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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집순이 Jan 20. 2024

가끔은 눈앞의 아이가 없다고 상상해 본다

지금 살아있다는 것에 소중함 느끼기

눈앞에 지금 펼쳐지고 있는 딸의 영상을 끄고 볼륨을 줄여 본다. 마치 고도의 편집기술을 이용해 영상 속의 인물을 지우고 배경만 남기듯 상상해 본다. 조잘대는 목소리도 잠시 무음인 것처럼 여겨 본다. 상상일 뿐이지만, 적막함에 순간 깜짝 놀란다. 있는 아이가 없다고 생각하니 무척이나 두려워 재빨리 상상을 깨고 정신을 차린다. 눈앞의 아이가 존재하는 것 자체가 소중하고 고마워 눈물이 날 지경이다.


태어났을 때는 식구가 늘어났다는 사실이 그렇게 신기하더니, 10년을 키우니 아이의 존재가 당연하게 느껴진다.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소중한데도 소중하다는 사실을 잊고 산다. 래서 아이의 말에 건성으로 대답하거나 차가운 반응을 보이는 행동이 나온다. 평소에는 시큰둥하다가 아이에게 위협이 될 만한 상황이 되어서야 심장이 내려앉고 소중함을 새삼 깨닫고 만다.


잠깐 아이가 없다는 상상을 하면 소중한 마음이 알아차려져서 아이를 정성껏 대하게 된다. 그래서 가끔 그런 상상을 하는데, 사실은 상상까지 도달한 적은 없다. 상상 근처까지만 갔다 돌아오는 식이다. 아이가 없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싫은 게 부모 마음이니까.


부모님은 항상 자식보다 연로하시니 그들의 부재를 상상하기 쉬운 편이다. 반면에 자식은 항상 부모보다 어리니, 무조건 부모보다 오래 살 것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기 때문에 죽음을 생각하기를 외면한다. 하지만 언제든 눈앞에서 없어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 자체를 직면해 보면 아이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자식의 죽음을 끌어당김 하라고, 저주하라고 하는 게 아니다. 지금 소중함을 깨닫는 데 온 신경을 집중해 보는 경험을 해보자는 것이다.


눈앞의 아이가 없다는 상상을 하는 계기가 있다. 2014년 수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을 한순간에 잃었다. 침몰하는 배가 생중계되는 장면은 많은 이들을 충격에 빠트렸다. 아이들이 생명을 잃어가는 순간을 두 눈 뜨고 지켜만 봐야 한다는 사실로부터 느껴지는 감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답답하고 슬펐다. 일개 지나가던 사람일 뿐인 나도 이렇게 충격을 느끼는데, 부모의 마음은 감히 짐작하기조차 어려웠다. 그때 각인되었다. 아이는 불멸의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이.


나도 언제든 아이를 잃은 부모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고 싶은 사람은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아이를 절대 잃지 말아야 한다는 법은 없다. 사고는 언제나 일어난다. 설마 나 하나쯤 그런 일이 생길까 하지만, 그런 사고들은 그 사람이 누구든 관계없이 언제 어디서나 생긴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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