을 보고 싶다고 했다.


"어차피 맛없어서 못 먹을 걸?"이라는 말을 굳이 연발하며 한 그릇 떠줬다. 많이 짤텐데도 딸은 먹을만하다며 실패작을 성공작으로 바꿔 주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실패에 조금 더 머무르고 싶었는지, 딸의 칭찬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필사적으로 맛없다는 내 입장만 강력히 주장했다. 딸의 1차 노력이 무너졌다.


딸의 노력이 가상한 것도 못 알아보고 자꾸 실패에 대한 언급만 했다. 너무 그러니까 이번에는 딸이 해결책을 내놓았다. 물을 더 부으면 안 되겠냐고. 아차, 좋은 생각이다 싶었지만 귀찮아서 다음에 하겠다고 했다. 이번에도 실패를 성공으로 바꾸지 못했다. 딸의 2차 노력이 무너졌다.


아무리 내가 실패 된장국이라고 주장해도 보란 듯이 잘 먹고 있는 딸들에게 결정적인 헛소리를 하고 말았다. "그게 맛있다고? 너희 취향 진짜 이상하다"라며, 고맙다는 말은 못 할 망정 기분 상할 말이나 늘어놓았다.


그 말을 들은 딸이 드디어 된장국그릇을 슬그머니 밀어냈다.


"이거 안 먹을래요. 엄마한테 이상한 취향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까지 먹고 싶지 않아요."


그때 딸의 표정은 마치 '엄마가 진짜로 원하는 게 이거죠?'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실패를 성공으로 바꾸는 걸 두려워하고, 실패에 그대로 묶여있으려는 마음을 꿰뚫어 보기라도 하는 듯했다. 엄마의 마음이 편해지는 길은 실패 된장국을 성공작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실패를 붙들어 매고 자기 연민에 꽁꽁 둘러싸여 안주해 버리는 것임을 열 살짜리 딸은 기가 막히게 알고 있었다.


그렇게 또 직접 말하지 않아도 저절로 배워버린 게 생겼다. 실패를 대하는 태도를 배워버린 것이다. 딸은 실패를 성공으로 바꿔주려 그토록 애썼는데 엄마인 내가 다 차단했다. 이번 경험이 굳어지기 전에 내 행동을 돌아보고, 이 점은 고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앞으로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맛있게 먹어줘서 고마워."

"물을 더 부어 볼까? 좋은 생각이야. 지금 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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