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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미 6시간전

아이와 말라카 여행 - (1)

말라카

새로운 동네는
언제나 설렌다


내가 육로로 국경을 넘고 싶었던 이유는 꼭 비행기 공포증만은 아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할 수 없는 경험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사실상 땅으로 다른 나라를 간다는 게 불가능하기에, 뚜에게 비행기만이 아니라 차를 타고서도 다른 나라를 갈 수 있다는 경험을 꼭 시켜주고 싶었다. 물론 이게 어떤 특별한 경험인지 옆에서 신나게 얘기해도 엄마의 호들갑에 무던해진 뚜는 그러려니, 했지만.


우드랜드 체크포인트를 떠난 버스는 다리를 건너 말레이시아 출입국장으로 향했다. 싱가포르 물가가 비싸 말레이시아 조호바루-싱가포르 출퇴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던데 그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다리 중간이 국경이라더니, 기분 탓인가 어느 순간부터 ‘여기부터 말레이시아구나’ 싶을 정도로 주변 분위기가 달라진 것 같았다.


싱가포르에서의 출국 절차는 비교적 간단했지만, 말레이시아 입국은 훨씬 정신없었다. 일단 버스에서 모든 짐을 다 가지고 내려야 한다. 그리고 줄을 서서 입국장을 지나는데, 여기서 아주 많은 대기 시간이 걸렸다. 디지털 입국신고서를 미리 작성해서 입국심사대는 디지털 전용으로 금방 통과했지만, 통과하자마자 일반 입국심사대를 통과한 사람들과 함께 줄을 서서 짐 검사를 기다려야 한다. 통과대를 나온 여러 갈래의 줄이 두 줄로 줄어들기에 속도가 아주 더디다. 싱가포르에서 말라카까지 물리적 거리는 가깝지만 여기서의 대기 시간 때문에 도착까지 한참 걸리는 것이다.


오랜 시간 줄을 서서 짐 검사까지 끝내고 나오니 우리 버스가 바로 앞에 서 있었다. 짐을 버스 아래에 다시 넣고 화장실을 갔다, 왠지 다른 곳보다 여기가 깨끗할 것 같다는 생각에. 가는 도중에 기사님을 만났는데 우리가 버스 승객인 걸 기억하신다! 나도 알아들을 수 있게 쉬운 영어로 ‘요 앞에 버스가 있으니 화장실 들르고 나면 오세요~’라고 친절하게 얘기하셨다. 가끔 버스가 승객을 놓고 가는 불상사도 생긴다 해서 걱정했는데 버스 기사님이 우리를 이렇게 챙겨주셔서 마음이 놓였다. 좋은 분을 만나 감사했다.


드디어 본격적인 말레이시아! 인터넷도 문제없이 잘 터진다. 이제 세 시간 정도 달리면 말라카다. 말라카까지 가는 동안 바깥 풍경은 팜트리로 시작해서 팜트리로 끝났다. 끝없는 팜트리 뷰에 마트에서 과자를 살 때 뒷면에 적혀있던 ‘팜유(말레이시아산)’가 떠올랐다. 팜유가 괜히 말레이시아가 유명한 게 아니었다. 처음엔 ‘우와 팜트리가 이렇게 생겼구나!’ 했지만 어느덧 뚜도 심드렁해질 정도로 온 세상이 팜트리 천국이다.



둘 다 곯아떨어져 한참 푹 자고 일어날 때쯤 버스가 말라카 지역을 들어섰다. 팜트리 행렬이 끝나고 드디어 동네들이 보인다. 싱가포르에선 번쩍거리는 건물들이 가득했는데, 말라카의 현지 집들을 보니 또 다른 세상을 만난 것 같아 설레기 시작했다.

말라카 시내를 돌며 여러 정류장에서 사람들이 내렸다. 동선을 지도로 지켜보니 우리가 내리는 Strawberry Casa Hotel이 거의 마지막 같았다. 대부분이 사람들이 내리고, 드디어 버스가 우리가 내릴 정류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버스가 정류장 근처에 다다르자, 아주 많은 수의 경찰들이 어떤 큰 호텔 주변에 둘러서 있고, 버스를 막아세웠다. 그러고는 기사님께 더 이상 못 들어간다고 얘기하는 듯했다. 결국 그 자리에서 내릴 수밖에 없었는데, 앞에 경찰들과 경호원들이 가득했다.

뭔 일이 났나 살짝 무서웠으나 지금 이 상황에선 숙소부터 가서 짐을 푸는 게 제일 좋을 것 같았다. 여기서 숙소까지 가는 시간이 우리의 한 달 여행 중에 가장 힘든 시간이었다. 인도가 한 사람만 지나갈 정도로 좁고, 아주 울툴불퉁해서 캐리어 바퀴가 빠지기 일쑤고, 날은 매우 더웠다. 뚜와 내 스스로에게 ’조금만 더 힘내자‘ 마음을 계속 다독이며 걸었지만 땀은 이미 온몸을 감쌌고, 캐리어는 거의 발로 차듯이 굴려야 했다.


녹초가 되었을 무렵 드디어 도착한 우리의 숙소. 이 숙소를 고른 이유는 존커스트리트 한복판, 그리고 예뻐서였다. 실제로 마주한 숙소의 첫인상은 ‘와, 힘들게 온 보람이 있다’. 내가 고른 그 이유 그대로 매우 예쁘고 분위기 있었다. 하늘색 건물에 하얀색 장식이 과하지 않아 우아하면서도 소박했다. 말라카라는 여행지에 대한 환상과 기대를 충족해 주기 충분했다.

