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싱가포르 여행 - (1)

밤 비행기 후유증

by 요미
밤 비행기가
밤샘 비행기였구나!?


우리가 탈 싱가포르행 비행기는 23:30 출발이었다. 내가 밤 비행기를 택한 건 비행기 공포증과 무관하지

않다. 밤에 대기가 안정되어 덜 흔들린다는 글을 보았고, 비행기에서 자면 금방 도착할 거야! 하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생각이 짧았다. 경험 없는 초보자의 실수랄까.


먼저 공항에 도착해서 위탁수화물을 부친 후, 저녁을 먹기 위해 라운지를 찾았다. 사실 라운지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신한 SOL트래블 카드로 실적 30만 원을 채우면 마티나 라운지/스카이허브 라운지 이용권이 나온다기에 미리 여행 준비물을 사면서 맞춰놓았다. (이용권은 The LOUNGE 앱에서 받을 수 있다.)

마티나 라운지는 항상 사람이 많아서 웨이팅이 걸릴 수 있다 했는데 웬걸, 저녁이라 그런지 매우 한산하고 조용했다. 라운지 이용권이 본인만 해당이라 어린이 요금을 따로 계산하고 바로 들어가서 음식을 담았다.

뷔페를 좋아하는 어린이는 출발 전부터 라운지 음식을 담으며 신이 났다. 음식 종류는 꽤 다양했고, 냉동식품의 향기가 나는 것들이 많았지만 맛도 있고 과일도 신선했다. 마티나 라운지에 대해 호불호가 갈리는 평을 많이 봤는데 이 정도면 괜찮지 않나 싶었다. 아, 물론 ‘제 값 다 주고도 갈 것인가요?’에 대해선 음... 조금 고민이 될 듯하다.

마무리로 컵라면까지 먹고 나서 양치질을 하고 태블릿을 보며 쉬었다. 사실, 눈은 태블릿에 있지만 마음은 비행기를 타는 순간을 상상하고 있었다. 이젠 새로고침을 해도 그래프에 변화가 없는 난기류 예측 앱과 turbli 사이트를 계속 열어보았다. 오늘의 난기류는 중간에 두 번 정도 있을 예정이다. 싱가포르 노선은 원래 대만, 베트남 쪽에서 매번 난기류가 있다는 글을 보았는데, 그래프의 피크가 그때 같았다.


다가온 탑승 시간. 우리나라로 원정을 왔던 것으로 보이는 싱가포르 유소년 축구단 친구들이 함께 탔다. 그래, 어린이 친구들도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타는데, 나도 태연히 잘 타보자. 준비는 다 되었다. 그나마 제일 덜 흔들린다는 날개 위 좌석을 미리 돈 내고 예약했고, 분명 떨리는 맘에 못 먹을 내 기내식은 과일로 바꿔뒀다. 목 베개, 귀마개도 준비 완료. 탄다!


깜깜한 밤, 드디어 비행기가 떠올랐다. 정말 다행이게도 비행기는 난기류 예측 어플과 비슷하게 맞아떨어진 덕분에 생각보다 탈 만 했지만, 불행히도 잠을 잘 수는 없었다. 긴장해서 못 잔 탓도 있고, 겨우 자려나 싶을 때엔 기내식이 나와서 깬 것이다. 여섯 시간 비행을 통으로 잘 거라는 건 나의 아주 큰 착각이었다. 분명 하와이 신혼여행 때는 자다 깨다 반복했던 것 같은데 10여 년 동안 내가 변했나 보다. 나는 기내에서 잘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나마 뚜는 얼마 안 되어 내 무릎을 베고 잠이 들어 다행이었다. 부럽다, 잠드는 게. 출발 전 날도 긴장한 탓에 잠을 거의 못 잤는데, 비행기에서 보낸 밤도 뜬 눈으로 보내다니.

그렇게 싱가포르 창이공항에 도착한 시간, 새벽 5시.

처음엔 내가 이 긴 비행을 버텼다! 해냈다! 하는 뿌듯함이 먼저 몰려와서 만끽하기 바빴다. 뚜도 도착 직후엔 ‘우와, 모든 게 다 영어야!’ 한껏 들뜬 모습이었다. 새벽임에도 습하고 후덥지근한 공기가 코로 들어오니, ‘어서 와, 여기가 동남아야’ 마중 나온 것 같았다. 이틀 전에 미리 싱가포르 온라인 입국신고도 해놔서 입국심사도 스마트하고 빠르게 통과! 여기까진 완벽했다. 이제 아침까지 공항에서 쥬얼창이 폭포도 보고, 밥도 먹고 노닥거리다가 숙소 체크인 시간에 맞춰 나가면 첫 번째 일정 성공이었다.


