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진 10만 원
나 생각보다 잘 다니는 것 같은데?
택시는 어느새 싱가포르 시내로 들어서서 고층 아파트와 번쩍번쩍한 회사 건물들 사이를 지나 숙소에 도착했다. 정확히는 숙소가 있는 쇼핑몰 앞에 도착이다. 쇼핑몰 입구 왼쪽엔 맥도날드가 있고, 오른쪽에는 숙소로 올라갈 수 있는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4층으로 올라가니 바로 옆에 동네에서 많이 본듯한 익숙한 인형 뽑기 방이 보이자, 병든 닭처럼 꾸벅꾸벅거리던 뚜가 잠시 눈을 반짝였다.
“우와! 엄마, 인형 뽑기가 있어! 나 구경해도 돼?”
“좋은데, 일단 체크인부터 하자.”
파파고에 얼리체크인을 원한다는 글을 번역해 놓고 예약 확인서 캡처를 띄워 호텔 프런트에 번갈아 보여줬다. 예약자를 확인하고 여권을 확인하더니 얼리체크인을 결제하겠다며 금액을 나에게 보여준다. 얼리체크인 비용 우리 돈 10만 원! 시작부터 예상치 못한 큰 지출이 생겨 마음이 참 쓰렸지만 몸 상하는 것보다 낫다 생각하기로 했다.
얼리체크인은 8시부터라 우리는 로비에서 또 40여분을 대기해야 했다. 일단 뚜가 원하는 대로 인형 뽑기 방부터 구경을 했다.
뚜가 한창 인형 뽑기에 눈을 떴을 때라 길에서 인형 뽑기만 보면 눈을 떼지 못하고 구경을 했는데, 여행에서도 이렇게 이어질 줄이야. 기계마다 어떤 게 있는지 훑어보더니, 이따 다시 와서 하겠다며 나름의 계획을 세웠다. 공항 도착부터 여기까지 온 시간 중에 뚜의 컨디션이 제일 좋아 보였다.
아, 어서 방에 들어가 눕고 싶은데 시간이 참 더디게 흘러간다. 잠시 로비를 둘러보다 저쪽에 테라스가 있길래 나가보았다. 건너편에 소방서가 있었는데, 마치 레고크리에이터에 있을 법한 예쁜 건물이었다. 기념으로 사진을 찍고, 어딘가 우리나라와 익숙한 듯하면서도 이국적인 동네를 내려다보니 새삼 내가 정말 여행을 왔구나 실감이 났다.
주변 구경은 대충 끝났고, 피곤이 다시 몰려오길래 뚜와 로비 소파에 몸을 쭈그리고 있으니 어느샌가 잠이 들었다. 애랑 엄마 둘이 아침 일찍부터 그러고 있으니 안돼 보였는지 프런트 직원이 우리를 깨우며 원래보다 10분 일찍 방 키를 줬다. 난 눈도 안 떠지는 부스스하고 못생긴 얼굴로 최대한 활짝 미소를 지은 채 땡큐를 연발하며 방으로 올라갔다.
겉으로 볼 때는 큰 규모의 호텔로 보이지 않았는데 막상 올라가 보니 복도 양 옆으로 방들이 가득했다. 우리 방은 복도 끝까지 가서 코너를 돌자 나왔다. 방으로 들어간 우리는 신발을 벗자마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짐을 입구에 아무렇게 두고 침대로 올라가 누웠다. 방에 무사입성 했음을 남편에게 알리고 바로 잠이 들었다. 누워서 잘 수 있는 방이 있다는 게 이렇게 감사한 일이란 걸 다시금 깨달았다.
자도 자도 모자랄 만큼 실컷 자고 일어나니 어느덧 오후 2시. 눈을 뜨자마자 든 생각은 ‘10만 원 가치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여행에서 추가된 경비 중 이때의 10만 원이 가장 값진 지출이었다. 어찌나 개운하던지 무슨 일정이든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뚜와 한참을 뒹굴뒹굴하며 슬슬 오후 일정을 뭘 할지 고민했다.