들어가 체크인을 하니 무료 음료 쿠폰을 줬다. 체크인하는 지금 이곳에 와서 음료를 주문하면 된단다. 우리 방은 1층 안쪽이었다. 하얗고 깨끗한 복도를 따라 들어가니 내부가 겉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컸다. 방을 가는 길에 작은 인공연못도 있고, 위층 어딘가에서 영화 상영을 한다는 안내판도 있었다.

방도 깔끔하면서도 클래식한 분위기로 꾸며져 있었다. 조금 특이한 건 화장실 샤워부스에 블라인드로 가려놓은 큰 창문이 있었다. 뭐, 창문 밖은 그냥 복도 창인 것 같았지만. 뚜는 숙소가 맘에 들었는지 갑자기 그림을 그리고 싶다며 침대에 앉아 뭔가를 끄적이기 시작했다. 나는 일단 최소한의 짐만 풀고 샤워부터 했다.

다시 나갈 준비를 끝내고 점심부터 먹으러 갔다. 근처 맛집을 찾아보니 의외로 평이 좋은 햄버거 집이 있길래 가보기로 했다. 여행을 온 후로 많이 먹지 못하는 뚜에게도 아주 좋을 메뉴였다.



The Baboon House

No. 89, Jalan Tun Tan Cheng Lock, Taman Kota Laksamana, 75200 Melaka, 말레이시아

외부 내부 다 매우 이국적이고 예쁘다. 확실히 도시와는 다른 매력이 있다. 안내를 받아 자리로 가는데 여러 방을 지날 때마다 다른 인테리어 분위기에 새로운 공간으로 소환된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여기도 음식을 qr코드를 찍어 주문할 수 있다. 우리는 햄버거와 말라카커피, 레모네이드를 주문했다.

주변을 구경하다 보니 음료가 먼저 나왔는데, 이 말라카커피 모두가 꼭 먹어봤으면 좋겠다! 땀 뻘뻘 흘리며 고생한 것을 이 커피 한 잔으로 모두 보상받았다. 옛날에 믹스커피 스틱이 따로 나오지 않았던 시절, 2:2:2 비율로 엄마가 타마시던 추억의 냉커피 맛이랄까. 그것보다 살짝 진하면서도 과하지 않은 단 맛이 너무 향긋하고 좋았다.

햄버거도 말할 것도 없이 딱 좋은 밸런스였다. 오랜만에 뚜도 입에 한가득 베어 물었다. 살짝 신기했던 건, 햄버거에 같이 나오는 후식이 수박이라는 것이다. 뚜는 수박이 뭔가 햄버거랑은 어울리지 않다며 먹지 않았고, 당이 떨어졌던 나는 커피로 모자라 수박까지 다 먹어치웠다.



기분 좋게 아주 만족스러운 식사를 끝내고 동네를 구경하기로 했다. 나는 가끔 새로운 곳을 가면 우리나라의 어디와 비슷한가 생각하곤 하는데, 말라카 골목을 보고 있자니, 건물 외관은 다르지만 분위기 자체는 경주와 비슷하다 느꼈다.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듯한 느낌.



바바&뇨냐 전통 박물관

48-50, Jalan Tun Tan Cheng Lock, 75200 Melaka, 말레이시아


길을 걷던 중 시선이 이끌린 곳이었다. 잠깐 구경만 해볼까 들어갔는데 박물관이었고 약간의 입장료를 내면 안을 들어갈 수 있었다.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물어보시고 그 나라 언어로 된 책자를 주시며 어떻게 관람해야 하는지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다. 한국인이라 하니 매우 반가워하셨으면서 무슨 이유로 영어 책자를 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영어 공부 하는 셈 치고 잘 다녔다.


바바뇨냐 하우스는 19세기 말라카에 살던 대부호의 저택이다. 바바뇨냐 전통문화 양식이 집안 곳곳에 있다. 대부호답게 내부에 값비싸 보이는 물품이 가득했다.

위층은 신발을 벗고 올라가야 하는데, 특정 구역은 사진 촬영이나 입장이 불가한 곳이 있었고, 또 어떤 곳은 인기 포토존인지 말라카 전통옷을 입은 관광객들이 인생샷 찍기에 한창이었다.


뚜와 멋지고 고급스러운 저택을 꼼꼼히 둘러보고 나오니 박물관답게(?) 출구 쪽에 선물샵이 있었다. 싱가포르에 있다가 와서 그런지 훨씬 저렴해 보이는 가격에 이곳에서 뚜의 반 친구들에게 줄 선물들과 큐브를 샀다. 큐브에는 말라카 느낌이 물씬 나는 특별한 무늬가 인쇄돼 있어서 여기서만 살 수 있는 느낌이라 뚜가 아직도 보물처럼 여긴다. 게다가 이동할 때마다 생기는 ‘심심해’ 병을 벗어나게 해 준 효자템이었다.


나온 김에 네덜란드 광장까지 가보기로 했다. 지도를 보며 걷다 보니 TV에서 보았던 그 장소가 슬슬 보이기 시작했다. 다리를 건너기 전은 존커거리 야시장이 열리는 곳이고, 건너면 네덜란드 광장이 나온다. 설레며 다리 중간에서 사진을 찍고 건너는데 웬걸, 광장 주변이 매우 어수선하다. 자세히 보니 아까 봤던 그 경찰 아저씨들이 주변 정리를 하고 있고, 저 멀리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모여있다! 총을 들고 무장한 특공대들도 걸어 다니고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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