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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미 Dec 13. 2024

아이와 싱가포르 여행 - (5)

마지막, 그리고 말라카로

아 맞다! 나 고소공포증 있었지?



마리나베이 샌즈 스카이파크 전망대

첫날 바샤커피를 사고 마리나베이 샌즈 멤버십을 업그레이드했더랬다. 그 후 앱을 열어보니 전망대 무료 쿠폰이 생겨있었다.(그러나 어른만 무료, 어린이는 유료 결제였음...) 낮 밤 언제 가도 좋다길래, 아예 노을 지는 시간을 노려 낮-밤 전부를 즐기기 위해 저녁 7시에 예약을 해놨다.


오늘 저녁 싱가포르 마지막 밤 대미를 장식할 마리나베이 샌즈 스카이파크 전망대! 나름 똑소리 나게 준비한 것 같아 스스로 만족하며 전망대 입구에서 입장을 기다렸다. 전망대 입구는 호텔 타워 3에 위치해 있다.

드디어 저녁 7시. 티켓을 보여주고 계단을 내려가니 전용 엘리베이터로 안내해 줬다. 같은 시간대에 올라가는 사람들이 많아 잠시 대기했다가 엘리베이터를 탔다. 여기까진 순조롭고 참 좋았다. 좋았는데...


10, 20, 30... 층이 점점 높아질수록 갑자기 작은 불안감이 온몸에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음? 생각해 보니 나 높은 곳 무서워하는데? 괜찮나? 괜찮겠지?’

불안감을 떨치지 못한 채 엘리베이터가 순식간에 57층에 도착했다. 띵! 문이 열리고 내리니 왼쪽에 야외로 나가는 문이 있었다. 사람들을 따라 뚜와 함께 문을 나가는 순간, 마치 차원의 문을 통과한 것 같이 갑자기 시야가 확 트이며 온 세상이 발 밑에 펼쳐지고, 어지럼증이 오기 시작했다. 전망대 뷰가 시야에 들어오자마자 나는 당황했다. 생각보다 더 많이 높고 뻥 뚫려있다!


남산도 가봤고, 63 빌딩도 가봤지만 괜찮았다. 그런데 이곳은 저 통유리가 문제였을까. ‘너무 높다’를 생각한 순간,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번도 못 겪어 본 몸의 변화가 왔다.

몸의 균형 감각이 깨진 느낌. 내 몸이 한쪽으로 쏠리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전망대 건물 자체가 기울어져서 내가 같이 기울어진 것처럼 몸이 창가 쪽으로 굴러가 떨어질 것만 같았다. 이때부터 시작됐다, 뚜를 당황시킨 엄마의 진상(?) 행동이...


“뚜야, 엄마 이상해! 막 어지럽고 옆으로 넘어질 거 같아! 넌 안 그래? “

“난 아무렇지 않아.”

“아니 난 왜 이래!!”


전망대는 문 밖을 나가면 중앙 건물이 있고 그 건물을 둘러 넓은 마당이 펼쳐진 구조이다. 가장자리는 통유리로 막혀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통유리 밑에 앉아 경치를 감상하고 있었다.


나는 중앙 건물 벽에 스파이더맨처럼 바짝 붙어 호들갑을 떨며 게걸음으로 움직였다. 중간에 의자나 팝콘가게를 지나느라 벽과 헤어져야 할 때면 동아줄을 놓쳐버린 사람처럼 바닥을 보며 ’어! 어!!‘ 시끄럽게 비틀댔다.


이게 무슨 난리인가. 여기 오겠다고 출국 전부터 앱 가입에, 첫날부터 무거운 커피를 사며 업그레이드했다고 뿌듯해했던 지난날의 내 모습들이 스쳐 지나갔다. 나 지금 뭐 하니... 여길 어떻게 왔는데 아까워서라도 좀 더 머물러야 한다. 나도 저들처럼 자연스럽게 즐기려고 노력해 보자!

다짐과 달리 차마 가장자리는 못 가겠고 중앙 벽을 따라 천천히 걷다 보니 계단이 나왔다. 제일 꼭대기 층이 또 있었나 보다. 난간을 부들부들 붙잡으며 계단을 중간쯤 올라가다 위를 빼꼼 살펴보니 식당이 있는지 사람들이 맥주를 한잔씩 놓고 수다를 즐기고 있었다. 전망대 꼭대기에서 경치를 즐기며 앉아있는 기분은 어떨까. 저곳에서 노을 지며 밤이 되어가는 도시를 바라보고 있으면 참으로 벅찰 것 같았다. 하지만 난 그런 걸 부러워할 여유조차 없었다. 아까우니 사진이라도 남기자 싶어 손을 뻗어 폰 카메라만 열심히 눌러댔다.