일단 정비를 한번 하고, 밥부터 먹기로 했다. 싱가포르에 맛집 추천을 찾으니 참 많은 곳들이 나왔는데, 우리는 놀랍게도(?) 쇼핑몰 입구에서 봤던 맥도날드를 갔다. 물론 뚜의 선택이었다. 여행 첫 끼가 생각지도 못했던 맥도날드라니!
그러나 시장이 반찬이라 했던가. 생각보다 맛있어서 만족스러운 첫 끼였다. 햄버거를 먹으면 배부르다며 두 입 정도는 꼭 남기는 뚜도 우리나라의 치킨 버거보다 맛있다며 다 먹었다. 그래도 내 마음속은 어딘가 약간 아쉬움이 남길래 뚜에게 말했다.
“밥은 뚜가 골랐으니까, 카페는 엄마가 골라도 돼? 엄마 진짜 가보고 싶은 곳 있어.”
내가 가고 싶은 카페는 그 유명한 바샤커피였다. 바샤커피가 있다는 마리나베이 쇼핑몰을 구글맵으로 검색하니 지하철 몇 정거장이면 갈 수 있었다. 지하철 첫 도전, 드디어 진짜 여행이 시작되는 느낌이었다.
우리가 묵었던 숙소의 장점은 쇼핑몰 지하로 지하철 역이 이어져 있다는 점이다. 역까지 지척은 아니지만 초등학생이 걷기에도 무리 없는 거리였다. 쇼핑몰 안에 무엇이 있는지 구경하며 표지판을 따라 지하도를 걸었다. 표지판이 잘 되어 있어서 여러 갈림길이 있었음에도 지하철 역까지 한 번에 도착했다.
우리가 출발하는 곳은 NS 빨간 노선인 City Hall 역이다. 개찰구 앞에서 뚜에게 SOL트래블 카드를 줬다. 싱가포르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는 따로 티켓을 끊을 필요가 없다. 컨택리스 기능이 있는 카드만 있으면 우리나라 티머니처럼 바로 찍고 들어갈 수가 있다. 컨택리스란 카드를 ‘긁지 않고’ 갖다 대기만 해도 이용이 가능한 기능으로, 와이파이 모양이 누워있는 듯한 생김새의 마크이다. 이 기능 덕분에 뚜랑 나 둘 다 카드를 찍고 자연스럽게 개찰구를 통과할 수 있었다.
싱가포르 지하철은 지하철 내부라던가 전체적인 시스템이 우리나라와 유사해서 어려움이 없다. 글씨나 노선 색이 알아보기 쉽게 표시되어 있어서 표지판만 잘 보고 따라가면 환승도 쉽게 할 수 있다. 지하철을 타며 싱가포르를 첫 여행지로 정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체적으로 여행하기 좋게 친절하고 잘 짜여졌다는 느낌이 들어 체감 난이도가 쉬운 편이었다. 여행 초보자가 자신감을 갖기에 좋은 나라이다.
마리나베이 쇼핑몰이 있는 BayFront역에 도착하여 먼저 현금을 좀 뽑기로 했다. 지하철역 구석에 있는 현금인출기에 카드를 넣고 비밀번호를 눌렀는데 웬걸, 카드 비밀번호가 틀렸다면서 에러가 나는 것이다! 새가슴인 나는 등줄기에 땀이 살짝 났다. 분명히 블로그에 있는 대로 잘 따라 했는데 두 번이나 카드가 막히자, 이러다 기기가 카드를 영영 먹어버릴까 봐 무서워서 중단하고 찬찬히 인터넷 검색을 다시 했다. 원인은 비밀번호 자릿수였다. 나는 비밀번호를 네 자리로 설정했지만 이곳에서는 여섯 자리를 요구하기에 내 비밀번호 뒤에 00을 붙여서 여섯 자리를 써야 한다는 것이다. 혹시 몰라 다른 카드에 어플로 돈을 옮겨 재시도를 했는데 휴우, 드디어 돈이 나왔다. 내가 다른 나라에서 돈을 인출하다니, 이 작은 첫 성공에 또 뿌듯함이 올라왔다.
