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트리쇼, 머라이언파크
싱가포르에서 여기는 꼭 와야겠구나
슈퍼트리쇼
숙소에 잠시 들러 긴 바지로 갈아입고, 오늘 저녁을 위해 야심 차게 준비한 횟집 테이블 비닐을 챙겼다. 슈퍼트리쇼에서 아주 큰 역할을 할 아이템이다. 이 또한 싱가포르 카페에서 얻은 고급(?) 정보.
먼저 지하철을 타고 가든스 바이 더 베이 역에 내렸다.
참고; 가든스 바이 더 베이 역은 갈색 노선이다. 갈색 노선은 하나은행의 트래블로그 카드가 찍히지 않는다. 몇몇 장소에서도 안된다는 얘기가 있어서 싱가포르에서는 트래블월렛, 신한 sol트래블 카드만 사용했다.
표지판을 보고 슈퍼트리쇼가 열리는 곳을 향해 가는데 생각보다 많이 걸어야 했다. 날이 어두워지는데도 덥고 습해서 땀이 줄줄 나기 시작했다.
사실 첫째 날에 가기 위해 가든스 바이 더 베이 입장권을 예매했었다. 그러나 그날 밤비행기 피로감으로 인해 구경을 포기해서 티켓을 날린 상황. 걷다가 막상 가든스 바이 더 베이의 건물들을 보니 첫날 어떻게든 갔어야 했나 잠시 생각했지만, 매우 습하고 덥다고 들어서 어차피 뚜는 안 좋아했겠거니 ‘잘했다 ‘하고 마음을 다시 잡았다.
가든스 바이 더 베이 중심에 가까울수록 사람들이 많아지고, 무리들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슈퍼트리쇼가 열리는 곳에 다다랐다.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비현실적인 풍경에 심장이 콩닥거렸다. 사진으로 보던 것보다 훨씬 거대하고, 많고, 예쁜 인공 나무들이 눈앞에 펼쳐지는데, 다른 행성에 온 것만 같았다. 여기야말로 오로지 싱가포르에만 존재하는 곳이구나. 미지의 세계로 걸어 들어가는 느낌에 마구 설렜다.
메인 스테이지 근처에서는 그 당시 곧 개봉할 인사이드아웃 2 팝업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영화에서 보던 기억 구슬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이런 모습일까. 인사이드아웃을 보고 눈물을 줄줄 흘렸던 나와 달리 시큰둥했던 뚜도 여기만큼은 눈을 떼지 못했다. 영롱하고 예쁜 색감의 구슬들이 꽉 차있는데, 솟아있는 나무들과 참 잘 어울렸다.
슈퍼트리쇼는 저녁 7:45, 8:45 이렇게 두 번 진행된다. 우리는 7:45 쇼를 보기 위해 20분 전에 도착했는데, 정말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쇼를 기다리고 있었다.
슈퍼트리쇼 추천 명당자리는 중앙에 메인 나무를 바라보고 약간 뒤쪽이다. 여기에 누우면 메인 나무가 한눈에 보이고 양쪽으로 나무들이 시야에 꽉 차게 들어온다.
드디어 비장의 아이템을 꺼낼 시간! 명당자리를 잡고 횟집 비닐을 꺼내 펼쳤다. 돌돌 말아 갖고 다니면 부피가 매우 작고, 가벼워서 돗자리보다 훨씬 효율적이다. (다이소에서 쉽게 살 수 있다.) 사실 어른들이야 그냥 바닥에 누워도 상관없지만, 까다로우신 어린이들에겐 센스 있는 준비물이 될 수 있다.
참고; 가뜩이나 더운 동네에 사람들이 가득 모여있어서 매우 습하고 더우니 부채나 선풍기, 물 필수!!
어느덧 날이 어두워지고 슈퍼트리쇼가 시작되었다. 쇼는 주기적으로 테마가 바뀌는 게 아닐까 싶다. 우리가 본 슈퍼트리쇼는 인사이드아웃을 연상케 하는 색감과 음악, 구성이었기 때문이다.