어느새 노을이 지고 있었다. 그러나 세상이 예쁘게 물들고 있는 걸 내 눈이 아닌 내 폰 렌즈가 봤다. 나중에 찍은 사진들을 보니 내가 시간 예약은 참 잘했었구나 싶었다.

전망대에서 아무리 적응을 해보려 해도 도저히 익숙해지지가 않기에 결국 결단을 내렸다.


“뚜야, 정말 미안해... 엄마가 고소공포증인 건지 도저히 못 서있겠어서 그러는데 우리 그만 내려가면 안 될까? 미안해!”

“알겠어. 그럼 나 저거 하나만 사줘.”

“그래, 그래! 사줄게!”


뚜가 가리킨 건 팝콘이었다. 뚜는 남산에 올라가서도 팝콘 먹는 걸 좋아한다. 정신없는 와중에 그래 저거라도 기념으로 사주자 싶어 가게에 돈을 내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엘리베이터가 내려갈수록 나의 혼란도 점점 사그라들고 제정신이 돌아왔다.


“엄마 너무 웃겨! 엄마가 가자고 해놓고 자기가 무서워해!”


뚜는 입을 살짝 삐죽 대며 날 놀렸지만 팝콘으로 어느 정도 보상이 된 것 같아 다행이었다. 숙소까지 돌아오는 동안 난 나에게 패배한 기분이 들어 속상했다. 마음은 허무함으로 가득 찼고, 휴대폰에는 겨우겨우 기어 가 팔만 쭉 뻗어 찍은 사진들만 남았다. 이 상황이 참으로 웃겼다. 어이없지만 이 또한 추억거리가 하나 늘었다 생각하자.


갑자기 빨리 끝나버린 마지막 일정. 밤 경치도 못 보고 끝났다. 아쉬운 마음에 City Hall역에 내려 지하도가 아닌 밖에서 걸어 숙소로 들어가기로 했다. 어느덧 깜깜해진 밖을 주변을 경계하며 걷는데, 저 앞에 반가운 게 눈에 띄었다.


동물원 이후로 밖에서 처음 만난 주스자판기다. 하나 뽑아 마시니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 뚜와 나눠 마시며 모퉁이를 도는데, 옆에 하얗고 예쁜 건물이 하나 나왔다. 구글에 찍어보니 세인트 앤드류 성당이었다. 입구가 잠겨 있어 바라만 봤지만, 멀리 호텔 분수쇼에서 들려오는 웅장한 노래와 함께 성당 건물을 바라보니 분위기가 차분하니 참 잘 어울렸다. 그래도 괜찮아,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우리가 지하도만 다녀서 잘 몰랐는데, 숙소 근처에 구경할 곳이 참 많았다. 이걸 마지막 날이 돼서야 알다니... 아쉽지만 밤이라 더 이상 돌아다니지 못하고 숙소 쇼핑몰 1층에 피규어샵만 들렀다가 방으로 올라왔다.



내일이면 싱가포르와 작별하고 말라카로 떠난다. 말라카로 가는 버스가 아침 일찍이기 때문에 모든 짐을 다 정리했다. 내가 여행 준비를 할 때 제일 걱정했던 그 국경 넘는 버스가 바로 내일 아침이다. 프린트해 온 예약 확인서를 크로스백에 챙겨 넣고 미리 입을 옷도 꺼내놓고 다시 한번 버스 정류장 위치를 확인해 놓고 잠들었다.


싱가포르에서 말라카로

말라카, 즉 말레이시아로 입국하기 전
디지털 입국신고서(MDAC)를 작성해야 한다.
우리는 싱가포르 여행 둘째 날 작성했다.