마리나베이 쇼핑몰의 첫인상은 ‘번쩍번쩍하다’였다. 온갖 럭셔리한 인테리어의 향연이었다. 바샤커피는 쇼핑몰 안쪽에 있었는데 가는 중에 중간에 보트 타는 곳이 있고, 보트 길 끝에 작은 폭포가 떨어지고 있었다. 창이 공항에서 아쉽게 못 본 폭포와는 규모나 웅장함이 비교도 안 되겠지만 여기서 본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바샤커피는 매장 이용 시 웨이팅이 길다고 들었는데 운이 좋았는지 앞에 한 팀만 있었다. 약 10분 정도 대기 후 안내를 받아 들어가 앉았다. 이곳 역시 지금까지 지나온 매장과 비슷하게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로 가득했다. 메뉴판에는 아주 많은 커피 종류가 있었는데 미리 블로그에서 봐놨던 스테디셀러 커피와 뚜가 먹고 싶다는 아이스크림을 주문했다.
커피는 두 사람이 먹어도 충분할 정도로 주전자에 가득 담아 나오고 첫 잔은 직원이 직접 컵에 따라주었다. 커피를 받을 때는 인터넷으로 하도 많이 봐서 익숙한 느낌마저 들었는데, 아이스크림은 여기서 즉흥적으로 아이가 먹을만한 걸 찾다가 시켜서 그런지 의외로 새롭고 예뻤다.
커피는 가향 커피답게 향이 풍부했고, 맛은 진했다. 주전자에 있는 커피를 다 마시면 심장이 두근거릴 것만 같아서 아깝지만 조금 남겼다.
바샤커피가 현재는 우리나라에도 매장이 들어왔고, 여행 당시에도 들어올 예정이란 소식은 들었으나, 여행 선물로 이만한 게 없다고 들었기에 지인이나 부모님께 드릴 선물 등등으로 네 팩을 샀다. 그러곤 얼마 지나지 않아 후회했다. 앞으로 한 달 동안 이 무거운 커피를 이고 지고 다녀야 한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부피로도 존재감을 뽐냈기에 앞으로 내 여행 짐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할 예정이다.
여기서 커피를 구입할 때 잊지 않아야 할 것!
바로 멤버십 적립이다.
여행 준비를 할 때에 알게 된 정보인데, 마리나베이샌즈 전망대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미리 마리나베이샌드 어플을 다운 받아 가입해 놓고, 쇼핑몰 안에서 결제 시에 어플 멤버십을 보여주고 적립 실적을 쌓는다. 쇼핑몰 입구 근처에 있는 데스크에 가서 여권과 신한카드, 어플, 결제 영수증을 보여주면 마리나베이샌즈 멤버십을 업그레이드해서 카드를 만들어준다. 멤버십이 업그레이드되면서 어플에 전망대 무료 이용권이 생긴다. 이 이용권으로 전망대를 예약하면 끝!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 길, 지하철 안에서 뚜와 오늘 해낸 일들을 이야기했다. 도착해서 체크인까지 버텼고, 햄버거도 먹었고(?), 지하철도 타봤고, 현금 인출도 해보고, 바샤커피도 가봤다. 이 정도면 첫날을 꽤나 잘 보낸 것 같았다. 이제 숙소 쇼핑몰에서 저녁을 간단히 먹고 아까 봐 둔 지하 마트에 들러 망고와 물만 사서 올라가면 대성공이다. 생각의 끝에 다다르자, 괜스레 히죽히죽 나 스스로에게 칭찬이 올라왔다.
“뚜야, 우리 여행 초보치고 생각보다 잘 다니지 않냐? 엄마 쫌 잘하고 있는 거 같아. 우리 내일 동물원도 지하철 타고 잘 갔다 오자!”
“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