슈퍼트리쇼는 한 마디로 ‘황홀하다’. 어둠 속에서 음악이 나오며 첫 불빛이 탁! 켜지는 순간 누워있던 모든 사람들이 자동으로 와~~~ 탄성을 내뱉었다. 아,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 내 시야에 담기는 모든 것들이 내 것이 된 것만 같았다. 화려한 빛의 향연이 계속될수록, 집에 있는 남편도 같이 왔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으로 가득해졌다.
환상적인 시간이 끝나고, 약간의 여운을 머금은 채 수많은 인파와 함께 천천히 걸어 나왔다. 사실 오래 머물며 옆에 열린 야시장까지 더 구경하고 싶었지만, 겁이 많은 나는 밤에 타지에서 여자 둘이 돌아다니는 게 썩 내키지 않아서 서둘러 숙소로 돌아가고자 했다. 지하철 역으로 되돌아가는 길에 어느새 사테 야시장이 열려있고, 익숙한 숯불구이 향이 솔솔 코로 들어오는데, 꼬르륵, 아쉽지만 발길을 멈추지 않았다.
우리의 하루 여행 일정은 거의 비슷하다. 오전에 관광 하나, 컨디션 괜찮으면 오후에도 하나, 끝나고 숙소 들어가는 길에 마트에 들러 먹을거리를 사서 가기. 이번에도 숙소 지하 마트에 들러 컵라면과 과자, 망고, 내일 마실 물을 사서 올라왔다. 저녁 시간이 애매해져서 누룽지를 끓여 컵라면과 함께 먹고 디저트로 망고까지 먹으니 훌륭한 한 끼가 되었다.
어느덧 싱가포르 셋째 날의 해가 떠올랐다. 내일은 일어나자마자 말라카로 가는 버스를 타기 때문에 사실상 오늘이 마지막 날과 다름없다. 오늘의 일정은 머라이언 파크와 노을 시간에 맞춰 예매한 마리나베이샌즈 전망대. 우선 아침을 뭘 먹을까 싱가포르 지역 카페를 보다가 모두가 강추하는 새우 국숫집을 발견했다. 우리 숙소에서 버스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블랑코 코트 프라운 미’
243 Beach Rd, #01-01, 싱가포르 189754
유명한 곳인지 우리나라 사람들도 많았다. 곳곳에 들려오는 우리말. 타지에서 우리말이 들리면 괜히 반갑더라. 안내를 받아 앞뒤 모두 한국인이 있는 테이블에 앉았다.
주문은 식당 안 쪽에 들어가 선불로 해야 하고, 현금 결제만 된다. 메뉴판을 보고 새우 국수 하나, 고기 국수를 하나 주문하고, 옆 코너에서 라임주스를 두 개 사서 테이블로 돌아왔다. 국수가 나오기 전 먼저 라임주스부터 마셔보니 오, 상큼하니 입맛을 돋우기 딱이다. 잠시 기다리니 국수가 나왔는데 첫 비주얼은 생각보다 진한 색에 살짝 당황했다.
매우려나? 느끼하려나? 걱정하며 한 입 먹어보니 기우였다. 맵거나 느끼하지 않고, 감칠맛만이 가득하다. 진한 국물에 두 가지 면이 들어있어 식감도 좋고, 각각 고기와 새우도 가득 들어있어 뚜와 반반 나눠 먹었다.
아침에 갑자기 꽂혀서 온 국숫집인데 입맛이 살짝 까탈스러운 뚜도 잘 먹는 걸 보니 너무 잘한 선택이라 기분이 좋아졌다. 싱가포르를 느낄 수 있는 맛이랄까. 우리나라 국수와 다른 이국적인 맛!
또, 옆에 자유롭게 식당 안을 왔다 갔다 하는 새를 보는 것도 신선하니 재미났다. 낯선 나라에서 긴장이 가득했던 우리가 이 식당에부터 마음을 좀 더 내려놓고 여유롭게 즐기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이 국숫집이 좋은 추억으로 남은 이유 중 또 하나가 바로 옆 골목이 유명 관광지인 하지레인-아랍스트리트라는 것이다. 새로운 동네 온 김에 돌아볼까 하고 걸었던 이곳이 얘기만 들은 그 아랍 스트리트였다니!