<말레이시아 디지털 입국신고서 작성 사이트>

- 여권 잔여 유효기간 6개월 이상
- 도착 3일 이내 등록 가능
- 말레이시아를 방문하는 모든 여행객

아침 일찍 일어나 체크아웃을 하고 지하철역으로 갔다. 그런데 긴장을 했나 반대 방향으로 가는 층에서 탈 뻔했다. 출근 시간이라 그런지 지하철 탑승장에 도우미 어르신들이 계셨는데, 우리가 가는 역을 확인하신 후 우리가 타야 할 층까지 캐리어를 직접 가져다주시며 어떻게 가야 하는지 설명해 주셨다. 당황했을 때 받는 친절이 얼마나 큰 지 새삼 깨달았다. 정말 감사했다. 영어는 짧지만 진심을 다해 감사함을 표현했다.


말라카행 버스 정류장은 Bugis MRT역에 있는 퀸 스트리트 버스터미널(Queen Street Bus Terminal)이다. 이곳 말고도 여러 곳이 있으니 숙소와 가까운 곳으로 고르면 된다. 버스 예약 시에도 간단히 설명이 있는데, 역에서 내려 A출구로 나가 길에 붙어있는 표지판만 잘 보고 가면 도착할 수 있다.

미리 블로그나 유튜브를 보고 갔기에 길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으나 문제는 무거운 짐이었다. 첫날부터 여정을 함께 하게 된 바샤커피와 쫌쫌따리 여행 기념품들로 가방 무게가 추가되어 이동하는데 힘이 많이 들어갔다. 특히 역에서 터미널까지 길이 울퉁불퉁해서 캐리어 끌기가 수월하지 않았다.

아침부터 온몸이 땀으로 범벅되며 도착한 터미널. 생각보다 아담하다. 작은 매표소 건물만 있을 뿐. 나름 국경을 넘는 버스인데 타는 곳이 이렇게 소박한 곳이 맞나? 매표소 앞에 붙어있는 안내들을 차근차근 읽으니 다행히도 여기가 맞다. 내가 가져온 모든 표와 확인서를 드렸더니 예약확인서 밑에 내가 타야 할 버스를 적어주셨다. 이 버스 번호를 절대 잊지 말라고 강조하시길래 폰으로 찍어뒀다.


예약 확인에 버스 번호까지 받으니 이제야 긴장이 조금 풀렸다. 숨을 돌리며 주변을 둘러보니 우리말고도 말라카행 버스를 기다리는 팀들이 많았다. 특히 중국인이 많았고 혼자 여행하는 외국인들도 많았다.


버스 몇 대가 지나간 후, 앞에 있던 중국인 팀이 익숙한 듯 건너편 버스로 가시길래 우리도 눈치껏 따라갔다. 버스 문에 쓰여있는 숫자를 보니 우리가 탈 버스가 맞다! 사진으로 찾아볼 땐 노란 버스였는데 예쁜 분홍 버스가 왔다. 짐칸에 캐리어를 밀어 넣고 자리에 올라가 앉았다. 이윽고 파란 옷을 입으신 기사님께서 탑승 명단을 확인을 하셨다. 그리고 출발!

싱가포르 안녕~ 즐거웠다!!


버스는 싱가포르 시내를 한 바퀴 돌며 다른 정류장에서도 승객을 태우고 국경인 우드랜드 체크포인트로 향했다. 보통 말라카까지 5시간이 걸린다 했는데 시간 지체의 주된 원인이 국경을 넘을 때라고 한다. 들은 대로 출입국 사무소 앞에서부터 차가 엄청나게 밀린다.


버스에서 내려 싱가포르 출국장을 갈 때는 캐리어는 버스에 둔 채 여권만 들고 내렸다. 출국 심사도 간단하다. 출국장을 나오면 들어갈 때와 다른 장소이기 때문에 아까 기억해 둔 버스 번호를 잘 보고 타야 한다.


이젠 정말로 싱가포르와 안녕이다. 버스는 서서히 말레이시아 입국장으로 향했다. 말레이시아가 이번 여행 일정 중 제일 길다. 무사히 잘 도착할 수 있을지, 어떤 많은 경험을 하게 될지 걱정반 설렘반이었다.


<싱가포르 여행 일정 총 정리>
* 첫째 날:
창이공항-맥도널드-마리나베이 샌즈 쇼핑몰-바샤커피
* 둘째 날:
싱가포르 동물원-송파바쿠테-레인보우경찰서-슈퍼트리쇼
* 셋째 날:
블랑코 코트 프라운 미-아랍스트리트-머라이언파크-토스트박스(카야토스트)-스카이파크 전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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