그런데... 짐을 찾자마자 긴장이 풀린 사이로 피로감이 슬슬 몰려오기 시작했다. 내 피로감이야 조금만 참으면 되지 싶었는데 더 큰 문제가 생겼다. 내가 내린 터미널이 4 터미널이라 쥬얼창이가 있는 1 터미널까지 셔틀버스를 탔는데, 버스 안에서 본 뚜의 얼굴이 깜짝 놀랄 정도로 안 좋았던 것이다. 얼굴은 누렇게 뜨고, 눈은 빨갛게 충혈되고, 정신은 멍한 채, ‘엄마, 나 진짜 토할 것 같아. 나 쓰러질 것 같애‘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 그렇구나, 뚜가 이렇게 된 이유는 하나였다. 수면부족. 비행기에서 바로 잤다 해도 아이에겐 절대적인 수면 시간이 부족했던 것이다.

일단 뚜를 부축 해 1 터미널에 내려 쥬얼창이가 있는 건물로 들어갔다. 그래도 멋진 폭포를 보면 얘도 잠깐은 정신을 차리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쥬얼창이가 있다는 건물 내부는 너무도 조용하고 어두웠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는데, 저 앞에 나와 같은 비행기에서 내린 듯한 우리나라 사람들 몇 명이 서서 뭔가를 찍고 있는 게 보였다. 설마...

아, 쥬얼창이었다. 그러나 인터넷에서 보던 웅장한 폭포가 아니라 운휴 중인 놀이기구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알고 보니 쥬얼창이가 운영 시간이 있던 것이다. 화요일 기준 오전 11시부터.


“뚜야, 이게 그 유명한 쥬얼창이야. 근데 어... 음... 새벽이라 운영을 안 하네~ 아무튼 이렇게 생겼어 “

“엄마, 알겠어. 알겠으니까 나 좀 어떻게 해줘... 나 진짜 힘들어”


아이고, 이러다 내 딸 쓰러질 것 같다. 어디 앉을만한 공간부터 찾는데, 당황한 내 눈엔 의자가 보이지 않았고, 스타벅스 말고는 상점들도 전부 닫혀 있었다. 뚜 상태를 보니 더 이상 걸을 힘도 없어 보여 일단 스타벅스로 들어가 주스를 하나 샀다. 처음 주문할 때 영어로 어떻게 말할지 상상했던 설렘은 없었다, 급했으니까. 땡큐만 연신 해대며 카드 결제를 어찌어찌 끝내고 자리에 앉아 뚜부터 내 무릎에 대고 눕혔다. 뚜는 눕자마자 잠들었고, 나는 내려오는 눈꺼풀을 참아내며 턱을 괴고 고민을 시작했다.

현재 시각 6시 10분. 이대로 쥬얼창이 운영 시작까지 버틸 수 있을까? 저질 체력인 나와 이 어린이에겐 불가능할 것 같았다. 그렇지만 우린 싱가포르에서 나갈 때 버스로 국경을 넘기 때문에, 창이 공항은 지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결단을 내려야 했다.

뚜 얼굴을 잠시 내려다보곤 생각했다. 그래, 이제 시작인데, 처음부터 힘 빼며 무리하지 말자. 일단 잘 도착했으니 이제부터는 나답게 상황에 맞춰 움직이자. 우리 숙소의 얼리체크인을 검색해 보니 추가금만 내면 오전 8시 입실이 가능했다.


숙소에 갈 때까지 버틸 힘을 충전하기 위해 스타벅스에서 30분 정도 쉬고, 뚜를 깨워 택시를 타기 위해 표지판을 보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문 앞에서 직원 두 분이 택시를 잡아주고 계셨다. 우리 숙소를 처음 들어본다며 모른다는 기사님께 손짓 발짓, 파파고로 겨우 설명드리고 택시가 출발했다.


숙소까지는 30분 남짓, 공항 밖으로 나가 처음 싱가포르를 만나는 시간이었다. 뭐든 처음은 기억에 오래 남지 않나. 이때의 30분도 내 머릿속에 액자처럼 남았다. 비몽사몽 한 내 상태, 새벽 어스름 고요한 도시, 이제 막 해가 떠오르고 있어 점점 색을 찾아가는 싱가포르 랜드마크들의 실루엣. 여러 상황들이 딱 맞게 어우러져 몽환적이고 신비로웠다. 택시에서도 자느라 정신없는 뚜가 이 풍경을 못 보는 게 참 아쉬울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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