우리 숙소가 있는 곳이 빌딩 숲 속이라면, 여기는 무슬림 중심지면서 다양한 문화가 섞여 또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라피티와 알록달록 예쁜 건물들이 늘어서 있어 어디든 포토존이 된다.
너무 더워 중간에 급히 들어간 젤라토 집은 중국인이 운영하시는 것 같았는데, 매우 친절하게 나도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영어로 설명을 해주셨다. 재료 본연의 맛이 가득한 젤라토를 에어컨 빵빵한 곳에서 먹으니 속이 얼얼할 정도로 시원했다.
젤라토 집을 나와 거리를 좀 더 다니고 싶었지만 뚜가 슬슬 한계가 온 것 같아 부기스 역으로 향했다. 대망의 머라이언 파크를 가기 위해! 뚜가 여행을 오기 전 도서관에서 카카오프렌즈 세계 여행 책을 빌려봤는데, 싱가포르 책에 머라이언 파크에 대해서 나왔나 보다.
“엄마, 왜 이름이 머라이언인 줄 알아? 머메이드랑 라이언 합친 거래! 여기도 꼭 가보자!”
하긴, 머라이언 파크는 싱가포르 대표적인 랜드마크 중에 하난데 당연히 가봐야지.
머라이언 파크
래플스 역에 내려 구글 지도를 보며 걸었는데, 사실 좀 비추하는 경로다. 땡볕에 땀은 주룩주룩 나는데 꽤 오래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너무 더우니 둘 다 짜증이 올라와서 오며 가며 별거 아닌 이야기로 많이 싸웠다. 일행에 어린이나 어르신이 있다면 맘 편히 택시를 타는 걸 추천한다.
도착해서 남들처럼 머라이언 동상과 마리나베이샌즈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는데, 가 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다들 그 엄청난 햇빛들을 견디며 찍었다는 것을.
그늘 하나 없는 뙤약볕이니 선글라스와 생수 꼭 챙기길!!!
물론, 더위를 참아가며 찍을 만큼 사진은 매우 잘 나온다. 이 사진들을 인스타 스토리로 올렸을 때, 많은 연락을 받았다. ‘싱가포르’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가장 유명한 장소이지 않을까.
우리가 사진을 찍고 있을 때, 옆에 어떤 소녀 무리들이 있었는데 나에게 사진을 찍어달라 했다. 사진 찍는 것에 진심인 나는 최선을 다해 가로, 세로 구도를 잡아가며 찍어줬는데 나와 뚜를 바라보더니 코리안이냐고 물었다. 맞다니까 ‘와우! 안녕하세요!’하며 까르르 웃는데 웃는 모습들이 예뻐서 아줌마 오지랖에 수다라도 떨고 싶었지만 ‘맞다, 나 영어 잘 못하지...’ 그저 같이 웃어줄 수밖에 없었다 흑...
싱가포르는 당연하게도 매우 덥다. 그냥 더운 게 아니라 습하게 더워서 잠시 걸어도 땀에 온몸이 흥건하게 젖는다. 특히 어린이가 견디면서 다니기엔 쉽지 않은 더위라 관광지를 가긴 가되, 최대한 짧게 치고(?) 빠져야 한다. 머라이언 파크도 거의 기념사진 위주로 빠르게 끝내고 다시 지하철 역으로 돌아갔다. 내일이면 이곳을 떠난다니 아쉬운 마음에 역 근처 스타벅스에서 머라이언 키링도 기념으로 샀다.
이제 싱가포르 마지막 저녁 일정만을 남겨뒀다. 첫날 멤버십을 업그레이드해서 무료로 예약해 둔 마리나 베이 샌즈 전망대다. 이 전망대가 우리 싱가포르 여행에 화려한 마무리를 해줄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뭐, 평생 못 잊을 경험을 하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